Kalsavina의 인형이야기
가끔 소설에서 혹은 드라마에서 심심챦게 야기되는 문제들 중 하나는 ‘내가 널 필요로 할 때 네가 내 곁에 없다는 것’이다. 얼핏 듣기에는 ‘그래 맞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이 말에는 사실은 어마어마한 함정이 숨어 있다. 바로 ‘내가 필요로 할 때’ 라는 기본전제조건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건 명백히 하자가 있는 전제조건이다. 우선 나 또한 네가 날 필요로 할 때 네 곁에 있어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가 널 필요할 때만 골라서 너의 곁에 있어달라고 칭얼대는 건 이기적인 발상이다.
하지만 인형의 경우는 얘기가 좀 다르다.
필요로 하지 않을 때는 잠시 내 눈에 띄지 읺는 곳에 치워둘 수 있다. 반대로 필요할 때 언제든지 내 곁에 있어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밀당은, 사람과 인형 사이에서는 있을 수 없는 관계다.
내가 외로울 때 지칠 때 힘들 때 옆에 있어주지 않는 애인보다 말없이 옆에 있어주는 인형이 어쩌면 더 소중한 존재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상처를 주지도 받디도 않는 관계, 이기심도 욕심도 통하지 않는 관계는 어떤 의미에서는 애완동물과도 유사한 부분이 있다.
언젠가는 이 기나긴 외로움도 끝날 거라는 얄팍한 희망을 품에 안은 채,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잃고 인형에 탐닉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런 순간에 불행한 자신을 핍박하지 않게 막아주는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친구는 다름아닌 인형이다. 내가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곁에 있어주는 친구다. ‘넌 왜 그렇게 이기적이니’라고 나를 나무라지 않는 친구이기도 하다. 절대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방적이고 헌신적인 우정의 형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