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떠난 치앙다오, 그 길 위에서 확인한 투박한 온기.
'치앙다오(Chiang Dao)'
5년 전부터 마음속에 품고만 있었지, 선뜻 발길이 닿지 않았던 그곳. 별들의 도시라 불리는 그 낯선 시골 마을로, 이번에야말로 무작정 몸을 실어보기로 했다.
뚜벅이 여행자인 내게 선택지는 시외버스 하나였다. 늘 그렇듯 이번에도 계획은 없었다. 시간표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그저 그날의 운을 믿고 터미널로 향했다. 다행히 여행신의 가호가 있었던 걸까. 직원분에게 물어보니 마침 치앙다오행 버스가 출발을 앞두고 서 있다고 했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길은 자연스럽게 열리고 있었다.
치앙다오로 향하는 시외버스는 5년 전 치앙라이에서 탔던 그 버스를 똑 닮아 있었다. 에어컨 대신 손바닥만 한 선풍기들이 덜덜거리며 돌아가는 투박한 실내. 누군가는 덥고 불편하다며 혀를 내두를지 몰라도, 내겐 이 '현지인들 삶의 날것'의 공기가 오히려 반가웠다.
승객이라곤 온통 현지인뿐인 버스 안. 그 틈에 섞여 앉으니 비로소 그들의 진짜 일상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아 짜릿한 설렘이 차올랐다.
그때였다. 앞 좌석에 앉은 현지인 아주머니가 불쑥 뒤를 돌아보셨다. "치앙다오?" 그 짧은 단어 하나에 담긴 호기심 어린 눈빛.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검지를 하나 펴 보이며 혼자 가냐는 듯한 손짓을 건네기에, 나 역시 그녀와 똑같이 손가락을 펼치며 "Alone"이라고 덧붙였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러고는 주섬주섬 가방을 뒤져 낯선 간식 하나를 내 손에 쥐여주셨다.
서로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심하게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건네받은 그 애정이 듬뿍 담긴 간식 하나가, 멀미로 울렁거리던 속을 묘하게 잠재워 주었다.
고작 손짓 몇 번 나눴을 뿐, 내가 그녀에게 해준 건 아무것도 없는데... 조건 없는 그 따뜻한 마음씨에 깊은 감사를 느꼈다. 결국 이런 순간을 마주하고 싶어서 나는 매번 혼자 짐을 꾸리는 게 아닐까.
혼자 떠난 여행길이 외롭지 않은 건, 늘 이런 예기치 못한 온기 덕분인지도 모른다.
1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치앙다오는 그림 같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본격적인 탐험에 앞서, 터미널의 명물이라는 찜통 속 호빵으로 허기를 달랬다. 한입 베어 무니 익숙한 고기 듬뿍 담긴 야채 호빵의 맛이 났다. 낯선 땅에서 만난 아는 맛이라니. 그 사소한 위로를 뱃속 든든히 채우고, 나는 숲속의 야외 온천으로 향했다.
따뜻한 호빵으로 속을 든든히 채웠으니, 이제 진짜 목적지로 향할 차례였다. 나의 목적지는 '숲속에 숨겨진 치앙다오 야외 온천'.
사실 낯선 시골 마을에서, 차 없는 뚜벅이 여행자가 산속 깊은 온천까지 간다는 건 꽤 무모한 도전이었다. 무작정 떠나왔지만, 두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전날 밤, 나는 갈 방법을 찾기 위해 스마트폰을 붙잡고 집요하게 검색창을 뒤적였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2024년 11월 기준 단 하나의 블로그 후기만이 나를 이끌어줄 유일한 나침반이었다.
그 정보를 믿고 터미널 매표소의 문을 두드렸다. "야외 온천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나의 서툰 질문에 직원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환한 미소로 답해주었고, 터미널 근처에서 대기 중이던 노란색 성태우 기사님을 직접 연결해 주셨다. 덕분에 나는 헤매지 않고 곧바로 성태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수월하게 닿은 온천은 기대 이상이었다. 푸른 숲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계곡, 그 속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노천탕이라니.
흥미로운 건, 이 깊은 태국 숲속 온천을 설계한 이가 다름 아닌 일본인이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입장료조차 없는 무료 온천이라니. 그래서일까. 치앙마이 명성이 높아지면서 이곳도 입소문을 탔는지, 탕 안에는 현지인보다 나 같은 외국인 여행자들의 모습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국적이 무슨 상관일까. 차가운 계곡물과 따뜻한 온천수를 오가며, 나는 비로소 굳어있던 긴장을 내려놓았다.
나와 함께 그곳에 머물던 여행자들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곳에서 뜻밖의 직업을 하나 얻게 되었다.
악어 모양 튜브를 타려고 낑낑대는 여섯 살 남짓한 쌍둥이 형제를 도와주다 보니, 어느새 내가 그 구역의 놀이공원 직원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 손길에 맞춰 까르르 까르르 넘어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런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눈빛으로 감사를 전하는 부모님. 언어도 국적도 달랐지만, 물장구치는 그 순간만큼은 우리 모두 천진난만한 아이였다.
