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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savina Jan 18. 2021

9. 왜 밀크맨은 영국측 인사가 아니었나

독후감 <밀크맨> 다시 읽기

애나 번스의 <밀크맨>에서 주인공에게 집요하고도 교활한 접근을 시도하는 밀크맨은 IRA, 즉 북아일랜드독립무장게릴라군의 핵심 간부이자 중년의 유부남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왜 밀크맨을 적군인 영국측 전경 간부가 아닌 "이쪽 편" 즉 아이라 간부로 설정했을까 하고 그 이유를 잠시 추측해 보았다.

<밀크맨>은 북아알랜드 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몇 가지로 나뉘어진다. 일단, "악"과 "선"을 구분해 서로 싸우는 식의 유치한 이분법이 전체적 맥락에서 주제 전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테고. 두번째로, 만약 <밀크맨>이 영국 측 인사였다면 과연 이 작품이 맨부커 상을 받는 게 가능했을까? 작가는 영국과 아일랜드 간의 해묵은 분쟁을 새삼스레 끄집어내 격화시키는 게 목적이 아닌 만큼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영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작품 곳곳에서 보여준다. 그들에게는 "서로간의 입장 차"(라고 쓰고 정신병 수준의 편가르기라고 읽는다)만이 있을 뿐 어느 쪽이 선이고 악이라는 식의 단정적 규정은 없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성들이 온갖 노력애도 불구하고 성폭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분명한 대답이 바로 이 밀크맨의 캐릭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주인공에게 있어서 밀크맨은 갓 입사한 여사원을 집요하게 유혹하는 회사 중견 간부같은 존재다, 회유와 협박이 이어지는데, 회유에는 굴하지 않을 수 있어도 협박에는 이길 재간이 없다. 너 가만 안 둬, 가 아니라 네 애인, 네 친구, 네 가족 가만 안 둬 라는 식으로.

그러면 이런 협박에 근본적으로 저항할 수 없는 이유는 뭘까. 여자들에게 묵시적으로  가해지는  압박. <숭고하고 위대한 헌신>이라 쓰고 "그냥 너 하나 희생해"라고 읽는 강요된 선택, 결국은 그 등 떠다밀리는 강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여성들은 "비자발적 순응"으로 답한다. 남자들이 성폭력의 혐의를 모면하는 교묘한 술책이다. 그런데 <밀크맨>의 경우는 주위가 이런 현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모두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오래 전, 이런 식으로 행해지는 성폭력울 견디다 못해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했던 대학원 조교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힘과 권력을 지닌 존재가 자기의 위신을 손상시키지 않고도 원하는 것을 취하기 위해 쓰는 술책이 얼마나 끈질기고도 교활한지를 이처럼 명확하게 보여주는 이야기가 요 근래 드물었다.

만약 밀크맨이 영국 전경 쪽 간부였다면 어땠을까. 오하려 아이라 간부보다는 더 솔직하고 노골적으로 접근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기가 조금은 편해졌을까. 혹은 주변으로부터 도움을 받기 쉬웠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어느 쪽 간부였든 간에 근본적으로 달라질 건 없다. 그러나 하필이면 "우리 쪽"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협력해야 하는 쪽에서 남도 못할 짓을 해 오는 이 곤혹스러움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래서 결국 밀크맨은 영국 전경 간부가 아닌 아이라 반군의 유부남 중년간부, "하필 우리 편"의 누군가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흐려지는 선과 악의 경계에서, 사람들은 어느때보다 주도면밀하고 공정한 판단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 그냥 판단을 포기해 버린다. 대신 루머를 채택한다. "믿고 싶은 루머"를 골라서, 그 루머에 안착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밀크맨>이 맨부커 수상작이 된 데는 전혀 이견이 없다.

다만, 마지막으로 옥의 티 하나만 짚어보자.

아니, 아버지가 10년 전에 죽었는데 막내가 세 살?


"지난 십 년 사이에"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을 쓰긴 했지만, 아빠가 10년 전에 죽었는데 막내가 세 살이라는 건 너무 심했다. (엄마 어떻게 된 거죠???) 이 경우는 아이가 유복자라 해도 아빠가 최소 4, 5년 전에 죽었다고 해야 (처음 죽은 가족이 아빠라고 하니까) 말이 된다. 결국 "지난 오 년 사이에" 정도가 합당한 표현이 될 듯한데, 맥락을 살펴본 바 출판사도 미처 눈치 못 챈 (혹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은) 작가의 실수가 아닌가 싶다. 혹시 눈여겨보신 분들은 저 대신 영국 쪽 출판사에 문의해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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