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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savina Nov 13. 2020

4. 이게 다 아나스타샤 때문이야!!!

조셉 앤 스테이시

살다 보면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절대 사지 않을 것 같은 해괴한 아이템을 구입하는 일이 왕왕 발생한다. 다음은 내가, 그 어떤 유혹에도 굴하지 않던 내가 조셉 앤 스테이시의 니트백을 구입하게 된 경위다.

검색을 해보니 똑같은 이름을 가진 모델이 여럿이라 나를 당황하게 했던 조셉 앤 스테이시의 메인 모델 아나스타샤 지 (Anastasia G)

아나스타샤 지(Anastasia G). 조셉 앤 스테이시의 광고를 본 순간 이 모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지만, 그래도 단지 모델이 내 취향이라는 이유로 비싼 에코백 따위를 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매우 집요했고, 내가 SNS를 할 때마다 그녀의 사진을 보여주며 나를 괴롭혔다. 여기서 그들이란 다름아닌 AI다. 내가 뭘 클릭하는지를 일일이 감시하는 괴물들.

그러던 중 라네즈와 조셉 앤 스테이시가 콜라보해 쿠션과 니트백을 같이 판다는 정보를 입수했지만 그래도 선뜻 살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가격이 반값으로 떨어지고, 내가 조셉 앤 스테이시의 공식 온라인몰에서는 마음에 드는 컬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동안에도 그녀는 집요하게 나를 유혹했다. 아나스타샤. 아나 G 말이다.

의외로 이 로고가 마음에 들었다.

여기까지 했으면 그래도 퍽 기특하게 나름 잘 참은 거라 생각하는데, 마지막에 버스 정류장에서 조셉 앤 스테이시의 스몰 사이즈 니트백을 걸친 작고 예쁜 아가씨를 보고는 결국 내가 졌음을 직감했다.

그렇게 해서 결국 라네즈와 조셉 앤 스테이시가 콜라보한 이 화장품과 가방을 결국 사고야 만 거다. 얄팍하고도 집요한 상술의 승리였다.

하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고, 무엇보다 너무나 예쁜 화장품과 가방을 보며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잠깐이지만 내가 이렇게 예쁜 걸 가져도 되는 사람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나 하고 생각해보니, 결국 이유는 하나였다. 취향저격의 외쿡 모델에게 반해 버렸다는 어처구니없는 사실에서 출발해, 생전 이름조차 듣지 못한 조셉 앤 스테이시라는 생소한 브랜드의 가방을 구입하고 말았다는 거다.

이쯤 되면 아나스타샤를 원망하고 싶어진다. 이게 다 아나스타샤 너 때문이다.

네가 다 책임져라 Ana G.


*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건 맞구나. 돈으로 내가 원하는 사람을 가졌다는 착각조차 살 수 있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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