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lsavina May 10. 2020

시작이라니, 마흔아

수필 혹은 단상

참 사람을 힘 빠지게 하는 나이다.

뭘 해도 즐겁거나 신나지 않고 그저 허탈하다. 삼십대를 정신없이 달려온 만큼, 그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주어지리라던 믿음이 헛되이 산산조각이 나 있는 걸 어쩔 수 없이 확인하고야 만다.

쇼핑몰 쇼윈도를 장식한 예쁜 가방과 구두는 더 이상 나를 위해 진열된 것이 아니다. 돈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와는 조금 다른 문제다(돈이 있다 한들 선뜻 들어가서 그걸 집을 수 있을지?). 서점에 들어가서 신나게 집어들던 소설책이며 영어회화 책을 전처럼 신나게 집어들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돌아서고 만다.

그냥 집에 들어가기 싫어 어정거릴 뿐이다. 그러나 길에서 만나거나 마주치는 그 어떤 것도 나를 설레게 하지 않는다. 머리를 식히려고 외출한 이 순간에도 머릿속을 채우는 것은 자라는 아이들 밑으로 들어갈 돈 등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이다. 유일한 위안은 편의점에서 파는 싸구려 커피보다는 훨씬 향이 진하고 맛이 청량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고작이다.

그러한 마당에, 시작이라니, 새로운 시작이라니.

뭔가를 새로 시작하기보다는, 지금까지 애써 쌓아온 것들을 잘 꾸려나가는 게 더 중요한 이 시기에,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한다는 건지. 알 수 없는 저항감이 내부에 깃드는 건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 과거에 수도 없이 시도했던 그 많은 시작들을 떠올리면 더더욱 그렇다. 몹쓸 전염병이 세상을 점령한 세기말 시점에서, 남달리 뭔가를 이룩해 놓았다고 큰소리칠 것 없이 불혹을 넘겨버린 아줌마에게는 뭔가를 시작한다는 문장만큼 어이없는 문장도 없다.

지나간 날들만 부질없이 되짚어볼 뿐이다.

그러고 보니, 말 그대로 어지간한 유혹에 흔들릴 줄 모르는 불혹이 된 지금 새삼스럽게 시작이라는 단어가 나를 유혹할 리는 없다. 그런데도 익숙하지만 새삼스럽게 다가드는 이질감에 진저리를 치는 이 삶 언저리에서, 정체모를 어떤 것이 나를 손짓해 부른다. 아직은 체념할 때가 아니라고.

아직은 시작해야 할 무엇인가를 모색해도 된다고.  화려하지 않아도 즐겁거나 설레지 않아도 된다고. 자꾸 허탈해지는 게 싫어서 그냥 시작해 봤다고 말하는 걸로도 변명은 충분하니까, 지금 시작할 수 있는 걸로 시작해 보라고.

지금까지 해 오지 않았던 것.

혹은 오래 전에 시도했다가 포기했던 것.

마스크와 볼펜을 사 들고 돌아오면서(노트는 집에 많다), 옛날에 즐겨 들었던 팝송 가사나 필사해 볼까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그런 것도 시작이라면 시작일 수 있겠구나 생각한다. 풍선처럼 잔뜩 바람이 들어 부풀어오른 시작일 필요는 없는 거다. 슈퍼스타로의 대성공을 꿈꾸며 대차게 출발하는 그런 시작을 꿈꾸었다니. 자신이 한심해져서 혼자 웃는다. 어쩌면 집에서 하는 종이접기가 핵무기 개발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고 하면 그건 지나친 농담일까.

그러니까, 시작의 의미는 그렇게 단순한 거다.

이 순간이 허탈해지고 볼품없어지는 것을 막는 것. 뭔가를 시작하기에 앞서, 그냥 그 정도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만으로도 그 시작의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당신이 혹은 내가 시작하는 것이 그 무엇이 되든 간에.





매거진의 이전글 처음 만난 보라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