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복사하는 주사위
# 18
우리는 강인과 민효가 서로의 숨결에 질식해가며 서로를 안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늘 해 오던 대로 침대에서 휴전협상을 마무리지었다는 사실 역시 짐작할 수 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들르지 않고 혼자 지내던 강윤은 또 다시 심장 발작을 일으켰다. 여기에서 ‘또 다시’라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강윤의 심장 발작의 역사는 강인과 민효 사이에 오간 쾌락의 역사보다 훨씬 길다는 사실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도록 한다.
두 사람의 섹스와 한 사람의 심장병 사이에는 과학적으로는 당연히 아무런 연관성이 없었다. 또한 그래야만 했다. 그러나 강윤은 두 사람의 쾌락과 자신의 흉통 사이에 다분히 심정적인 연관성을 부여했다. 강인과 민효의 만류를 뿌리치고 집을 나오면서 그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의 사랑은 내 희생을 담보로 한 거야. 그는 사실 자신에게조차 그 말을 똑똑히 들려줄 수 없었다. 그 말은 평소에는 그의 의식 어디엔가 숨어 있다가, 그의 심장이 제 기능을 잃고 어지럽게 날뛰는 순간에는 어김없이 나타났다.
강윤의 심장병 이력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도록 한다. 그는 심실중격결손이라는 명칭이 붙은 선천성 심장기형으로 인한 질병을 가지고 태어났다. 심실중격결손은 원리적으로 그리 심각한 병이 아니었으나 문제는 그가 다른 복합적인 구조적 심장기형을 가진 보기 드문 케이스라는 데 있었다. 좌우지간 그는 다섯 살 때 심장병 수술을 받았고 수술은 성공했으며 그는 완치되었다. 따라서 지금 그를 심장병 환자라고 부르는 것은 다소 어폐가 있다.
그러나 그의 병은 그리 간단히 말소되지 않았다. 불규칙한 주기로 간간이 일어나는 심장 발작의 원인을 아무리 의학적으로 정확하게 규명하려고 해도 도무지 규명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줍쟎은 제 소견으로는, 하고 강윤을 진찰한 심장병 전문의는 강태규 박사에게 넌지시 말했다. 심리적인 문제도 많이 작용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선배님도 아시다시피(그는 강태규 박사의 의과대학 후배였다)대부분 원인불명의 질병에는 신경성 문제가 많이 개입하잖아요. 신경성이라는 말을 싫어하는 강태규 박사는 아예 입을 다물어 버렸다. 아버지보다 신경성이란 말을 더욱 싫어하는 강윤이 그 말을 들었다면 의사에게 상당히 실례되는 행동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상세한 의학적 지식을 생략하자.
집을 나간 강윤은 혼자 자신의 자취방에서 보란 듯이 잘 살고 있었다. 적어도 생활에는 불편함이 없었으며, 그는 모든 것을 그런 대로 잘 처리해 나가고 있었다. 세탁이나 설거지 등 싫어도 그 자신 해결해야 하는 일을 어느 정도 민효에게 일임하긴 했지만 그조차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민효는 강윤의 방 열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의 방에 오기 전에 반드시 전화를 걸었고, 그러면 강윤은 말없이 집을 비워 버리곤 했다. 그녀와 둘이 남는다는 것은 그로서는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우악스러운 손이 가슴 속에 든 근육덩어리를 소젖 짜듯 비트는 고통을 참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무슨 전화를 받겠으며 어디를 나가겠는가. 혼미해져 가는 정신을 애써 가다듬으며 바닥에 길게 누워 의자 다리를 움켜쥔 그의 손은 그의 입이나 머리 이상으로 많은 분노를 표출해냈다. 그는 자신이 움켜잡고 있는 것이 사람의 손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겼다. 차라리 누군가가 자신을 때려서 기절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고까지 생각했을 때 다시 한 차례의 통증이 몰려왔다. 허파를 압박하는 묵직한 통증의 무게가 그의 가슴을 눌렀다. 입에 손을 넣어서라도 목을 뚫고 싶었다. 그는 자유로운 다른 쪽 손을 가슴에 대고 자신이 입은 티셔츠를 꽉 움켜쥐었다.
그는 자신의 흉통과 보조를 맞추어 끊어졌다가 이어졌다가 하는 핸드폰 소리에 신경을 집중했다. 그는 자신이 전화를 받을 상태가 아니라고 느꼈으므로 전화를 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다 문득 민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핸드폰이 놓인 침대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이 핸드폰에 닿기 전에 벨소리는 뚝 그쳤다. 갑자기 조용해진 주위는 그를 오히려 두렵게 했다. 그는 아직도 돌덩어리를 매단 듯 무거운 가슴을 손으로 누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땀에 젖어 끈적끈적하게 피부에 달라붙는 티셔츠를 벗어던지고 싶었지만, 그럴 힘조차 나지 않았다.
