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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savina Jun 23. 2021

JAZZ 99 -1

재즈 나인티나인


1.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너는 아주 깊고 날카롭고 지혜로운 육안을 가진 사람이다.’ 라고. 그러나 내가 그 말 때문에 우쭐해지려는 순간 그 누군가가 다시 말했다. ‘그러나 너는 장님이다. 왜냐하면 마음의 눈이 멀었으니까. 그러니까 너는 마음이 먼 장님이다.’

 자, 이 말을 한 사람에 대해서는 결코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이 사람이 한 말에 대해서도 두 번 생각할 필요가 없다. 오로지 단 한 마디만 제외하고. 그 단 한 마디가 무엇이냐 하면, ‘너는 마음이 먼 장님이다’라는 말이었다. 그 말은 나를 겨냥한 무수한 말들 가운데 단 하나의 진실이었고, 나를 아프지 않게 한 단 하나의 낭만적인 비유였으며, 또한 멀지 않은 미래에 만들어질 내 짧고 쓸쓸한 추억과 연관이 있는 단 한 마디의 문장이었다.     


  알다시피, 추억만으로는 결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다. 그런데도 나는 지독하리만치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내뱉는 말에 무관심한 채 수많은 하루들을 이렇다 할 의미 없이 ‘내 소유물’로 만들어왔다. 결코 길지 않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내 삶은 ‘살았다’는 표현보다는 그저 ‘구경했다’는 말이 더 어울릴 법한 그런 삶이었다.      

  어느 날 그런 자신에 대해 후회하게 되었을 때조차도 나는 열정적인 분노로 가슴을 치는 법을 몰랐다. 그런 때조차도 나는 단조롭고 쓸쓸한 부조리극을 상연하는 무대 위에 덩그러니 선 배우의 모습을 지켜보며 팔짱을 끼고 쓴웃음을 짓는 관객의 심정이었다. 배우도 나였고 관객도 나였다. 나는 신이 아닌 인간에게 질문하고 싶었지만 인간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했던 때에, 참으로 기적적이게도 내게 한 인간이 나타났다. 나는 그 인간에 대해, 보통 사람들이 흔히 늘어놓는 길고 장황하고 감동적이며 듣고 있으면 저절로 눈물이 날 그런 거창한 감탄사를 늘어놓고 싶지는 않다. 그는 단지,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그저 인간이었을 뿐이다. 위대하지 않았고 존경스럽지 않았다. 식후에 트림을 하지 않는 사람도 아니었고 소리나지 않게 오줌을 누는 법을 아는 사람도 아니었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냐고? 그는, 단지 나라는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갖기 위해 태어났을 뿐이었다. 그 이외에도 그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았을 테지만, 나는 그 일들에 대해서는 전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내 특유의 지루하고 장황한 독설을 피하려 한다. 어느 누구도 지금까지 그러한 독설을 견뎌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모든 사람들에게 아주 쉽게 통용되는 단어가 있다. 그 단어를 통해서 이야기해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그 단어를 사용할 용의가 있다. 바로 ‘사랑’이다. 

  얼마나 우스운가. 그토록 많은 완곡어법을 사용하려고 발버둥친 끝에 결국 도달한 지점이 ‘내가 어떤 남자를 사랑했었다’는 간단하고 분명한 사실의 코앞이라니. 그렇다. 용기 있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바로 그 지점, ‘사랑했다’는 그 서술어에 발을 콕 찍고 다시 고백하기로 한다. 나는, 사랑했다, 그 남자를.      

  그리고 이제 그 남자를 어떻게 사랑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듯이, ‘꼭 들어줄 필요는 없어요........’라든지, ‘들어줘서 고마워요’라는 식으로 말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는 선심을 쓰지도 않고 선심을 요구하지도 않을 것이다. 단지 강요할 것이다. 당신들은 내 얘기를 들어야 한다. 언제 어느 때, 당신들이 나와 같은 상황에 직면했을 때, 나처럼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나와 같이 어리석은 행동을 저지를 당신들을 생각하면 나는 참을 수 없다. 

  당신들은 내 얘기를 들어야 한다. 나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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