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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savina Nov 09. 2020

3. 타인의 감각을 이해해야 하는 어려움

칼마녀의 테마에세이

작년에 초고를 탈고한 후 지금까지 수정을 거듭하고 있는, 단편도 중편도 아닌 어정쩡한 분량의 작품이 있다. 좀처럼 수정 작업이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어하다가 모든 걸 다 내던지고 절에 다녀왔다. 늘 그렇다. 머리가 아플 때나 좀처럼 풀리지 않는 문제가 생길 때는 습관처럼 근처의 절을 찾아 머리를 식히고 온다.

손수 뜬 탭케이스. 제법 짱짱하지만 똑딱단추를 달아야 한다.

그렇게 절에 다녀와서, 저녁을 먹고 다시 수정 작업에 재돌입하면서 습관처럼 이럴 때 찾아듣는 인 야 멜로우 톤 (In Ya Mellow Tone)의 몇몇 곡들을 재생하면서, 최근 느꼈던 자괴감의 실체에 대해 곰곰히 생각했다. 단순히 슬럼프에 빠졌다던가 하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묘한 자괴감에 대해서.

사실 생각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고 내가 선호하는 감각과, 타인이 생각하고 타인이 선호하는 감각 사이의 괴리라는 지점에 이르러서 언뜻 생각의 이동이 멎었다. 그 시점에서, 인 야 멜로우 톤 수록곡 넘버 중 지금까지 무심결에 흘려들었던, 가볍고 상큼하며 짧은 곡의 단순한 멜로디가 가슴 속 어딘가를 건드렸다.

심각하지 않게, '쉽게 생각해 봐'하고 어깨를 툭툭 치는 듯한, 사람을 위로하는 가벼운 곡조의 멜로디.

.

.

늘 그렇듯,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 이르러서 음악의 도움을 받곤 한다. 음악을 듣는다는 걸 중요시하는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내가 너무 완고했던 건지.

나의 감각을 고수한다, 나의 감각을 고집한다, 는 그 완고함에 매몰된 나머지, 타인의 감각을 헤아려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거라는 생각을 이제껏 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진부하고 대중적인 통속소설들을 떠올려 본다.

진부하고, 흔해빠진, 통속소설, 그러나 누구나 좋아하는, 누구나 재미있어하는 그 통속소설 말이다. 자신만의 감각에 매몰된 사람이라면 아마도 쓰지 못할, 타인의 감각을 잘 이해하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그 통속소설들 말이다.

어차피 참신하고 기발한 착상과 놀라운 필력으로 세상을 감동시킨다는 건, 한계가 있거니와 이야기의 홍수 속에 노출된 요즘 사람들을 타겟으로 수행하기에는 어쩌면 불가능한 미션이다.  그런 불가능한 미션 때문에 머리를 싸매지 않고도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건 다름아닌 통속소설, 다시 말해 통속적인 이야기겠지.

왜 나를 이해하지 못하느냐고 한탄하기 전에, 왜 나는 너를 이해하지 못했나라는 질문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하는 건 아닌지. 그런데, 그런데, 그래도.

어쨌든, 어렵다.

타인의 감각을 이해한다는 건, 아니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건 어쨌든 어려운 일이다.

때이르게 찾아든 졸음에 생각의 흐름은 여기서 끊어지고 만다.

이야기를 마치기 전에, 잠깐이지만 나를 위로했던 짧은 멜로디의 실체를 밝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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