언제 흉통이 다시 찾아올지 몰라 불안해하는 동안, 그는 자신이 자신을 둘러싼 울타리를 어떤 방법으로 빠져나왔는지를 상기했다. 자신이 아끼던 것들을 모두 없애고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들로부터 빠져나오면 모든 것이 다 잘될 거라고 믿었다. 그러니까 그는 자신이 좀 더 ‘냉정하고 합리적인’ 인간이 될 거라고 믿었고 그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슬프게도 그는 자신의 변화를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을 변화시키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러한 일련의 시도들이 성공했느냐고 따져 묻는다면, 아직은 결과를 말할 때가 아니다. 예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사실이 그의 눈 앞에 있었다. 신경성이든 원인불명이든 간에, 그는 아직도 ‘심장병의 손아귀에 쥐여 있었다’. 또한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걸어 제발 집에 들어오라고 악다구니를 치는 부모님이 있었다. 때로는 자신이 너무나 간단하게 부순 아이바네즈가 꿈에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다 합쳐도 한 사람에게서 비롯되는 희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좀처럼 인정하기 힘든 사실이었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는 도망칠 수 없었다. 그래서 도망쳤지만 매번 다시 되돌아갔다. 잔인하고 달콤한 마약같은 현실이었다.
“윤아.”
가늘고 약간 쉰 듯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이 목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자 여자의 종아리가 보였다. 곧 익숙한 실루엣이 그의 눈 앞으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웃고 있는 하얀 얼굴은 그가 조금 전에 겪었던 무시무시한 통증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너 왜 왔어?”
강윤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민효는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갑자기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이 가셨다. 그녀는 머리를 굽혀 강윤의 귀에 대고 몇 마디를 속삭였다.
“잘 안 들려.”
부드럽고 가녀린 목소리가 웅성거리며 진동했다. 한꺼번에 대여섯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저마다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어 자신에게 속삭이는 듯했다. 그는 자신의 손바닥에 느껴지는 축축한 살갗의 감촉에 정신을 집중했다. 이윽고 수런대는 목소리들이 사라지면서 보다 또렷하고 빠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아. 왜 바닥에서 이러고 있어? 너 혹시 또......”
강윤은 그때까지 자신의 눈꺼풀이 닫혀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힘껏 눈꺼풀을 위로 밀어올렸다. 이번에는 훨씬 덜 예쁘고 훨씬 현실적인 민효의 모습이 보였다. 뺨에 난 여드름과 땀이 맺힌 모공까지 보이는, 화장기 없는 얼굴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게다가 상황 파악을 분명히 한 듯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 가득하다. 아까까지 그토록 붉던 입술도 지금은 한결 붉은 기가 가셨다. 그러나 어쨌든 다른 여자의 얼굴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에게 남은 힘을 가늠하면서 민효의 등 위로 팔을 올려 그녀를 힘껏 끌어안았다. 무방비 상태로 강윤을 내려다보던 그녀는 균형을 잃고 강윤의 가슴 위로 엎어졌다. 졸지에 민효는 강윤과 함께 바닥에 나뒹구는 신세가 되었다.
민효는 강윤의 이마를 흠뻑 적신 땀을 보고 소스라쳤다.
“너 또 혼자 발작 일으켰었지? 아니야? 맞지? 대답해 봐!”
“맞아. 그랬어.”
민효의 견갑골을 파고든 손에 힘을 모으며 강윤이 대답했다. 민효는 뭐라 입을 열려다 그만두고 손으로 강윤의 이마를 쓸어내렸다. 한두 번 애원한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혼자 지내다가 오늘처럼 아무도 없는 곳에서 발작을 일으키기라도 하면, 그 발작이 조용히 가라앉지 않고 끝끝내 심장을 마비시키기라도 하면 그때는 어쩔 도리가 없다. 그래서 몇 번이나 집으로 다시 들어오라고 윽박지르고 부탁하고 달래고 애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왜 왔어?”
민효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여전히 등이 강윤의 손아귀에 잡혀 있었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전화를 안 받길래....무슨 일이 있나 해서. 너 지난 주부터 계속 전화 안 받았잖아. 용환이랑 칠득 씨가 너하고 연락이 안 된다고 나한테 전화해서 투덜거리잖아. 제발 좀 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해 달라면서.”
“핸드폰 끊겼어. 요금을 한 석 달치 미뤘거든.”
명백한 거짓말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민효가 침대 위에 놓인 핸드폰을 열고 부재중 수신 전화 신호가 뜬 액정을 확인하면 금세 들통날 거짓말이다. 민효 역시 이 뻔한 거짓말을 잘 알고 있다.
“그냥 그것 때문에 온 거야? 나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하려고?”
“할 말이 있어.”
이제야 비로소 진짜 이유가 나올 참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강윤은 민효의 등을 감은 팔을 풀었다. 몸이 자유로워진 민효는 침대가에 등을 대고 기대어 앉았다. 그녀는 개인적인 슬픔과 모성본능에서 기인하는 걱정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며 강윤을 내려다보았다. 강윤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뻐근한 근육을 제외하면 몸의 상태는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병원에 안 가도 돼?”
“할 말 있다며. 그거나 얘기해. 병원은 내가 알아서 갈 테니까.”
민효가 쉽게 입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강윤은 곧 단서를 덧붙였다.
“인이 얘기라면 마음놓고 말해. 들어줄 테니까.”
