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공간이 일상이 되기까지.
치앙마이에서 보낼 7박 8일의 첫 집이 정해졌다. 하지만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출발 10일 전, 한국 뉴스에서 본 치앙마이 홍수 소식 때문이었다. 물에 잠긴 거리들, 무릎까지 차오른 물속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과연 괜찮을까?
...
"여기 아무렇지도 않아. 괜찮아."
홍수 당시 치앙마이에 머물던 부모님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을 달랠 수 없어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도 물어봤다. 우기가 끝나는 시기라 괜찮고, 이 지역은 배수가 워낙 좋다는 답변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
문을 여는 순간 나를 맞이한 건 넓고 깔끔한 공간이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려온 듯한 따뜻함이 공간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캐리어를 바닥에 내려놓고 천천히 둘러봤다. 거실, 침실, 부엌까지 각 공간이 제자리를 찾고 있었고, 여행객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곳곳에 묻어났다.
특히 눈에 띈 건, 여분으로 준비된 다량의 샤워기 필터와 호스트님 계정으로 사용할 수 있는 OTT 서비스였다. 이런 작은 배려들이 쌓여 낯선 도시의 불안을 조금씩 지워주었다.
...
침실 창문 너머로 펼쳐진 풍경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광활한 야외수영장과 초록빛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풍경이 나를 일찍 잠에서 깨워주었다. 커튼을 열 때마다 부드러운 햇살과 잔잔한 물결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낯설었던 공간이 서서히 내 일상의 일부가 되는 듯했다.
'아, 이곳이 내 집이구나'
그 마음이 어느새 자연스레 자리 잡았다.
물론 모든 게 완벽하지만은 않았다. 촘촘한 방충망이 있어도 창문을 열면, 사교성 좋은 작은 벌레들이 놀러 왔다. 처음엔 깜짝 놀랐지만, 이마저도 이곳 생활의 일부라 여기며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
첫날부터 삐걱거리던 세탁실 문을 평소보다 힘껏 당겼더니.... 이게 웬일인가.
내 키보다 1.5배는 커 보이는 문이 통째로 빠져 내 어깨에 기대어 있었다.
"어... 어떡하지?"
30분 동안 혼자 끙끙대며 문을 다시 원 상태로 되돌려 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호스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The door fell off. Please help!!"
...
불과 2시간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날은 주말이라 콘도 수리공은 쉬는 날이었지만, 호스트님은 직접 전문 업체를 섭외해 주셨다. 내가 외출한 사이 모든 걸 깔끔하게 해결해 주시고, 수리 과정과 결과를 꼼꼼하게 촬영해 사진과 영상으로 보내주어 멀리 있어도 안심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 분에게는 단순히 방을 빌려주는 게 아니라, 낯선 땅의 여행객을 가족처럼 챙겨주는 진심 어린 마음이 있다는 것을.
게다가 숙소 위치도 훌륭했다. 큰 쇼핑몰이 코앞이라 필요한 것을 쉽게 구할 수 있었고, 주변 지름길 덕분에 어디든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길을 몸에 익혀갈수록, 이곳은 점점 내 동네가 되어갔다.
더 머물고 싶었지만, 인기 있는 숙소라 다음 예약이 이미 가득했다. 헤어질 생각에 아쉬움이 남았지만, 감사함이 훨씬 더 컸다.
...
늘 같은 풍경이었지만, 처음과는 달랐다. 첫날엔 조심스레 문을 열었던 내가, 오래전부터 살던 내 집처럼 편안하게 그 공간과 함께 하고 있었다.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이렇게나 빨리 지나갔을까. 짧았지만 이곳은 처음부터 내게 꼭 맞는 집이었다.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던 수영장은,
그 일상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조용히 속삭이며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