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리는 왜 낯선 여행지에서 '익숙함'을 찾아 헤맬까.

님만해민, 그 모순적이고도 다정한 안온함에 대하여.

by 나들레



올드시티의 고즈넉하고

다정한 골목을 잠시 뒤로하고,

'님만해민(Nimmanhaemin)'에

짐을 풀었다.


치앙마이 공항과 가깝고 도시적인 색채가 짙은 이곳은, 흡사 서울의 가로수길이나 도쿄의 오모테산도를 옮겨놓은 듯했다.




2222.jpg
20241111_212220.jpg
20241108_204132 복사.jpg
20241108_202730.jpg


5년 전, 이곳 마야 몰 뒤편에서 2주를 머물렀던 기억 때문일까. 낯선 타지임에도 마치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듯한, 묘하고도 세련된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언어만 다를 뿐, 편리함과 혼자 온 여행자도 안심할 수 있는 치안 덕분에 이 도시의 밤은 여행자의 긴장을 누그러뜨리기에 충분했으니까.




20241111_222617.jpg
11111.jpg
4444.jpg


그중에서도 나의 발길을 가장 오래 붙잡아 둔 곳은 '원님만(One Nimman)'이었다.


마야 몰과 원님만은 님만해민의 양대 산맥이라지만, 나는 까만 밤하늘 위로 아른아른한 주황빛으로 그림을 그려놓은 듯한 이곳, 낭만적인 붉은 벽돌로 둘러싸인 원님만을 조금 더 편애했다. 맛깔스러운 먹거리와 매일 밤 달라지는 버스킹 선율이 나를 그곳으로 유혹했다.


특히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질 무렵의 원님만은 위험했다. '대문자 T'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도 이곳의 조명 아래 서면 숨어 있던 감성이 불쑥 튀어나올 만큼, 공기 자체가 낭만으로 치환되는 곳이었으므로.


이곳은 나에게 '단골집' 같은 곳이었다. 근처에 머무는 5일 동안, 거짓말처럼 매일 밤 이곳을 찾았다. 양파처럼 까도 까도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되는 곳. 누군가 본다면 그곳에 숨겨둔 애인이라도 있냐고 물었을지도 모르겠다.




2222.jpg
20241110_105244.jpg
4444.jpg


그렇게 매일 밤 이곳을 드나들며 마음의 경계가 허물어졌기 때문일까. 평소라면 절대 시도하지 않았을 무모한 용기가 불쑥 고개를 들었다. 이토록 다정한 공간에서라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음식과도 화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원님만 안쪽에는 마치 미식 뷔페처럼 다양한 식당들이 불을 밝히고 있었는데, 웬만하면 뭐든지 잘 먹는 나에게도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 하나 있었다.


바로 '똠얌꿍'이었다.




20241108_181140.jpg
1111.jpg


나에게 똠얌꿍은 저 우주 너머에 존재하는 높은 벽과도 같았다.

강렬한 담긴 고수의 향과 시큼한 국물이라니.


마치 과일의 황제라 불리지만, 그 낯선 맛과 식감 때문에 도무지 친해지기 어려운 두리안처럼, 내게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유독 밤공기가 스산하게 느껴졌던 탓일까, 아니면 몸이 뜨끈한 국물을 간절히 원했던 걸까.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를 일이다.


불현듯 솟아난 묘한 용기에 나는 홀린 듯 지도 앱을 켰고, 현지인과 한국인 모두에게 사랑받는다는 어느 즉석 똠얌꿍 식당을 찾아 나섰다.


식당 앞은 이미 포장 대기 줄과 빈자리 하나 없이 꽉 들어찬 손님들로 북적였다.

순간, 직감이 내게 말했다.


"여긴 진짜다!"


다행히 자리가 났고, 나는 비장하게 가장 비싼 해산물 똠얌꿍을 주문했다. 곧이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릇이 내 앞에 놓였다. 국물을 한 숟가락 조심스레 떠 넣었다. 시고, 달고, 짜고 맵고, 오감이 동시에 깨어나는 듯한 그 오묘한 맛. 흔히들 김치찌개와 비슷하다고 말하는, 바로 그 맛이었다.


놀랍게도, 그 국물은 내가 알던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전에 맛보았던 것보다 훨씬 부드럽고, 어쩌면 조금은 여행자들의 입맛에 맞춰 다정하게 순화된 맛이었다. 이전에는 반도 못 먹고 남겼던 내가, 바지 단추를 슬쩍 풀어야 할 만큼 그릇을 싹 비워냈다. 낯선 음식이 나의 취향으로 편입되는 순간, 여행의 벽 하나가 허물어지는 그런 기분이었다.




20241108_210321.jpg
555.jpg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나니, 비로소 건너편의 소란스러운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씽크 파크 야시장(Think Park Night Market)'이었다.


원님만이 아른아른한 주황빛 낭만이라면, 길 건너 씽크 파크는 알록달록한 총천연색 활기였다. 일본의 어느 거리를 그대로 떼어온 듯한 분위기, 곳곳에서 들려오는 일본 노래, 그리고 멋지게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까지.


"여기 태국이야? 일본이야?"




111.jpg


잠시 혼란스러울 찰나, 내 눈을 의심케 하는 노점이 보였다. 한국 관광지에서나 볼 법한 '십원빵'과 '핫도그'였다. 태국 사람들이 이 기계를 어떻게 구했는지, 레시피는 또 어떻게 알았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낯선 타국에서 마주한 십원빵의 고소한 치즈 냄새라니. 그 묘한 이질감이 오히려 유쾌한 웃음을 자아냈다.




20241108_204303.jpg


마야몰의 쾌적함, 원님만의 낭만, 그리고 싱크 파크의 왁자지껄한 화려함까지. 님만해민에서의 시간은 현지 로컬 시장의 날것과는 또 다른, 잘 정돈된 도시가 찍어주는 기분 좋은 쉼표였다.


우리는 왜 여행을 떠나서도 굳이 익숙한 도시의 풍경을 찾아 헤매는 걸까. 어쩌면 낯선 설렘만큼이나, 우리에겐 익숙함이 주는 쉴 곳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아주 멀리 떠나왔지만,
마치 내 집 안방처럼 편안해서
매일 밤 습관처럼 발길을 이끌었던
그 모순적이고도 다정한 공간처럼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