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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Oct 05. 2023

엄마 탓하는 사람이 별로지만 어쩔 수 없다면...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두고 보며 버틸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싶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음의 불편함과 불안감이 견디기 힘들어서 애써 화해를 하고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일도 먼저 사과하곤 했다.


상황을 두고 보며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관조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내가 나서서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했다. 본질적인 해결이 아니라 시한폭탄이 숨겨진 겉으로의 평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꾸며내는 위장술이었다.


상황판단도 제대로 하지 않고 일의 실체를 통찰하지도 못한 채 당장 불편한 상황을 빠르게 해결하고 싶었다. 마음이 풀리지 않았음에도 풀린 척 깨진 조각을 엉성하게 붙여놓는 일들을 계속해왔다. 깨진 건 깨진 거다. 깨졌다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아쉽고 속상하고 괴로워도 그 상황도 마주 보고 버티며 받아들여야 했다. 난 늘 안 좋은 관계, 현실을 외면했다. 그렇게 나 자신을 속이며 살았다.


가족들에게도 늘 사과하는 쪽은 나였다. 부모님에게도 그랬고 남편, 심지어 자식들에게도 늘 사과를 한다. 정말로 늘 나만 잘못했을까? 실제로 잘못도 많이 하겠지만 나도 내 입장이 있고 항상 내가 잘못하지만은 않았을 거다. 그래도 난 그 불편한 상황을 잠시도 참지 못한다. 그래서 집안이 겉으로는 별문제 없이 평화로운 듯 보이지만 정말 그럴까?


엄마는 자식에게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할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가 아예 없는 분이라 결국 내가 굽힐 수밖에 없었다. 버틸수록 내 고통만 심해졌다. 굽히고 복종해야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렇게 내가 잘못하지 않은 일을 마음과 다르게 사과하고 인정 아닌 인정을 해야 하는 일이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억울함을 만들어냈다.


사실 그 일 하나하나는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는 사소한 일이었을 거다. 그래도 내가 납득되지 않는 상황에서 억지 복종을 강요당할 때의 억울함이 몇 십 년간 쌓이자 나 자신이 두려울 지경이 되었다. 억지로 눌리고 눌린 억울함이 마음을 단단히 닫아버렸다. 그 무엇으로도 열리지 않는 콘크리트 벽이 되었다.


엄마가 잘해주던 때도 분명히 있었다. 그래도 이미 생긴 그 마음의 문을 녹일 수 없었다. 엄마에게 맞추기 위해 나 자신을 부정해야 하는 시간들이 너무 길었다. 한 번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나 좋아하는 것들이 부드럽게 받아들여 본 적이 없다. 내가 하는 말 한마디 내가 딛는 발자국마다 잘못됐다고 틀렸다고 이야기하고 거기에 의문을 표하거나 맘대로 했다가는 수 백 번, 수 천 번 똑같은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내가 비빔국수가 좋다고 하면 ‘그게 왜 좋니? 맛없다. 잔치국수가 맛있다’는 이야기를 해서 결국 나도 잔치국수가 좋다고 할 때까지 매번 한다. 그런 식이니 하나밖에 없는 자식인데도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뭔 줄 알아?’하고 물어보니 모른다고 했을 때 너무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왔다. ‘만두랑 동그랑땡 좋아하잖아’ 했더니 ‘그걸 왜 좋아하니? 맛도 없는데’라고 되물어서 내 말문을 막았다.


어쩔 수 없이 굽힐 수밖에 없었다. 내가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서는 엄마가 다 옳고 내가 틀렸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가 또 엄마로 연결된다. 나의 고치고 싶은 일을 이야기하다 보면 그 전의 안 좋은 습관은 다 엄마와 연결되어 있다. 나도 평범한 엄마를 가져서 애틋하고 사랑이 넘치는 훈훈한 이야기만 하고 싶다. 평범한 엄마를 갖은 사람들은 ‘그래도 엄만데, 엄마가 이제 연세도 많으신데 사시면 얼마나 사신다고 그냥 다 이해해라’, ‘저렇게 힘없고 아프신데 그러고 싶냐’고 생각 없이 이야기한다. 참 속 편한 그 사람들이 부럽다.


