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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savina Jul 05. 2019

말하는 고양이와 불행한 남자

말하는 고양이와 불행한 남자 




intro



그녀가 우리 집, 아니 나 혼자 살던 초라한 원룸의 초인종을 눌렀을 때, 나는 드디어 오랫동안 계획해 왔던 내 마지막 임무를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먹고 신중하게 유서를 쓰던 참이었다. 사실 유서라고 해서 딱히 뭔가 써야 할 중요한 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쯤 살았으면 뭔가 근사한 말 -권진규의 ‘생은 공이고 파멸이다’ 정도는 아니더라도- 한 문장쯤은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신경질적인 초인종 소리에 화들짝 놀랐던 건 그만큼 내가 혼신의 힘을 다해 손에 쥔 펜 끝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토록 중요한 순간에 방해를 받았다는 사실에 부아가 치밀 대로 치민 상태로 나는 문을 열었다. 

문 밖에 서 있던 사람은 그리 놀라운 존재는 아니었다. 내가 예전에 다녔던 직장 동료, 한두 번은 이 곳으로 부르기도 했지만 결코 단 둘이만 있었던 적은 없으며 이렇다 할 관심을 기울인 적도 없는 나보다 한참 어린 여자아이였다. 키가 그다지 크지 않은 그녀의 바로 옆에, 역시 그다지 키가 크지 않은 소년 같은 외모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녀의 애인임을 별로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은, 아마 그녀와 한 손을 마주잡은 채로 서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해요.”

그쯤 되면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이었다. 우선 내가 계획하고 있던 그 막중한 임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은 일단 보류해야 하는 게 분명해 보였다. 정작으로 내가 결단을 내리지 못해 갈등해야 했던 문제의 핵심은 다른 데 있었다. 난데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그 쌩뚱맞은 커플을 내 방으로 들이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였다. 




1

“호빵 좀 잠깐 맡아 주시면 안 될까요?”

“호빵?”

나는 바닥에 얌전히 꿇어앉은 그녀의 무릎 바로 옆에 놓인 케이지로 눈길을 주었다. 딸랑한 치마가 미처 다 숨기지 못한 그녀의 통통한 허벅지를 애써 외면하면서. 

“이 고양이 이름이 호빵이야?”

아닌게아니라 호빵같이 생겼다. 귀가 적힌 품이 아무래도 영락없는 폴드인가 하는 종류의 고양이 같았다. 얼굴이 둥글납작하고 짧은 털이 전체적으로 황갈색을 띄고 있었다. 그닥 귀여워 보이는 고양이는 아니었다. 

사실, 고양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관심이 없었다고 해두는 게 정확하겠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내게는 고양이를 키울 만한 여력이 없었다. 불과 십오분 전까지 자살하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길 준비를 하고 있던 사람에 고양이를 맡기다니 이런 상식밖의 행동이 어디 있나. 물론 그들은 내가 무엇을 계획하고 있었는지 알 턱이 전혀 없었을 테지만 말이다. 

“나, 고양이 털 알러지 있어.”

궁리 끝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나의 궁색한 거짓말을 훤히 꿰뚫어본 것일까. 다시 한번 더 확실한 거절의 멘트를 날리려던 찰나 옆에 있던 그녀의 애인이 입을 열었다. 

“부탁드립니다. 사례비는 드리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절의 멘트를 날렸어야 마땅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례비’라는 말이 나온 순간 막 입 밖으로 나오려던 거절의 멘트는 입천장에 달라붙어 버렸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난데없이 찾아와 무례한 부탁을 해대는 그들에게 화가 나기 시작한 지점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그래도 일말의 염치를 아는 족속’임을 그런 식으로 드러내 보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하자 그들은 서로를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인 후 내 앞에 제법 두툼해 보이는 돈봉투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남자, 즉 그녀의 애인 쪽이 좀 더 빠른 동작으로 일어서서 문 쪽으로 향했다. 내가 타서 내민 커피는 손도 대지 않은 채였다. 반대로 애진작에 커피를 뱃속에 훌훌 털어넣듯 마셔버린 그녀는 캐리어의 엉성한 철망 사이로 엿보이는 고양이, 즉 호빵을 향해 제법 애틋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작별 인사를 했다. 

“호빵, 힘들어도 여기서 잘 지내야 돼? 꼭 데리러 올 거야. 약속 지킬 테니까. 잊지 말고 기다려 줘. 응? 사랑해.”

