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 내리던 날, 빠이에서 마라탕을.

계획이 틀어진 자리에서 만난 뜻밖의 '최고'.

by 나들레



그날은 하루 종일

가랑비가 내렸다.


원래 숙소 사장님 부부와 함께 가기로 했던 식당은 날씨가 맑아야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잠시 고민한 끝에, 사장님은 내게 샤부샤부를 좋아하는지 물어보셨다.


날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잘 먹는 편이라 "Of course! I love it."이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우리가 찾아간 곳은 'ฟูฟู(Fufu)'라는 이름의 회전 샤부샤부 전문점이었다.





입장과 동시에 국물을 선택해야 했는데 사장님의 추천을 받아, 마라 향이 나는 매콤한 국물로 골랐다.


그렇게 나의 샤부샤부는,

뜻밖에도 '태국에서 만난 마라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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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낯선 조합에 잠시 고개를 갸웃했지만, 소스만큼은 익숙하게 만들기로 했다. 14가지 재료를 조합하는 소스 바에서 알싸한 마늘과 고추, 참깨를 듬뿍 넣어 '뼛속까지 한국인'다운 나만의 소스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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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으니, 모든 것이 신기했다. 회전 초밥처럼 식재료들이 선반 위를 도는데, 그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 기차 중에도 'SRT 기차'를 보는 듯했다. 먹고 싶은 것이 있다면 미리 생각해 두었다가, 내 앞을 스쳐 지나가기 전에 잽싸게 골라야 했다.


순발력이 없는 탓에, 번번이 숙소 사장님이 잽싸게 낚아주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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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해산물, 어묵 등 재료도 다채로웠지만, 내 눈은 오직 채소에 꽂혀있었다. 평소에도 'I love 청경채'를 외칠 만큼 좋아해서, 그날은 내 생일처럼 마음껏 청경채를 먹었다.


국물 맛은 한국에서 흔히 먹던 마라탕과 비슷해서 놀라울 정도로 입에 잘 맞았다. 얼큰하면서도 감칠맛이 돌고, 마라 향도 향긋했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자극적이지 않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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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가움은 국물만이 아니었다.


건두부, 푸주, 목이버섯, 유부, 옥수수면. 한국에서 마라탕을 먹을 때 꼭 넣던 재료들이 이곳 태국, 그것도 빠이라는 시골에서 다시 만나니 어찌나 반갑던지.


타국에서 만난 익숙한 맛에, 지금도 가끔 마라탕을 먹을 때면 이날의 향수가 떠오른다.





이곳은 물조차 사 마셔야 했기에, 이왕이면 낯선 음료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눈에 띈 음료 하나를 골라 번역기를 돌려보니 '매실주스'였다. 하지만 내가 알던 달콤한 맛과는 달리, 씁쓸한 맛이 강한 건강한 '매실차'에 가까웠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그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 마라탕의 얼얼함을 씻어주자, 어느새 그 낯선 맛이 내게 기분 좋게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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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리에 알록달록한 접시가 쌓일 정도로 푸짐하게 먹고 음료까지 마셨는데도, 한국 돈으로 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맛있게 다 먹고 나갈 때쯤, 식당 옆에는 작은 중국 식료품점이 발길을 붙잡았다. 알록달록한 포장지의 중국 먹거리와 생필품들을 들여다보니, 잠시 잊고 있던 중국 여행의 기억이 스쳐 갔다.


하지만 그 추억보다 신기했던 것은 이렇게 시골 같은 빠이에 또 다른 나라의 문화가 이토록 옹기종기 모여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그것은 마치 이탈리아의 한적한 시골 마을을 여행하다, 난데없이 '몽골 전통 양고기' 전문점이나, '브라질 슈하스코(Churrasco)' 식당을 마주친 듯한, 그런 낯설고도 유쾌한 기분이었다.



때로는 계획이 틀어진 그 자리가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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