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스Ⅰ-27

기억을 복사하는 주사위 (1부 완결)

by Kalsavina

# 27



“말해.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말해. 인이가 원해서 한 거라고, 인이가 강제로 한 거라고 말해. 네가 원해서 한 게 아니라고 말하란 말야!”

그리고, 나만 사랑해달라고 한 말도 네가 원해서 한 게 아니라고 말해. 그러나 강윤은 그 말까지는 할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민효는 강윤이 나가지 못하도록 붙잡고 싶었다. 이대로 그를 나가게 하면, 두 사람 모두를 잃고 말리라는 불안감이 그녀를 휩쌌다. 그러나 붙잡을 용기가 없었다.

강윤이 나가고 난 후에도 민효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왜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까. 은하와 진호의 사랑같은 밝고 따뜻한 사랑, 서로를 편안하고 정겹게 감싸안는 사랑, 그런 사랑이 유독 내게만 어려웠다는 사실. 그리고 항상 나를 내버려 둔 채 도망치기 일쑤인 너희들에게만 어려웠다는 사실. 그런 사실들을 왜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까. 그러나 몰이해와는 상관없이 그녀에게는 눈앞에 직면한 현실이 있었다. 인이든, 윤이든, 혹은 둘 다이든, 그들을 잃을 수도 있다는 현실이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질식하는 거야. 그 애들이, 내 허파를 풍선삼아 불어넣은 접착제가 부풀어서 내 허파가 터지면, 나는 죽는 거야. 민효는 눈물로 더러워진 얼굴을 돌려 아무도 없는 빈 공간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수치스러워하며 자신의 얼굴보다 더 더러워진 자신의 가슴 속을 응시했다. 언젠가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했었지. 깨끗한 것은, 더럽혀지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오로지 더럽혀지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그녀는 한 손으로 젖은 얼굴을 몇 번이나 닦으며 하염없이 흐느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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