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에너지장
최근 헬스장에서 러닝을 자주 한다. 시간이 부족해 오래 뛰기보다는 짧고 빠르게 달린 뒤 곧장 집으로 돌아오는 게 습관이 되었다. 오늘도 러닝을 마치고 땀으로 흠뻑 젖은 채 11층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마침 칸은 비어 있었고, 편안하게 내려가는 순간이었다. 그때 멀리서 젊은 남자 두 사람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애매한 거리였지만, 나는 고민 없이 문을 다시 열어주었다. 두 사람은 군말 없이 함께 내려갔다. 그들은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았지만, 나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배려란 원래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층에 도착해 건물 밖으로 나가려면 무거운 문 두 개를 열고 지나가야 한다. 나는 늘 하던 대로 힘겹게 문을 열었고, 그 뒤를 따르던 두 청년이 쉽게 나올 수 있도록 문을 잡아주었다. 그 순간, 한 청년이 "고맙습니다" 하고 짧게 인사를 건넸다. 의례적인 말일 수 있지만, 내 마음은 따뜻해지고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그 순간 깨달았다. 배려라는 건 돈도 들지 않으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기분 좋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데일 카네기는 《인간관계론》에서 "사람은 논리보다 감정에 의해 움직인다"고 했다. 실제로 작은 배려는 상대의 방어심을 녹이고, 불필요한 설명과 변명을 막아주는 힘이 있다. 지하철에서 자리를 조금만 좁혀 앉는 것만으로도 옆 사람은 불편을 느끼지 않고, 오해가 쌓이는 상황도 예방된다. 반대로 사소한 불편을 방치하면, 내리는 순간까지도 서로 불쾌감을 쌓아가게 된다.
단 한 번의 배려로도 불필요한 싸움과 언쟁을 예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운전 중 끼어들기를 양보하지 않으면 곧바로 시비가 붙지만, 잠시 브레이크를 밟아 양보하면 갈등은 애초에 생기지 않는다. 배려 없는 선택은 결국 우리의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심장 박동을 높이며, 잠들기 전까지 불편한 기억을 되새기게 한다.
아담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은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공명하는 본성"을 가졌다고 했다. 배려는 바로 이 본성을 사회 속에서 실천하는 방법이다. 직장에서 동료의 작은 실수를 감싸주는 것도 그 연장선이다. 그것은 큰 도움이라기보다는 작은 배려일 수 있지만, 훗날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손을 내미는 건 그 동료일지도 모른다.
공감이론에 따르면, 배려가 몸에 밴 사람은 좋은 공감 에너지장을 형성한다. 이 에너지를 통해 우리는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자연, 사물, 인간관계와 부드럽게 교류하며 공감을 유지할 수 있다. 뜨거운 태양을 짜증이 아닌 감사로 받아들이고, 세찬 바람을 불평 대신 체험으로 전환하며, 무거운 옷의 불편함조차 내 몸을 관리할 신호로 여길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건강과 마음의 평온으로 이어진다.
물론 인간 사회에는 나와 맞지 않거나 상충되는 공감 에너지장을 가진 이들이 많다. 공감이론의 8대2 법칙에 따르면, 다섯 명 중 한 명은 반드시 나와 정반대 성향을 지닌다. 하지만 마르틴 부버가 말했듯, 인간은 "나-너"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배려는 그 '너'를 인정하는 첫걸음이며, 충돌을 완화시키는 유연한 힘이다.
작은 손해처럼 보일지라도, 사실은 더 큰 이득을 가져온다. 배려가 쌓이면 덕이 되고, 그 덕은 다시 공감 에너지로 돌아와 나를 지켜준다.
결국 배려는 손해가 아니라, 가장 이득이 되는 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