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방인을 울린 태국 부부의 마지막 배웅.
다른 여행지보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유독 빠르게 지나간 듯했다.
치앙마이로 돌아가는 미니밴을 타기 전, 마지막으로 숙소 풍경을 눈에 담는데, 하늘이 유독 흐렸다. 여행 내내 눈부시게 밝기만 하더나. 떠나기 전날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떠나는 날 아침까지도 그칠 줄을 몰랐다.
상상력이 풍부한 대문자 N이라서 그럴까. 나도 이토록 아쉬운데, 빠이도 내가 떠나는 게 서운해 슬피 우는 것만 같았다.
워낙 미식가인 데다 빠이의 숨은 맛집을 꿰뚫고 계신 숙소 사장님의 남편분께서 전날 저녁, 슬그머니 물어오셨다.
"내일 아침 같이 죽 먹으러 갈래요?"
말해 뭐 해. 매번 실패 없는 맛집만 데려가 주시는 분인데. 정확히 어떤 죽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단박에 "Of course!"를 외치며 방긋 웃었다.
빠이에서의 마지막 아침이라니. 설레는 마음에 약속 시간인 오전 7시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눈이 떠졌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채비를 마치고 부부를 기다렸다.
아침을 잘 챙겨 먹지 않는 편이지만, 마지막 날이기에 그들을 따라나섰다. 도착한 곳에서는 낯설고도 신기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하루 종일 비가 왔지만 폭우는 아니어서인지, 허술한 천막 아래 현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따뜻한 아침을 즐기고 있었다. 딱 아침 장사만 하는 곳이라, '일찍 일어나는 새'들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었다.
우리는 천막 대신 근처의 다른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외부 자리가 넉넉지 않고 비가 오니 조금 더 편한 곳에서 먹게 하려는 숙소 사장님 부부의 배려였다.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지만 눈치껏 살펴보니, 외부 음식을 사 오더라도 음료나 간단한 먹거리를 주문하면 식당 안에서 먹을 수 있는 시스템인 듯했다. 어찌 보면 서로 돕고 사는 그들만의 '상부상조' 문화가 느껴져 훈훈했다.
사실 죽을 돈 내고 사 먹을 만큼 즐기지는 않는 편이다. 그저 마지막 만찬이라는 생각에 웃고는 있었지만, 곧 헤어질 거라는 아쉬움에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무거웠다.
그런데 음식이 테이블에 놓이는 순간, "우와~"하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이건 정말 '최후의 만찬'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푸짐하고 맛깔스러운 비주얼이었다.
형형색색의 토핑이 듬뿍 올라간 죽을 보자, 조금 전까지 슬펐던 눈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입가엔 행복한 웃음꽃이 피었다. 나란 사람, 참 단순하다. 음식 하나에 이렇게 금세 기분이 바뀌다니.
맛은 더할 나위 없었다. 속 편해지자고 먹는 환자식이 아니라, 하나의 훌륭한 요리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부드러운 식감과 깊은 감칠맛에 배가 불러도 숟가락을 놓을 수 없었다. 내가 알던 죽과는 차원이 다른, 지금도 잊지 못할 '인생 죽'이었다.
...
죽을 다 같이 맛있게 비우고 숙소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숙소 사장님 부부가 "모닝커피 한잔하겠니?"라고 물어오셨다. 이번에도 나는 1초의 망설임 없이 "Of course!"를 외치며 그들을 따라갔다.
간판과 외관에서부터 '커피 고수'의 향기가 났다. 1일 1 커피를 실천하며 맛있는 커피를 찾아다니는 나에게 이곳은 선물 같은 곳이었다.
예감은 적중했다. 내가 마신 따뜻한 아메리카노도, 한 입 얻어 마신 카페라떼도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적당한 산미가 돌면서도 시지 않고 고소한 풍미. 그 절묘한 중간 지점의 맛. 산미를 싫어하는 사람도 반할 만큼 훌륭했다.
