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스Ⅰ-2

기억을 복사하는 주사위

by Kalsavina

# 2



강윤이 주사위를 그렇게 오랫동안 자기 혼자서만 가지고 있는 동안은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가 주사위를 가지고 있는 동안은 기억이 남에게 전달될 수가 없었으니까. 게다가 그가 주사위를 손에 얻게 된 경위는 상당히 황당하다고 할 만한 성질의 일이었다. 만약 그가 처음으로 주사위를 준 상대가 민효가 아니었다면 주사위는 더 오랫동안 제 구실을 하지 못한 채 잠자는 숲속의 미녀처럼 잠들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주사위가 강윤의 손에 들어오게 된 경위는 하잘것없는, 그러나 사실은 주사위 따위보다 백 배는 더 규모가 크고 심각한 사건에서 출발한다. 그 사건의 배경에는 그야말로 멜로드라마 같은 주인공들의 치정관계가 깔려 있다. 결단코 주장하건대 여기서 멜로드라마란 허황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들의 각막에 씌인 보이지 않는 편견의 콘택트렌즈를 빼고 보면, 등장인물들이 멜로드라마의 주인공 자질이 있는 사람들어야 한다는 전제에 한해서 멜로드라마는 얼마든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강윤은 몰라도 강인과 민효는 얼마든지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기질이 다분했다. 민효는 보통 이상으로 영리하고 열정적이며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고 또한 상당히 충동적인 감성을 가지고 있었다. 강인은 민효와 달리 어느 정도는 사리분별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젊고 광기어린 피가 만들어내는 열병을 식히는 데 그의 판단력과 분별력은 비열하고 잔인하게 사용되었다. 강윤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오로지 민효를 사랑했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잘못이 없었는데, 그로 인해 그는 이 말썽 많은 삼각관계의 최대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배우의 기질은 없었다 해도 그는 일단 주어진 역에 몰입하면 몰입했지 결코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그러한 이유들로 해서 한 편의 웃지 못할 코미디의 절묘한 서클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쓸데없이 신성시되기 일쑤인 사랑이 코미디에 악용되었다. 이를테면 민효가 강인 앞에서 당당하게 입에 올린 ‘낙태’에 대해서도 그녀는 ‘진심으로 강인을 사랑했기 때문이다’라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 하나만을 믿고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서 자신을 규정지으려 했다.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들어! 진짜로 그랬다는 건지 아니면 거짓말인지 묻고 있잖아?”

대낮부터 부엌에서 캔맥주를 홀짝이며 만화책을 보고 있던 강윤은 자신이 쏙 빠진 거실에서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대화의 내용을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강인은 그 전날 외박을 한 후 오늘 아침에 이르러서야 집에 기어들어온 것이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으레 어젯밤 어디에서 잤느냐는 민효의 추궁에 이어 찌그럭째그럭 말다툼이 시작되게 마련이었는데, 그렇게 싸우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강윤은 그들의 미래를 보곤 했다. 서로 싸우는 두 사람의 모습은 부부싸움을 하는 부부의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언젠가는 결혼하리라는 믿음은 강윤에게는 확고한 것이었다. 그로서는 서글픈 차선책이었다. 상대가 쌍둥이 형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는 현실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고, 어른들도 묵인했던 강인과 민효의 관계에 대해서도 훨씬 예민하게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확고한 믿음, 서글픈 차선책이 언제부터인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몰랐다. 그저 단순히 외박에 대한 투정이나 저녁밥 반찬에 대한 의견 충돌 등으로 말다툼을 벌이는 단순한 연인지간이었다면 미리부터 그렇게 불안해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강인의 민효의 관계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들은 말 그대로 겉껍데기에 불과했다. 야심만만하고 당당하며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갖고야 마는 강인이 민효를 ‘손에 넣었다’고 생각했던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하기야 어차피 두 사람이 완벽하게 대등한 관계를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떤 관계라도 애증의 감정이 개입되면 균형은 깨어지게 마련이다. 좌우지간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이상이 생겼는지는 몰라도 강윤은 최근 들어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광경을 거의 보지 못했다(하기야 따로 나가 사는 그로서는 두 사람을 따로 만나는 것도 극히 드물었다). 그런 이유로 그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드는 대신 부엌에 남아서 두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나쁜 문제가 생겼음을 알아차렸다. 우선 놀랍게도 격앙된 강인의 음성이 심상치 않았다. 화가 난 게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한껏 핏대를 올린 목소리도 아니었다. 뭔가 폭발할 듯한 분노를 간신히 억제한 듯한 목소리였다. 반대로 늘 짹짹거리며 시끄럽게 두 형제를 다그치던 그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공인 민효는 거의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나가봐야 하나? 하는 생각과 함께 다시 맥주를 한 모금 마신 순간, 크지도 높지도 않은 강인의 놀란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낙태?”

하마터면 강윤의 손에서 맥주캔이 굴러떨어질 뻔했다. 그러나 깡통은 안에 든 맥주가 다소 출렁거릴 정도로 심하게 흔들거렸을 뿐 강윤의 손에서 미끄러지지는 않았다. 누가 낙태를 했다는 걸까? 민효가? 혹은 다른 누군가가? 누구의 아기를? 그는 다른 말이 더 들려오지 않을까 하고 숨을 죽인 채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들려온 것은 강인이나 민효의 목소리가 아니라 현관문이 여닫힐 때 나는 딸랑거리는 종소리였다. 그제서야 그는 맥주캔을 내려놓고 만화책을 집어든 후 거실로 나갔다.

