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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savina Jul 11. 2021

JAZZ 99 -9

재즈 나인티나인

9. 



  ‘인타이’라는 그의 이름을 처음으로 듣고서야 그가 중국인임을 알았다. 그러나 말투에 어눌하게 남아있는 중국식 악센트(중국어를 잘 몰랐던 나는 그게 중국식 악센트였다는 것도 몰랐지만)를 제외하고 외면상 그가 중국인임을 알려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스물 여섯 살이었고, 나보다 두 살 적었다. 스무 살 때 한국에 왔으니, 그렇게 유창하게 우리말을 하는 것도 딴은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가끔,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끊은 채 한참을 망설이다가 다시 말을 이을 때가 있었다. 틀림없이 문장을 머릿속으로 조합하고 있었으리라. 

  그는 인근의 공사장을 돌아다니며 일을 하고 있었다고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 말을 믿기가 힘들었다. 계양동은 한적한 동네였고, 그 일대의 아파트며 상가들은 모두 자리가 잡혀 있어서 그 근처에서 공사를 진행 중인 건물은 거의 없었다. 단지 산 너머에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었지만 그나마 기초 공사도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의문을 제기하자 그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가끔은 대구까지 나가서 화물 트럭을 운전하기도 해요. 여러 가지 잡다한 일을 닥치는 대로 하는 거죠. 돈만 된다면요.”

  그 이외의 일들, 즉 그의 현재의 일이 아닌 과거나 미래의 일들에 대해서는, 그는 한 가지도 알려 주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어떻게 지냈는지, 양친은 생존해 있는지, 또 형제자매가 있는지, 한국에는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등등은 나로서는 모를 일이었다. 단지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에 텐진(天津) 부근이라고만 대답했을 뿐이었다. 




 “도대체 그 나무를 찍어서 뭘 하겠다는 거였어요?”

  인타이의 목소리에는 나무람보다는 의구심이 더 많이 섞여 있었다. 

  “그 나무의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냐구요.”

  묘하게 유럽풍 나무의 분위기를 풍기는 그 나무의 줄기와 나뭇가지가 연출하는 선이 마음에 들었노라고 대답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대답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 사이에는 불문율이 형성되었다. 즉, 서로의 신상에 대해서는 묻지 말자는 불문율 말이다. 따라서 나 역시 내 이름과 나이를 제외한 다른 사연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 맛있는 라면을 먹고, 힘겹게 집으로 돌아가던 날 인타이는 나를 애써 바래다주려 하지 않았다. 인타이의 자취집에서 내가 사는 원룸까지 장장 일 킬로미터 가량을 걸어가야 했는데도 말이다. 인타이의 자취집은 Y대학의 정문과 가까운 하숙촌 인근의 골목이었고 내가 사는 원룸은 후문 쪽의 고적한 동네였으며, 그 사이를 광막하고 거대한 Y대학의 캠퍼스가 가로지르고 있었다. 택시를 타기에는 어정쩡한 거리였고 버스를 타자니 정문에서 계양동으로 향하는 버스는 단 한 대도 없었다. 인타이는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심드렁하게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병원에 가 봐요. 혹시 심하게 다쳤을지도 모르니까.”

  다행이랄 것도 없이, 타박상 이외에는 이렇다 할 부상도 없었다. 병원을 나오면서 나는 이제 인타이와는 만날 일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이렇다 할 아쉬움도 그때는 느끼지 못했다. 인타이를 다시 만난 것은,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모처럼 Y대에 볼일이 있다며 들른 친구를 만나기 위해 Y대 정문으로 나갔을 때였다. 

  그녀와 점심을 먹고 헤어진 후, 어느 새 나의 발걸음은 오르막길을 걸어 원룸 밀집 지대를 지나 갈비 집과 호프집 사이의 허름한 골목을 더듬고 있었다. 인타이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외롭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남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같이 잘 남자가 아니라, 같이 커피를 마시고 산책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내 또래의 말이 통하는 남자 말이다. 인타이가 그 조건에 부적격함을 알면서도 발이 저절로 그리고 간 것이다.  