'우리 집 앞에 체인점 하나만 내주면 좋겠다'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할 정도로 마음에 쏙 들었다.
그렇게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웃음꽃을 끊임없이 피우는데도.... 마음 한편에는 '곧 헤어져야 한다'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었다.
마치 오락실에 있는 두더지 게임의 두더지처럼, 이 순간을 즐기려 '이성'이라는 망치로 꾹꾹 눌러봐도 야속한 아쉬움은 자꾸만 튀어 올랐다.
(아마 생각이 많은 INFJ인 탓에, 이별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나 보다)
...
아침 식사와 모닝커피를 마친 후 숙소로 돌아왔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잠시 각자의 시간을 가졌다.
어제 미리 싸둔 짐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내 몸무게의 3분의 1에 달하는 육중한 핑크색 캐리어와 검정 배낭을 밖으로 꺼냈다. 미니밴을 타기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1층 공용 공간에 앉아 계신 숙소 사장님 남편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서툰 영어로 대화를 이어가던 중, 그가 먼저 자신의 별명이 '마이(Mai)'라고 소개하며 물었다.
"너는 닉네임(별명)이 뭐야?"
나는 '왜 그런 걸 묻지? 꼭 있어야 했나?' 하는 표정으로 덤덤하게 대답했다.
"꼭 있어야 해요? 전 그런 거 없고, 그냥 제 이름 써요."
그러자 그는 예전 '왓 시 돈 차이' 사원에서 내가 태어난 요일을 몰랐을 때처럼, '아니, 왜 이걸 모르니?' 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나 또한 그때와 같은 호기심이 일어 그에게 되물었다.
"그럼 태국 사람들은 모두가 닉네임이 있나요?"
"태국 사람들은 본명이 너무 길어서 부르기 편하게 다들 닉네임이 있어. 이름이 두 개 있는 셈이지."
그가 알려준 본명은 정말 길었다. 이름이라기보다는 마치 거창한 사자성어나 호(號)가 잔뜩 붙은 문장처럼 느껴졌다. 그제야 왜 다들 짧은 별명을 쓰는지 이해가 갔다.
마지막 날까지도 새로운 문화를 배운다니, 그들의 삶은 알면 알수록 흥미로웠다.
일정이 길었던 만큼 캐리어도 배낭도 꽤 무거워졌는데, 남편분은 짐을 하나하나 직접 차에 싣고 내리는 수고까지 도맡아 해 주셨다. 미니밴 정류장까지 데려다주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의 배려는 한결같이 따뜻했다.
전날 밤, 잠 못 이루며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편지를 꺼냈다. 당신들을 만나 얼마나 감사했는지, 덕분에 5일이나 머물며 행복했는지, '두 분 덕분에 5일 여행 계획이 기분 좋게 무산되었다'라는 농담 섞인 진심을 담은 편지였다. 편지와 함께 한국에서 챙겨 온 화장품(니들샷)을 선물로 드렸다.
편지를 건네는 순간, F 감성이 충만한 나는 코끝이 찡해져 왔다.
"다시 돌아올게요"라고 말했지만, 한국으로 돌아간 뒤 상황을 장담할 수 없어 사실상 기약 없는 약속임을 알기에 더 애틋했는지도 모른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지만, 마지막 모습은 환한 미소로 남기고 싶어 꾹 참으며 손을 흔들었다.
...
그렇게 눈물을 참으며 작별했지만, 다행히 우리의 인연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스마트폰 화면 너머로 그들의 안부를 마주한다. 여전히 빠이의 '핫걸'답게 생기 가득한 사장님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내 입가엔 슬며시 미소가 번진다.
휴대전화 화면 속 그들의 웃음을 보는 것만으로도, 팍팍한 내 일상에 잠시 따스한 볕이 든다. 거창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그냥, 떠올리면 기분 좋아지는 사람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몸도 마음도 지칠 때면 사진첩 속 그들과 함께했던 추억을 꺼내 본다.
당신에게도 있나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웃게 만드는,
그런 고마운 인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