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아무도 사랑한 적 없으면서
18. 나를 사랑했었나요, 아닌가요
처음부터 인형에 관한 소소한 단상을 쓰려고 시작했던 이야기가 어느 새 에세이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라 기분이 묘하다.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내 인생에 있어 중요한 고백을 하려던 참인데, 그 고백을 하필이면 이렇게 여기에 하게 될 줄은 몰랐던 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난 날 누군가를 격렬하게 사랑했던 추억을 하나씩은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추억 한 둘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추억들을 곰곰히 되짚어본 나는, 그 추억들이 추억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 기억들은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들이 아니었다. 첫번째 기억은, 어설픈 동경에 불과했고 두 번째 기억은 어리석은 현혹에 불과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둘 다, 그 감정이 파탄난 시점에서 모든 것이 그 당시에 명백한 현실로 드러나 버렸기에 자신을 속이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악몽들이었다.
사실은, 그게 사랑이었다고 믿고 싶었다.
차가운 사람, 질 나쁜 사람에게 매혹되어 끌렸다가, 감정을 정리하는 데 좀 긴 시간이 걸렸다는 것 뿐이다. 그리고 나의 20대는 그냥 그 길로 사실상 끝나 버렸다.
그리고 쉴새없이 달려온 세월 덕에 이제서야 명백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은, 아무도 사랑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대단치 않은 고백 같지만, 사실 이것은 여자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너무나 끔찍한 고백이다.
반평생을 살아오면서, 한 남자를 아니 한사람을 진실하게 사랑하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전무하다는 사실이 뭘 뜻하는 건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맞긴 한 걸까.
무엇이 나를 이토록 지독한 혐오와 환멸로 이끌고 온 걸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내가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어리석은 동경과 현혹으로 점철된 자기최면에 불과했었다는 것을 명료하게 깨닫는 순간, 사실은 누굴 사랑해 본 적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순간의 끔찍한 느낌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원래 이번 파트의 제목은 '사실은 아무도 사랑한 적 없으면서'였다.
결국 그 제목을 부제목으로 돌린 이유는, 어느 날 밤,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탄 택시에서 들었던 노래의 한 소절 때문이었다.
"나를 사랑했었나요, 아닌가요."
나를 사랑했었나요라는 질문은 내가 그들에게 던지는 질문이 아니다.
그들이 내게 집요하게 던져오는 질문이다.
이미 지나간 일들에 대해서는 혼란의 여지가 없이 분명하게 대답하지만, 글쎄 나의 인형들 아니 어쩌면 인형이 아닌 인형의 모습을 빌렸을 뿐인 나의 사람들이 던져오는 질문이라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닌가요, 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은 계속해서 들려온다.
나를 사랑했었나요,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