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핑커와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그리고 공감이론
스티븐 핑커의 책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읽으면서 다시금 느낀 것은, 인간은 이제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날 준비가 되었다는 점이다.
과거의 인간 중심 사고란 어떤 것이었을까?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신의 축복을 받은 유일한 생물이라는 믿음, 지구의 지배자로서 자아와 영혼을 결부시키고 모든 판단의 기준을 인간 위주로 삼는 관점, 동족과 가족 중심의 시선, 그리고 무엇보다 1인칭 시점에서만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였다. 그러나 이 오래된 관점은 점차 설득력을 잃고 있다.
핑커는 이런 시대적 흐름을 거슬러, 도덕·사회·예술·성 문제까지 기존의 통념을 전복하는 주장을 펼쳤다. 그의 책을 통해 마음, 감정, 언어, 예술 등이 선천적으로 내재된 계산 장치라는 설명을 접하면, 우리는 기존의 인간 중심 세계관에서 벗어나 더 넓은 진화를 바라보게 된다.
스티븐 핑커는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서 인간의 마음을 단순한 빈 서판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마음을 “자연 선택을 통해 진화한 정보처리 장치”라고 정의하며, 언어와 감정, 도덕과 예술, 이타성까지도 모두 진화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의 마음은 문화가 새겨 넣는 흰 도화지가 아니라, 진화가 남긴 계산 메커니즘의 집합이라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이다.
핑커는 인간의 마음이 여러 개의 특화된 모듈로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 언어 모듈은 협력과 소통을 위해, 얼굴 인식 모듈은 사회적 유대를 위해, 공포와 혐오 모듈은 위험 회피를 위해, 성적 매력 판단 모듈은 번식 성공을 위해 진화했다는 것이다. 마음은 범용의 하나의 장치가 아니라, 생존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도록 설계된 도구들의 집합이라고 그는 말한다.
또한 핑커는 감정을 단순한 주관적 경험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사랑, 질투, 분노, 죄책감 같은 감정들을 모두 생존과 번식을 위한 전략으로 해석한다. 사랑은 양육 투자를 보장하고, 질투는 배우자의 이탈을 방지하며, 죄책감은 집단 내 협력을 유지하게 한다. 감정은 비합리적 방해물이 아니라, 오히려 합리적 선택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유도하는 계산 메커니즘이라는 것이 그의 관점이다.
핑커는 인간의 마음을 계산 장치로 규정한다. 지각은 입력 데이터 처리이고, 기억은 정보의 저장이며, 사고는 규칙 기반 연산이다. 감정조차도 생존을 위한 가중치를 조정하는 알고리즘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인간의 마음은 자연선택이 오랜 세월에 걸쳐 설계한 복잡한 계산 장치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당시 주류와 크게 달랐다. 도덕이나 사회, 예술, 성 문제를 문화와 환경의 산물로만 보던 기존의 관점을 거스르며, 인간의 본성을 강하게 강조했기 때문이다. 핑커의 시각은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인간은 신이 특별히 선택한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진화한 하나의 존재일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드러낸다.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서 내려놓는다. 우리가 가진 감정과 도덕, 예술과 언어는 특별한 영혼의 산물이 아니라, 진화를 통해 생존에 유리하게 다듬어진 전략들이다. 이 책은 인간의 본성과 마음을 새롭게 이해하게 만드는 전환점이며,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자연의 일부로서 우리 자신을 바라보도록 이끈다.
공감이론에서는 자아를 공감OS에서 탄생한 이성OS라고 설명한다. 리처드 도킨스가 인간을 ‘생존 기계’라고 표현했듯이, 자아는 결국 존재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산물일 뿐이다. 마치 컴퓨터의 수많은 어플리케이션 중 하나가 스스로를 운영체제라고 착각하는 것과 같다. 어플리케이션을 구동하는 운영체제, 전력, 하드웨어가 진짜 주인이고, 그 모든 것의 근원은 존재하려는 의지다.
핑커의 관점은 여기에 흥미로운 보완을 제공한다. 인간의 마음, 감정, 언어, 예술이 계산 장치라면, 이는 곧 공감OS 위에 설치된 디폴트 어플리케이션과 같다. 왜 이런 장치가 필요할까? 인간은 짧고 유한한 수명을 가진 존재다. 이 한정된 시간 안에서 복잡한 마음과 감정, 언어와 예술을 발전시키려면, 생존에 유리한 효율적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그래서 공감OS는 이를 모듈화하고 패턴화하여 태어날 때부터 장착해둔 것이다.
그러나 이 디폴트 어플리케이션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살아가면서 환경과 공감을 통해 끊임없이 진화한다. 때로는 새로운 공감이 생겨나 하나의 삶 안에서 전혀 새로운 어플리케이션이 추가되기도 한다. 심지어 기존의 어플리케이션들이 서로 공감하며 상호작용하면서 이전에는 없던 퍼포먼스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것이야말로 공감이론이 말하는 창발이다.
핑커의 논지는 공감이론의 핵심과도 맞닿아 있다. 그의 설명은 공감이론의 다양성, 8대2 법칙, 공감OS와 이성OS 구조와 깊은 유사성을 보인다. 핑커가 과학자로서 수많은 데이터와 근거를 토대로 가설을 검증하며 설득해왔다면, 공감이론은 철학적 근본 물음과 연결된다. 공감이론은 실험과 수치가 아니라 존재의 본질을 묻는 사유이기에 더 어려운 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핑커라는 인물은 공감이론을 지탱할 든든한 레퍼런스가 된다. 공감이론이 단지 철학적 상상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 과학과 나란히 대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시대를 초월해, 이렇게 다시금 한 위인과 대화를 나누는 순간이 벅차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