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다시 만난 치앙마이 선데이 마켓.
해가 기울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내 안의 여행 세포들이 다시금 꿈틀거렸다. 마침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치앙마이의 밤이 가장 화려하게 피어나는 시간, '선데이 마켓(Sunday Walking Street)'이 열리는 날이었다.
5년 전, 치앙마이에서 한 달을 머물 때 나는 일요일마다 이곳을 찾았었다. 올드 시티의 타페 게이트부터 왓 프라싱 사원까지 끝도 없이 이어지는 그 길은 나에게 일종의 성지순례와도 같았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5년 전과 같이 엄청난 인파가 나를 반겼다. 치앙마이에서 가장 거대한 마켓답게, 입구부터 사람들의 열기로 후끈거렸다. 지독한 길치인 나조차도 지도 앱을 켤 필요가 없었다. 그저 거대한 물결처럼 흐르는 사람들의 등을 따라 걷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먹고 쇼핑하는 '편리함'만 놓고 봤을 땐 며칠 전 다녀온 '토요 마켓'이 한 수 위일지도 모른다. 5년 전 내게 실망을 안겨줬던 그곳은 놀랍도록 정돈된 모습이었고, 무엇보다 앉아서 먹을 공간을 찾기가 수월했으니까.
반면 선데이 마켓은 워낙 광범위한 데다 거대한 인파에 휩쓸려 다니다 보니, 길거리 음식을 느긋하게 음미할 틈이 없었다. 잠시 앉아서 쉴 만한 공간조차 마땅치 않아 '여유'와 거리가 조금 멀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선데이 마켓에는 토요일의 그 편리함쯤은 기꺼이 포기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낭만이 흐르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노점 사이로,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예술가들을 만났다. 정성껏 그려낸 그림들을 캔버스에 담아 펼쳐놓은 화가님들, 한 땀 한 땀 수를 놓은 액세서리 작가님들, 그리고 신비로운 표정으로 타로를 펼쳐 든 점술가들까지.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캔버스 위에 남겨진 붓의 흔적들을 마주하는 건 단순한 구경 이상의 경험이었다.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작품 속에 담긴 그들의 세상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짜릿한 영감이 전해져 왔다. 그 옆에서 타로 카드를 사이에 두고 오가는 내밀한 눈빛들도 나를 자극했다. '내가 언어만 조금 더 자유로웠다면, 그들만의 신비로운 운명의 이야기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 아쉬움은 곧 언젠가 다시 이곳에 올 땐, 저 매혹적인 대화 속에 나도 섞여 있으리라는 즐거운 상상으로 이어졌다. 영어 공부를 해야 할 이유가 더없이 명확해진 순간이었다.
길고 긴 마켓을 걷다 지칠 때쯤, 나를 구원한 건 길거리 아이스크림이었다. 손이 시린 겨울에도 아이스크림을 달고 사는 자칭 '아이스크림 애호가'로서 단언컨대, 편의점의 매끈한 아이스크림은 이곳의 투박한 손맛을 따라올 수 없었다.
덥고 습한 공기를 단숨에 잊게 만드는, 혀끝에서 사르르 번지던 그 짜릿하고 달콤한 해방감이라니. 치앙마이 마켓을 여행하는 이라면, 부디 이 길거리의 맛을 지나치지 않기를.
밤이 깊어질수록 마켓의 분위기는 절정으로 무르익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하늘, 그 아래 위엄 있게 빛나는 황금빛 사원의 지붕들, 그리고 노점상들이 하나둘 밝힌 주황빛 알전구들.
이 세 가지가 빚어내는 묘한 앙상블은 현실감각을 잊게 할 정도로 몽환적이었다. 성스러운 사원과 세속적인 시장이,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무렇지 않게 공존하는 풍경.
그 낯설고도 아름다운 조화에 취해, 나는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5년 전과 달리, 이번 내 손엔 쇼핑 봉투가 들려있지 않았다. 단순히 물욕이 사라진 탓일까. 무언가를 사서 손에 쥐기보다는, 이 북적이는 공기와 조명, 사람들의 소음이 어우러진 '감성' 그 자체를 온전히 느끼고 싶었다.
나는 물건 대신 그곳의 시간을, 그 밤의 온도를 샀다.
익숙한 장소였지만 느낌은 전혀 달랐다. 5년 전의 내가 보았던 풍경 위에, 그날의 내가 느끼는 감정이 덧입혀져 또 다른 색깔의 추억이 완성되었다.
흔히 여행은 새로운 곳, 낯선 땅을 밟는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한 번쯤 갔던 곳을 다시 찾아가, 과거의 나와 오늘의 나를 마주해 보는 것. 변하지 않은 풍경 속에서 조금 더 깊어진 나를 발견하는 일.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끊임없이 여행을
떠나는 또 다른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