그렇게 해맑은 아이들과 어울리다 보니,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조차 잠시 잊고 있었다.
손가락이 쭈글쭈글해질 때까지 놀다 보니 어느새 허기가 밀려왔다.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이제 슬슬 돌아갈 시간. 아쉬움을 뒤로하고 간식을 파는 매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선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한 잔 주문했는데, 문득 긴 시간 나를 기다려준 성태우 기사님이 눈에 띄었다. 아무리 엄연히 돈을 내고 빌린 시간이라지만, 혼자서만 뭘 먹기엔 영 뻘쭘한 기분. 나는 슬그머니 그녀에게 다가가 번역기를 통해 "제가 사드릴 테니, 어떤 거 드시고 싶으세요?"라고 여쭈었고, 우리는 가게 처마 밑에서 소박한 만찬을 함께 즐겼다.
다시 치앙마이로 돌아오기 위해 터미널에 왔을 땐, 이미 볕이 정수리를 뜨겁게 달구는 오후였다. 터미널 한 편에선 길고양이 두 마리를 데려가겠다며 떼를 쓰는 서너 살배기 아이와 난감해하는 엄마의 실랑이가 한창이었다. 사람 사는 풍경은 이곳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구나 싶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이와 엄마의 실랑이하는 모습을 뒤로하고 매표소로 향했는데,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바로 오전에 내게 성태우를 연결해 주셨던 그 직원분이었다. 그분도 나를 알아보셨는지 먼저 "재밌는 여행이 되셨나요? 온천은 어떠셨나요?"라고 물어봐 주셨다.
"덕분에 정말 재밌게 다녀왔어요!" 인사를 건네자, 그는 마치 내 속을 꿰뚫어 본 듯, 돌아가는 버스 시간과 게이트를 일러주었다. 출발까지 남은 시간은 약 50분. 애매한 시간을 보내려 그에게 근처 식당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드렸더니, 그는 지도의 몇몇 곳을 콕 짚어주시며 "여기 진짜 맛있는 음식점들이에요!"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가 알려준 곳은 간판부터 메뉴판까지 온통 태국어뿐인, 그야말로 로컬 식당이었다. 영어 한 줄 없는 낯선 풍경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았다. 메뉴를 고르기 힘들 땐 '닭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고르면 실패가 없는 법. 나는 벽에 붙은 닭고기덮밥 사진을 가리키며 주문을 마쳤다.
곧이어 나온 음식은 푸짐하고 담백했다. 간이 세지 않아 입맛에 딱 맞았다. 점심시간이 약간 지난 시간대였음에도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는 모습을 보니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맛집임이 분명했다. 역시 낯선 곳에서 무엇을 먹을지 고민될 땐, 그곳에 사는 이에게 묻는 것이 최고의 정답이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다시 버스에 오르니, 문득 아침의 내가 떠올랐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시골행 버스에 몸을 실었을 때의 그 막연한 막막함 말이다.
하지만 돌아가는 길, 그 긴장감의 자리는 다른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친절하게 길과 맛집을 알려주던 버스터미널 직원분, 간식을 건네주던 버스 앞자리 현지인 아주머니, 그리고 함께 간식을 먹었던 성태우 기사님과 물놀이를 즐겼던 쌍둥이 아이들까지.
덜컹거리는 버스와 낡은 선풍기 바람, 그리고 말은 통하지 않아도 마음을 건네준 사람들. 5년 전부터 마음속에만 품어왔던 치앙다오에는 기대했던 풍경보다 더 짙은 '사람의 냄새'가 배어 있었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떠난 길 위에서 내가 확인한 건 하나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나는 그 투박하고 다정한 온기를 품고
다시 치앙마이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 여행 정보 |
1. 뚜벅이가 치앙마이 >>>> 치앙다오 이동(버스)
‣ 장소 : 창푸악 버스 터미널 (Chiang Mai Bus Terminal 1) <----> 치앙다오 버스 터미널.
‣ 탑승 : 승강장에서 'To Fang(팡 행)'표지판 확인 후 탑승.
‣ 운영 시간 : 새벽 6시부터 운행, 약 1시간 간격으로 운행.
‣ 요금 : 편도 46밧 (선풍기 버스 / 탑승 후 직원에게 요금을 내고 티켓 수령).
2. 뚜벅이가 치앙다오 터미널 >>>> 야외 온천 이동(성태우)
‣ 요금 : 편도 150밧(왕복 시 총 300밧 / 기사님 대기 비용 포함).
‣ 절약 : 1인 요금이 아닌 차량 1대 기준. 동행을 구하면 비용 절감 가능.
‣ 참고 : 온천 외 다른 명소로 이동 시 편도 150밧씩 추가 요금 발생.(추가 투어를 원치 않으면 거절 후 터미널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