소파에 엎드려 누운 채 얼굴을 방석에 파묻은 민효의 모습이 들어왔다. 울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언뜻 강윤의 머리를 스쳤다. 그는 운다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별반 혐오를 느끼지 않았지만 자신이 우는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경우는 예외였다. 특히 상대가 여자라면 더욱 짜증스러웠다. 그리고 지금 그가 상대하려는 사람은 단순한 여자가 아니라, 그로 하여금 꽤 많은 것을(전부라고는 할 수 없어도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포기하게 만든 여자였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포기한 것들에 대해 애석해할 줄도 몰랐다. 그는 소파 앞 바닥에 퍼질러 앉아 민효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얼굴로 흘러내린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눈은 전혀 젖어 있지 않았다. 강윤으로서는 다행이었다.

“아까 한 얘기, 무슨 애기야? 누가 낙태했어?”

강윤은 별로 주저하지 않고 질문했지만, 이 경우 민효가 강윤을 똑바로 쳐다본다면 그것은 강윤이 실수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힘겹게 고개를 들고 몇 초간 시선을 허공에 두었다.

“내가 낙태했어. 내가.”

이런 대답을 들으면 어떤 사람이든 놀라게 마련이겠지만, 강윤의 입장에서는 남보다 두 배 내지는 세 배로 더 놀라야 할 이유가 충분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놀라기 전에 오히려 의심스럽다는 생각부터 먼저 하기 시작한 것이 그의 솔직한 입장이었다. 왜냐하면 남자인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그녀가 한 대답은 그처럼 무감각한 태도로 내뱉을 말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눈에 보이는 민효의 태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그녀의 심중을 곧잘 정확하게 그리고 예민하게 간파해냈다. 확실히 상처를 입은 태도였지만, 정작 그녀 자신이 상처입었을 때는 저런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윤은 잘 알고 있었다. 저것은 오히려......그녀가 남을 상처입혔을 때나, 그와 비슷한 이유로 뭔가가 마음에 꺼리끼는 것이 있을 때 취하는 태도다. 표정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인이 아기야?”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이 질문은 잘못되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아기니까. 인이 아기였어?라고 질문해야 한다. 더 이상의 질문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음이 아프다거나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강윤은 일단 자신의 문제는 한 수 접기로 했다. 그것은 즉석에서 내린 결정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그가 취해 온 자세였던만큼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다시 주사위에 관한 얘기로 돌아오자. 이 때, 강윤이 주사위를 얻게 된 경위가 민효의 고백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는 의문이 반드시 제기되어야 한다. 그것은 백 퍼센트 우연이라고 할 만한 사건을 통해 얻은 것이었지만, 그 우연을 만드는 데는 민효의 입에서 나온 말이 적잖은 영향을 주었음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강윤은 오래 전부터, 정확히 말하면 그가 음악을 완전히 그만둔 작년부터 가족들과 떨어져 살고 있었다. 이따금 먹을 것이나 옷을 가지러 집에 들어가는 것이야 그 누구도 막지 않을 일이었지만, 그가 예상치 못한 데까지 현실이 앞질러 가 버렸음을 제시한 그 빌어먹을 ‘낙태’ 때문에 그는 저녁도 먹지 않고 자신이 집에 들른 주목적이었던 만화책 다발도 까맣게 잊은 채 일찌감치 집을 뛰쳐나왔다.

아무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길거리에 이르러서야 그는 비로소 자신에게 해당되는 슬픔과 분노의 총량을 헤아려 보았다. 그걸 일일이 헤아린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었다. 원래 그 나이쯤 되면, 그러니까 이십대 초반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나이가 되면, 농도가 사십 퍼센트를 밑도는 허무주의에 빠지기도 하는 법이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히 슬퍼하는 마음과는 다르다. 지금 그는 허무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슬픈 마음이 되어 버렸다. 까닭 모르게 서러운 생각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애시당초 야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포함시킨 적이 없는 사랑이었다. 그다지 화려하지도 않았고 로맨틱하지도 않았고 비극적이지도 않았다. 그래도 다른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좌절되고 내팽개쳐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딱히 그 이유 때문에 서러운 것만도 아니었다.

그는 남자였고, 더구나 그다지 살갑다거나 다정하다거나 세심하다거나 한 성격과는 거리가 먼 남자였으므로, 아무리 사랑하는 여자라지만 ‘그녀가 얼마나 아팠을까. 아마 난 상상도 못할 정도의 고통이었을 거야’라는 식으로 민효의 고통을 헤아리지는 않았다. 당연히 낙태가 여성의 몸에 미치는 악영향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그의 발상이 미치는 영역 밖의 일이었다. 오히려 그를 괴롭히는 것은, 그가 가질 필요도 없는 죄책감이었다. 그는 자신이 민효를 임신시킨 장본인이 된 듯한 기분에 젖어 있었다. 사실 민효가 ‘강윤, 네 아기야’라고 대답했다면, 지금처럼 화가 나거나 슬펐을지 의문이었다. 한 생명이 죽었다는 심각한 사태 앞에서도 (말이 났으니 말이지 강윤은 아기의 생사에 대해서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숙연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당당하게, 지금과는 전혀 다른 당당한 그의 권리로서의 죄책감을 가지고 괴로워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강인 녀석은 도대체 자기 아기를 낙태했다는 말을 듣고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강인에게 물어보고 확인할 일은 아니었다. 그럴 필요를 못 느꼈다. 그렇다면 부모님에게 알린다? 생각도 하지 않은 일이었다. 제아무리 강인과 민효의 관계를 훤히 꿰뚫고 계신 부모님이라 해도 허락없이 아기를 지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쯤 불을 보듯 훤했다. 게다가 태어날 아기는 그들의 손자........만약 아기가 태어났다면, 태어난 아기는 다름아닌 내 조카. 새로운 생명. 거미줄처럼 이어지는 생각은 거기에서 일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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