나도 그런 평범한 엄마를 둔 사람이어서 엄마를 애틋하게 생각하고 좋은 기억만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일이다. 누군들 엄마를 나쁘게 이야기하고 엄마 탓을 하고 싶을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부모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많다.


나도 남들처럼 엄마와 사이좋게 지내고 잘 지내서 효녀 소리를 듣고 싶지 저런 비난을 듣고 싶지 않다. 엄마 때문에 고통스럽게 컸고 그래서 사이가 나빠진 건데도 왜 나중에는 또 그 자식이 불효자라는 비난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부모를 비난하고 잘 지내지 못하는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사람을 죄책감에 빠지게 만들고 피폐하게 만드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 고통의 지옥에 빠지느니 몸이 힘들어도 돈이 들어도 부모님께 잘하고 잘 지내고 싶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는 부모자식 관계라는 게 있다는 걸 보통사람들은 모른다. 그게 너무도 답답하고 억울하다.


최근에 나르시시스트에 대해 알고 나서 그 해답을 찾았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엄마의 그 이상한 말들과 행동들. 남들에게 이야기하기도 모호한 그것들. 그래도 이제는 그런 엄마를 설명할 말을 찾아서 답답한 속이 조금 풀리긴 했다. ‘우리 엄마 나르시시스트야’ 하면 이제는 그래도 이해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구구절절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브런치에도 보면 나르시시스트 부모에 대한 글을 쓰는 작가님들도 많고 유튜브에서 서람 TV나 많은 상담가나 정신과 의사들의 영상이 있다. 엄마와 딸에 관련된 책들도 수없이 찾아 읽었다. 나르시시스트에 관한 블로그도 많이 찾아봤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나는 형제가 없어 엄마의 그런 이해 안 되는 부분을 더욱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내가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어 하고 남들의 비위를 잘 맞추고 사람들의 말도 안되는 요구에도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 이유가 다 이해되었다. 엄마가 다른 엄마들과 다르다는 거를 나이 마흔이 넘어서 겨우 알아차렸다.


그전까지는 ‘내가 잘못했나, 내가 나쁜가?’ ‘내가 그렇게 쓰레기 같은 인간인가?’ 이런 생각으로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나의 고통스러운 마음은 외면한 채 끝가지 맞추려고 노력했고 겉으로 잘하려고 했다. 같이 여행 가기는 싫어서 따로 여행을 보내드리고 용돈을 드리는 등 물질적으로라도 보상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 보상도 엄마의 요구 수준에는 늘 턱없이 부족했다. 그 요구에 맞출 수나 있었을까 생각한다. 내가 뭘 해드리면 그건 당연한 거고 엄마의 희생에 비하면 항상 부족하다고만 했다. 엄마에게 나는 늘 엄마의 희생에 보답하지 못하는 불효녀였다.


노력을 하려고 해도 콘크리트 같은 강력한 마음의 벽이 생겨버려 나도 친절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좋은 말들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서 너무 힘들었고 엄마는 그런 나를 더욱더 강도 높게 비난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숙제는 늘 엄마였고 지금도 그렇다. 많이 해결된 듯해도 늘 나의 모든 문제는 엄마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엄마 탓만을 하는 그런 사람이 나도 싫다. 그러고 싶지 않아 많은 노력을 해왔다. 관련된 책이란 책을 다 찾아봤고 유튜브와 블로그도 찾을 수 있는 거는 다 찾아봤다. 그래서 어느 날은 많이 벗어나고 평온해진 거 같다가도 다시 엄마를 만나고 오는 날이면 오만가지 마음이 소용 돌이 친다.


나에게 형제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절실히 필요한 날들이 아직도 많이 남았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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