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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Jun 14. 2024

스스로를 돌보는 법, 글쓰기

얼마 전 석굴암에서 생전 처음 경험한 큰 감동에 대한 글을 썼다. 그 감동의 정체가 무언지 궁금했고 다시 한번 그런 감동을 느끼고 싶은 마음에 자주 생각하게 됐다.


그 생각을 하고 있어서 인지 최근에 읽은 릭 루빈의 <창조적 행위: 존재의 방식>에서 그 감동에 딱 맞는 구절을 발견했다.

알라딘 앱에서 가져온 책표지


“숨이 턱 막히게 하는 순간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라. 아름다운 노을, 특이한 색깔의 눈동자, 감동적인 음악, 한 기계의 우아한 디자인에.


작품이나 의식의 조각, 자연의 요소가 어떻게든 더 큰 무언가에 다가가게 해 준다면 바로 그것의 영적인 요소가 드러난 것이다. 영성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살짝 엿볼 수 있게 한다. “ 이 구절이다. 나도 감동 이상의 알 수 없는 영적인 부분을 두드리는 경험이라는 생각을 했기에 이 구절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 더 깊은 감각을 느끼고 싶은 욕망, 끊임없이 배우고 매료되고 놀라고 싶은 마음이다.


이 원기 왕성한 본능을 뒷받침하려면 위대한 작품들에 잠겨 있어야 한다. 최고의 문학 작품을 읽고 걸작 영화를 보고 영향력 있는 그림을 가까이에서 감상하고 유명한 건축물을 찾아가라 “고 충고한다.


끊임없이 숏츠를 보고, SNS 속의 짧은 글만을 읽어서는 영적인 부분까지 두드리는 감동은 결코  수 없게 된다. 훌륭한 작품을 보고도 감동을 느낄 수 없는 도파민에 절여진 뇌로 변해버릴 것 같아 두렵다.


점점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자꾸 밖으로 나오려고 한다. 집에 있다 보면 분명 중요한 무언갈 찾을 게 있어 핸드폰을 켰는데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떠밀려 뭔지도 모를 것들을 끊임없고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어떤 물건이 필요하다고 느껴져 구입하는 일이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진다.


참 교묘하게 사람들의 공허하고 외로운 마음을 파고들어 기어이 소비로 이어지게 만들거나 시간을 도둑질해 간다. 우리는 기꺼이 내 의지로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며 매일매일 그렇게 귀중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브런치에 글을 써서 올리고 부끄러움에 치를 떨고 자괴감에 빠지면서도 계속 쓰는 이유는 그렇게 인터넷 세상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고 스스로를 사랑하게 만들어 주는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너무 피곤하고 속도 좋지 않아 집에서 쉬고 싶었지만 결국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또 드라마 몰아보기를 하거나 핸드폰에서 길을 잃을 게 뻔하다는 걸 알기에, 잠들기 전 또 그렇게 보내버린 하루에 대한 아쉬움에 불쾌해질걸 알기에 카페로 도망쳐 나와 이런 시시한 글이라도 붙잡고 앉아 있다.


조금이라도 맘에 드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는 길을 따라가게 된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횟수가 많아지고 진짜 나의 모습을 찾기 위해 노력하게 해 준다.


가짜 같고 맘에 들지 않은 글은 진짜 내가 아닌 원하는 모습을 나인 양 써놓았을 때, 못난 내 모습을 변명하기 위해 남 탓을 하는 내용을 교묘하게 썼을 때다. 아무도 몰라도 나는 알기에 나마저 속일 수 없기에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단순히 ‘매일 글을 쓰겠다’와 같은 말속에 그런 많은 내용을 포함하게 된다. 그렇게 삶과 글을 맞춰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자신을 속이는 횟수가 줄고 남 앞에 비열해지지 않도록 도와준다. 날 비춰주는 거울을 매일 꺼내드는 일이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비친 내 모습을 용기 있게 바라보는 일이다. 나의 모습이 스스로에게 점점 나아지게 만들어 주는 일이 글쓰기다.


비치는 모습을 바꾸려면 자신을 바꿀 수밖에 없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고 수식어를 바꾸고 화려한 미사여구를 첨가한다고 해서 좋은 글이 되는 건 아니다. 더러워진 거울을 닦는다고 거기에 비친 나의 모습이 달라지진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삶을 수없이 돌아보고 다듬어야 한다. 글에 비친 삶은 그렇게 가장 솔직해야 한다. 좋은 글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못 쓰는 글은 그저 남의 관심을 끌지 못할 뿐이겠지만 자신마저 속이는 글이 가장 나쁜 글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글과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좋은 글이 배어나오게 하기 위해서 늘 삶을 돌아보고 닦아야 한다. 저 깊이 숨겨왔던 삶의 방식을 찾아내 햇빛아래 비춰보는 부담스러운 일도 해야 하고 스스로에게조차 자존심 상해 숨겨왔던 인간관계의 유아기적 방식들, 충동적인 소비를 하는 이유, 중독에 취약한 이유 모두 글을 쓰며 깨달았다.


좋은 글을 쓰고 싶어 일찍 일어나고 싶어지고 책을 읽고 주변을 정리하고 자신을 잘 돌보고 싶어졌다. 좋은 책도 더 많이 읽고 싶고 감동의 순간을 찾아 나서는 일도 많아졌다.


내가 썼던 글 속의 또 다른 내가 나를 돌본다. ‘이렇게 하는 게 결국 더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했잖아. 이 우울함과 자괴감은 지금의 감정이 아니라 오래된 지금은 지나가 버린 과거로부터 시작된 거니까 괜찮아. 현실을 똑바로 보자’ 이렇게 나에게 말을 거는 조금은 더 이상적이고 이성적인 자아가 생긴 기분이다.


오늘도 그 ‘나’가 피곤해서 소파에 하루 종일 늘어져 있을 나에게 다정하게 속삭이며 힘을 북돋아줘서 이렇게 나와 글을 쓰고 있다. 이 카페에서 집까지 걸어가면 칠 천보 정도 걷게 된다. 그러면 난 조금은 성공한 기분이 들고 가족들에게 다정 해질 거고 잘 잘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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