무슨 연유로 그토록 사랑하는 고양이를 이렇게 뜬금없이 떠맡겨야 하는지, 그리고 나한테까지 찾아와야 할 정도로 그렇게 주변에 사람이 없었는지. 그 모든 의문을 낱낱이 풀 겨를도 없이 그녀는 잽싸게 일어나 먼저 나간 자신의 애인을 뒤따라 사라져 버렸다. 

이로서 다시, 나는 혼자 남았다. 

아니 혼자가 아니었다. 

‘호빵’이라 불리는 낯선 고양이와 함께, 나는 혼자 남았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호빵과 내가 동거를 시작하게 된 게기이다. 계기치고는 다소 진부한 계기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2

나의 불행의 근원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에게도 털어놓은 적이 없다. 어느 누구든 간에, 알아봐야 좋을 것이 없는 사실이니까. 중요한 것은, 결국 내가 아홉 살 때 일어난 그 일로 해서 나는 결국 영원히 행복이라는 것과는 담을 쌓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남들보다 일찍 죽어야 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시기를 딱히 내 마음대로 정할 거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기가 지금이라는 걸 깨닫게 된 것 또한 신기한 노릇이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눈 앞에 펼쳐진 누렇게 뜬 천장의 형광등과 그 형광등 받침 아래로 엿보이는 날벌레들의 시체들을 보며 나는 저것이 드디어 찾아온 내 운명임을 알아버린 것이다. 그 전날 밤, 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불을 끄지 않고 잠들었었다. 

지금도 내가 딱히 죽을 시기를 잘못 알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중차대한 순간에 난데없이 내 앞에 떨어져 나의 죽음을 막은 존재가 하필이면 고양이가 되리라고는 정말이지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다. 

호빵은 약 이틀 가량을 캐리어 안에 갇혀 있었다. 

사흘째 되던 날, 나는 드디어 결심하고 무작정 애완동물 가게로 뛰어갔다. 그리고 신용카드를 꺼내 급한 대로 고양이에게 필요한 모든 것, 즉 사료며 화장실용 모래며 간단한 털실 장난감이며 그런 것들을 잔뜩 사온 것이다. 마침내 캐리어의 문을 열자 호빵은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그러나 얌전히 캐리어 밖으로 나와서는 사료 그릇에 코를 박고 조용히 그리고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얼굴이 둥글고 넙데데한, 예쁘장한 구석이라고는 없는 호빵의 반쯤 접힌 귀를 보고 있는 동안, 아무래도 당분간은 나의 중요한 임무를 완수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난처해지고 말았다. 어느 누구든 간에, 내가 끌어안은 불행의 실체를 알고 나면 나의 극단적인 선택을 비난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건, 그냥 애인으로부터 실연당하거나 하는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인 것이다. 설령, 그 모든 불행에 나의 책임이 단 일 퍼센트도 들어가 있지 않다 해도 그렇다. 아니, 다시 꼬아서 말하자면, 단 일 퍼센트의 책임도 없는 그 일로 인해 나는 영원히 나의 행복을 잃어야 했다. 

결코 모든 사람들에게 흔하게 찾아오는 불행은 아니다. 

결혼이라는 걸 해 본 적은 없지만, 결혼해서 만든 가족을 교통사고로 한순간에 잃는다면 -<21그램>의 나오미 왓츠처럼- 아마도 나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고려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나처럼. 여기까지 생각하며 무심히 밥그릇을 비우는 호빵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딘가에서 가늘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서야 좀 살 것 같네. 죽는 줄 알았어. 이봐, 너 날 말려죽일 생각이었나?”

처음에는 TV를 틀어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눈앞에서 고개만 돌리면 바로 보이는 위치에 놓인 TV는 분명 꺼진 상태였고, 브라운관을 점령한 것은 시커먼 어둠이었다. 다시 호빵을 향해 시선을 돌리니 이번에는 골이 난 듯 눈을 가늘게 뜬 호빵의 얼굴이 나를 정면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그래, 이쪽이다 개자식아. 나 말고 또 누가 있냐?”

“아니, 지금 네가 말을 하고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여기 나 말고 누가 있냐고. 뭘 그렇게 놀라? 말하는 고양이 처음 봐?”

말하는 고양이에 대해서는, 몇 번 들어본 적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실제로 말하는 고양이를 눈 앞에서 보는 것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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