  인타이의 집을 찾기가 의외로 쉽지 않았다. 내 머리는 인타이의 집이 있는 정확한 위치를 기억하지 못했다. 어느 골목에서인가 발길을 멈추고 서성대던 나는 그의 집을 찾기를 포기하고 골목을 나왔다. 그때 그 골목의 옆으로 이어진 또 다른 골목에서 웬 여자가 악다구니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여자의 악다구니보다는, 그 악다구니가 들려오는 널찍한 골목이 이상하게도 눈에 익다는 생각에 나는 얼른 그리로 들어섰다. 내 판단이 맞았다. 내가 기억했던 것보다 훨씬 넓었던 그 골목을 나는 매우 좁은 골목으로 기억했었고, 그래서 좁은 골목만 골라 다녔던 것이다. 악을 쓰는 여자의 목소리가 차츰 커지면서 이내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인타이를 상대로 뭔가를 심하게 따지고 있었다. 나는 인타이가 나를 보지 못하도록 골목 어귀에 세워진 차 뒤로 얼른 몸을 감추었다. 기세등등하게 악을 쓰던 여자는 지쳤는지 한풀 꺾인 소리로 인타이의 어깨마저 두드리며 뭐라고 연신 애걸복걸을 해댔다. 인타이 역시 그녀에게 열심히 뭐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그의 표정을 정확히 관찰하기에는 내가 서 있는 곳이 그로부터 다소 멀었지만, 그가 웃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순간 뭔가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그 여자의 기세등등한 모습과, 그녀의 기분을 상하지 않으려는 듯 그저 넉살좋게 웃기만 하는 그의 모습이 내 짐작을 확신으로 굳혔다.   

  인타이의 표정을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다. 그가 웃는 모습이 이상하게도 신기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윽고 여자는 인타이를 놓아 주었고, 인타이는 내가 서 있는 쪽과 반대편 골목으로 걸어나갔다. 그가 사라지자 나는 여전히 인타이가 사라진 쪽을 보며 식식거리는 여자에게로 다가갔다. 

  “저 실례지만 아주머니, 저 사람이 아주머니한테 무슨 실례되는 짓을 했기에 그렇게 화를 내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여자는 무슨 상관이냐는 뜻으로 나를 흘끗 쳐다보았다. 최대한 공손하게 예의를 갖춘 내 모습에 다소 마음이 누그러졌는지 그녀는 투덜거리며 대답했다. 

  “아가씨가 저 총각을 아나? 참말로, 안 그래도 먹고 살기가 팍팍한 형편에 월세를 벌써 한 달째 밀렸다 아이가. 좀 있으면 두 달째 밀리는데, 내라 캐도 말만 낸다낸다 하면서 안즉도 안 내고 있다 아이가.”

  “겨우 한 달 밀렸는데요?”

  몇 달치도 아니고 지난 달 월세를 내지 않았을 뿐인데, 어이없어하는 내 말투가 비위에 거슬렸는지 여자는 더욱 화를 냈다. 

  “그라모 아가씨가 대신 내 줄 기가? 참말로 말이나 못하면......”

  나는 여자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재빨리 내 지갑을 살폈다. 친구와의 약속도 있었고, 마침 학원에서 수당이 나온 날이라 지갑에는 그런대로 돈이 있는 편이었다. 나는 여자에게 집세를 물었다. 돈이 액수보다 조금 모자라긴 했지만 나는 선뜻 지갑에 든 지폐를 꺼내어 여자에게 건넸다. 

  “모자라는 3만원은 다음 달 집세에 얹어 받으세요. 일단 이거라도 받으시고, 저 총각 괴롭히지 마세요. 그리고 영수증 써 주세요.”

  영수증까지 챙기고 싶지는 않았으나 여자의 야박한 인심을 생각하면 충분히 돈을 받고도 오리발을 내밀성 싶었다. 여자는 약간 놀란 듯했으나, 이내 눈웃음을 지으며 돈을 받아들었다. 아마도 그녀는 처음부터 내 주머니에서 집세가 나올 것을 짐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요기 잠깐만 있으소. 내 금방 써 갖고 나올 테니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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