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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Jul 02. 2024

남의 삶에 끼어들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큰 정성과 과정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내가 해보고 좋았던 다이어트 식단이라든가 생활 속에서 얻은 좋은 정보는 알려주는 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누군가 원할 때만 제공하려고 자제하는 편이다. 요즘같이 정보가 널려있고 핸드폰의 몇 번의 터치만으로 가능해진 시대에는 너무 많은 정보 제공이 오히려 공해가 될 수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카톡에 정보를 올리거나 만났을 때 궁금하지도 않은 정보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까지 그 대열에 합류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다.


쉬운데 맛있는 음식의 레시피나 너무 좋아서 꼭 알리고 싶은 것들은 가끔 간단하고 짧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정말 관심 있는 사람은 따로 물어보기도 하는데 그럴 때 자세하게 정보를 전해주면 좋은 정보공유가 된다.


처럼 가벼운 일상의 정보 정도는 피곤하지 않은 선에서 공유하고 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의 삶의 근본적인 모습이나 태도, 종교 등에 대한 과도한 권유는 절대 하지 말아야 될 부분이다. 그런 부분에 대한 충고나 권유는 부모 자식 간에도 마음이 상하기 쉽다. 무신경하게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며 들이미는 사람들을 대할 때면 그냥 입을 닫게 되고 마음까지 닫힌다.


친한 후배들과 친구 몇 명은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면 늘 댓글을 달아주고 라이킷을 보내주며 관심을 보여준다. 그 친구들은 내가 읽은 책에 관심을 갖고 보고 싶어 하기에 갖고 있던 책을 빌려주거나 선물을 하기도 했다.


내가 읽고 알게 된 좋은 내용의 책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가 많고 누구든 다 읽어보았으면 할 때가 다. 그 책 이야기를 하고 싶어 마음속에 팝콘이 팡팡 터지는 것 같은 기분을 주체할 수 없을 때가 많다. 현실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이제는 브런치 쓸 수 있어 행복하다. 브런치에 책 이야기를 쓰면 그 내용에 공감해 주고 궁금해하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돼서 정말 기쁘다.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내가 좋다고 맥락 없이 마구 권하는 게 소용없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많이 답답했다. 남편과 자식들에게 이야기해도 시큰둥할 때가 많았다.


책만큼  권하기 힘들고 어려운 것도 없는 것 같다. 각자의 삶의 모습만큼 그 시기에 읽을 수 있는 책도 다르다. 관심사, 독서 수준, 취향 등 많은 변수가 책을 선택하는 데 적용되기 때문이다. 책은 누구의 권유보다는 자신이 가장 잘 찾을 수 있다.


나도 누군가 좋다고 해도 관심 없을 때는 그냥 흘려버리기 일쑤였다. 관심 없는데도 내가 할 때까지 계속 권할 때는 내 경계가 침해당하는 듯 불쾌하기까지 하다. ‘나름대로 고민하며 잘 살고 있는데 왜 저러지? 본인처럼 살지 않으면 잘못 살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네’ 라는 생각에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종교문제로 그런 경우가 있었다. 본인이 믿고 있는 특정 종교를 믿지 않는다고 잘못 살고 있는 듯 한 뉘앙스를 풍기며 기도문이나 말씀을 매일 카톡으로 보내는 사람들이 다.


본인이 추종하는 스님이 나오는 프로를 보라는 카톡을 보내고 밴드에 가입하라는 내용 외에는 간단한 안부조차 묻지 않는 친구도 있었다. 그토록 권하는데 친구라면서 왜 한 번도 알아보지 않느냐고 화내던 그 친구와는 결국 연락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나의 불행을 자신의 종교를 전파하기 위한 기회처럼 여기며 계속 연락을 해왔을 때 참기 힘들었다.  


나름대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며 애쓰고 있는 나의 상황이나 생각을 공감하며 들을 생각은 없이 추종하는 스님이 하신 좋은 말만을 앵무새같이 전파하는 친구에게 너무도 실망하고 속상했다. 아무리 '책도 읽고 마음을 다독이며 노력하고 있어'라고 이야기해도 내 말은 공중에 흩어져 버려 그 친구의 귀에 가 닿지 않는 것 같았다. 자신의 종교로 데리고 가려는 집착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정성이 빠진 맹목적인 권유와 종교생활에 대한 자화자찬은 진정한 관계 맺기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종교에 대해 갖고 있던 좋은 감정까지 퇴색되고 말았다.


한 발짝 다가가다가도 그런 사람들과의 한 번의 만남에 열 걸음 뒷걸음치게 된다. 난 신의 존재를 믿는 편에 가깝고 성가 듣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교회에 가는 게 꺼려진다. 불교에도 관심이 많아 스님이 쓴 책을 요즘도 읽고 있지만 그 친구 같은 사람들이 다니는 절에 가고 싶지 않다.


반면 내 생각과 글에 관심을 보이고 제일 먼저 읽어주고 댓글도 남기던 후배가 며칠 전 만났을 때 <시편>을 선물했다. 사실 난 성경도 읽어보고 싶고 기독교의 내용을 학문적으로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많았다.

선물 받은 핸디성경


젊은 때 여러 번 교회에 다니며 목사님 설교도 열심히 들어보고 궁금증에 대한 질문도 많이 했었다. 그런데 나의 의문에 명쾌한 답을 한 번도 듣지는 못했다. 그저 믿어야 한다. 그런 의문은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라는 대답으로 나의 궁금증을 그냥 덮어버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차츰 종교에서 멀어지고 있었지만 내가 늘 읽는 책의 많은 내용이 종교에서 가르치는 것과 같고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한 노력이 종교적인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단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종교단체에 같이 하지 않을 뿐이다.


지금까지 성경책도 여러 번 선물 받았었지만 사실 단 한 번도 열어서 읽어보지 않았다. 그 책을 선물한 사람들의 폭력에 가까운 권유에 진저리가 나서 반발심에 더 열어보지 않았다. 그런데 나에게 진심으로 관심 가져주고 내 글에서 비슷한 내용을 발견해 선물한 <시편>은 받은 날 당장 열어보았다. 성경의 일상적이지 않은 문장에 어려움을 느꼈지만 이해해 보려 노력하며 한 페이지씩 읽어보고 있다.


이 일을 계기로 사람의 마음을 연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후배의 선물을 통해 꼭 전해주고 싶은 진심을 전하는 방법을 배우게 됐다. 상대방의 삶의 모습과 그의 관심사, 생각들에 진심으로 관심을 갖고 평상시 충분한 소통을 한 뒤 그의 방식에 맞게 전달해야 한다는 고도의 기술이다.


아무 맥락 없이 하고 싶을 때 툭툭 던지는 옳은 말이나, 자신의 길을 따르라는 권유는 그들에게서 더 멀어지게 만든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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