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인형극장의 여배우들

Kalsavina의 인형이야기

by Kalsavina

20. 인형극장의 여배우들


이미 앞서 얘기한 대로, 상상과 현실의 교란은 일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있어 어느 정도는 필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도가 지나치면 그건 체증이 되어 버리고, 결국 일상은 파괴되고 만다.

그래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 나는 인형에게 지나치게 많은 설정을 부여하거나 인형과 관련해서 장황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걸 가급적 피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룸박스 대용으로 쓰는 책장의 한 칸을 멀거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나는 한편의 인형극을 보기에 위해 잘 차려진 무대를 보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수납공간의 부족 탓에 어쩔 수 없이 들여놓은 책과 잡종사니를 치운다면, 저 낡은 책장의 한 칸은 훌륭한 룸박스가 될 것이다. 아니면 내가 만든 인형극을 공연하기에 더없이 좋은 인형극장이 되거나.

그리고 인형극장의 여배우들은 열심히 한편의 우스꽝스러운 시트콤을 연기할 것이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남자배우는 없다. 어째서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 강도 높은 정신분석적 심리상담을 받아야 할 필요는 못 느끼겠다. 그래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내 인형극장의 여배우들은 대체로 사랑스러운 외모를 자랑한다. 물론, 아래 사진에서 보듯 터무니없는 미모를 자랑하는 소다 같은 여배우도 있다. 여배우라기보다는 여신에 가까운 존재다.

억지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대신, 움직이지 않는 인형들로 채워진 인형극장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짤막한 에피소드마저 외면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런 이야기들을 틈틈히 메모해 놓다 보면, 꽤 자연스러운 한 편의 인형극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문득, 마냥 하염없이 어떤 역할이 주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저 여배우들이 문득 가여워진다. 저마다 주연이 되고 싶어하겠지. 아무리 두툼한 종이뭉치에 깨알같은 글씨가 빼곡한 대본을 밤새 외워 연기해야 한다고 할지라도, 주연을 원하겠지. 마치 우리가 언제나 우리 삶에서 주인공이기를 원하듯이.

하지만 우리들 자신조차, 우리의 인생에서 언제나 주인공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대부분의 엄마들로부터 주인공 '나'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그 외에도 타인의 조연으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더 나쁜 건 조연조차 맡지 못하는 무대 뒤의 사람들. 가련한 사람들.

가련한 여배우들.

여전히 나는 내 일상의 균형을 지키기를 원하고, 환상하게 과도하게 몰입하는 것을 경계한다.

그래서 가끔은 이 인형들로부터 원망을 사는 느낌마저 받는다. 하염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여배우들의 원성 같은 것 말이다.

언젠가는 각자의 운명이 제자리를 찾아갈 날이 있겠지. 이 여배우들도 그리고 나도.

그때까지는 서로의 곁에 머물러 있으면서, 공허한 영혼의 빈자리를 채워 주지 않겠느냐고 달래야겠다.

물론, 공허한 영혼의 소유자는 그녀들이 아니고 나니까, 나만의 괜한 욕심을 부리고 있다는 것쯤은 나도 잘 알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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