그제서야 민효는 침대가로 팔을 뻗어 자신이 들고 온 핸드백을 끌어당겼다. 강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는 핸드백에서 작은 카세트 케이스를 꺼내 강윤에게 건넸다. 뭐야. 혹 칠득이 형의 심부름이라도 온 건가. 강윤은 피식 웃으며 카세트 테이프가 담긴 케이스를 흔들었다. 민효는 빨지 않아 먼지가 그득히 쌓인 창가의 커튼에 시선을 주었다. 커튼 틈새로 저물어 가는 석양빛이 눈에 들어왔다. 온 방안이 검게 물든 가운데 한 줄기 햇살만이 민효의 팔 언저리를 꿰뚫고 침대에 도착했다. 이 햇살이 가슴을 관통하면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민효의 의식을 가로질렀다.
“인이가 가지고 온 거야. 분명히 그 여자가 준 거야. 강인이 그 여자에게 받아내기로 약속했다는 그 음악 말이야.”
강윤은 카세트 케이스를 침대 위로 던지며 물었다.
“인이가 이걸 너한테 줬어?”
“아니. 내가 빼돌렸어. 더 정확히 말해서, 훔친 거야.”
강윤은 정색을 하며 민효의 뺨을 잡아 자기 쪽으로 돌렸다. 그러나 방 안은 이미 그녀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컴컴해져 있었다. 민효는 강윤의 손을 잡아 떼어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저제 저녁에 은하네 집에 갔다가, 우연히 거기서 진호랑 용환이를 만났어. 그애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인이가 그 테이프를 받았다는 걸 알았어. 그런데 어제 아침에 인이가 그 테이프를 서랍 안에 집어넣는 걸 봤어. 그래서 그애가 방을 나간 틈을 타서 내가 가지고 나온 거야. 내가 들어 보고 싶었지만 혼자 들을 엄두가 안 났어. 이게 인이를 홀린 음악이래. 이것 때문에 그애는 자기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하고 그렇게 오랫동안 잔 거야. 그만한 댓가쯤은 얼마든지 치러도 상관없을 정도로 이게 대단한 음악이라는 거야. 이걸 없어 버리려고 했어.”
그렇지만 그녀에게는 그럴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 정도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강윤은 민효의 질투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혼자 남아 발작을 이겨내는 것은 내가 나를 이기는 방법이다. 그리고 네가 강인이 그토록 아끼는 테이프를 훔친 것은 네가 너를 이기는 방법이다. 둘 다 결코 온당치 못한 방법이지만 지금은 서로를 비난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네가 내 옆에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지. 꿈 속에서 네 얼굴을 보다가 어느 순간 꿈에서 깨어나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보게 되었을 때 내가 내 머리를 망치와 대못으로 쪼아 버리고 싶었던 그 충동을 너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테니까.
“네가 들어 봐. 그렇게 아름다운 음악이라면 네가 한 번 들어 봐. ”
“내가 듣고 난 다음에는 다시 제자리에 갖다놓을 거야?”
“아니. 돌려주지 않을 거야. 강인은 아마 끔찍하게 열받아서 이걸 찾아다니겠지.”
“그렇지만 그 여자한테 가서 얼마든지 다시 받을 수 있을 걸. 그렇게 되면 여기에서 끝날 관계도 결코 끝나지 않게 돼.”
“상관없어. 인이랑 그 여자가 백 번을 자든 백 오십 번을 자든 그건 아무 차이가 없어. 나는 그애가 내게서 굴욕감과 패배감을 느끼기를 바랄 뿐이야.”
“내가 인이한테서 느끼는 굴욕감이나 패배감처럼 말이지? 하지만 네가 그런다고 그 녀석이 너한테 무릎꿇거나 하는 그런 일은 없어.”
“무슨 말이야?”
민효는 자신이 잡고 있던 강윤의 손을 내던졌다. 그녀는 몸을 뒤로 뺐고 강윤은 다급하게 그녀를 어깨를 붙잡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농담삼아 말한 거야. 네 얼굴을 너무 오랜만에 봐서, 농담이 저절로 나오는 거야. 봐, 여기에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어. 여긴 내 방이고 여기 있는 사람은 너하고 나, 둘 뿐이야. 그러니까 하게 해 줘. 내가 옛날부터 좋아했던 거, 내가 가지고 싶어했던 거. ”
민효의 팔을 관통하던 햇살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이 파란 어둠 속에서도 네가 그렇게 못견디게 좋아하는 그 곡선을 볼 수 있다면, 어디 즐겨 봐. 민효는 망설이는 손길로 목을 감싸고 있던 칼라의 단추를 풀어 뒤로 젖혔다. 그녀는 문어의 빨판처럼 목에 달라붙는 강윤의 혓바닥을 느끼지 않으려고 애쓰며 눈을 꼭 감았다. 삼각함수 사건 이래로 그녀는 자신의 목을 항상 강윤의 것으로 남겨두었다. 그것만 너그럽게 허용해 주면, 다른 건 바라지 않는다. 그녀는 강윤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너의 삼각함수, 네 감정을 자극하는 짧고 가녀린 곡선, 그게 네가 원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