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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Sep 08. 2022

너는 내 안의 초인을 깨운다.

너는 나를 점점 자라게 만든다. 좁고 인색한 내 세계를 넓혀준다. 너를 사랑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 세계를 파괴하고 새로 지어야 한다. 그래야 너를 내 세계에 받아들일 수 있다. 너는 내가 초인이 되도록 끝없이 도발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도 진행 중이다. 내가 그만큼 작은 그릇의 사람이었다는 반증일 것이다. 인생의 경계가 넓은 사람에게 우리 아이들은 아무 문제없는 오히려 너무도 잘 큰 훌륭한 아이로 보일 수도 있다. 


나에게 아이들이 문제 행동으로 여겨지는 행동을 할 때 내 세계가 깨어지는 고통을 선사한다. 난 화가 나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그야말로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절망을 느낀다. 아이가 금방 잘 못 될 것 같은 위기감을 느낀다. 아이에게 화를 내고 네가 잘못되었다는고 비난한다. 난 그러지 않았는데 왜 그러냐고. 그 폭풍우가 지나가고 차분히 아이가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했을 때 설득당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그랬다. 아이의 입장이 있었고 잘 들어 보았을 때 납득이 가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그리고 화를 내는 내 모습이 우습게 생각되고 부끄러웠던 적이 수백 번이었다. 


그런 과정을 수없이 겪다 보니 이제는 섣불리 화부터 내지는 않는다. 화가 나서 금방 뒷목 잡고 쓰러질 것 같고 두 방망이질하는 심장은 여전하다. 그래도 이제는 배웠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 아이의 말을 듣고 보면 이해가 된다. 이런 과정 중에 난 나의 기준, 편견, 사고방식 등을 넓혀오게 되었다. 


타투를 해도 되고, 여자 아이가 새벽에 술을 먹고 다녀도 괜찮고, 학사경고를 맞고, F학점을 맞고, 고 3이 공부를  한자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거를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생각보다 치안이 좋고 젊을 때는 술을 들이부어도 쉽게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고 3이 공부하지 않아도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고3 모습의 틀에 맞지 않는다고 불안해하고 아이를 의심에 찬 눈으로 바라봤다. TV에서 나오는 여성 범죄 피해자 틀에 아이를 밀어 넣고 불안에 떨고 있었다. 


아이들은 정말 내 편견을 매일매일 깨뜨려 준다. 아이가 내 기준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할 때 그 문제의 방향은 아이를 향해 있었다. 그 행동을 고쳐주기 위해 친절하게 이야기하고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서 교정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게 내가 아는 방법론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아이의 마음을 알아보는 것, 사실 겉으로 나타나는 행동은 문제가 아니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아내는 게 훨씬 중요하다. 그리고 그 방향을 나에게 돌려야 한다. 왜 내가 그런 행동에 화가 날까? 사실문제 행동들을 살펴봤을 때 지나고 보면 크게 문제 되는 건 거의 없어 보인다. 


지나고 보면 아이가 바닥에 오줌을 싸는 건 나를 힘들게 하려고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배변 훈련 중이라 그랬고, 놀이용으로 내준 마카로니를 온 거실에 쏟아붓는 거는 비가 온다는 상상놀이 중이라 그랬다. 중학교 때 아이가 하루 종일 누워 핸드폰만 하고 밤에 잠을 자지 않고 학교에서 하루 종일 졸다 오는 것도 지금 보면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근데 그때는 왜 그렇게 화가 나고 아이가 잘못될까 전전긍긍했는지. 그때는 그런 행동이 나를 무시해서 그러는 것 같았고 애들이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러다 의지박약의 무능력자가 되지나 않을까, 이렇게 나의 두려움으로 부풀려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시적으로 공격적인 행동을 보일 때는 대부분 아이가 억울한 부분이 있거나 불편한 감정을 이름 붙이지 못하고 해결하지 못했을 때 나타난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도록 도와주고 해소시켜 줘야 하는데 그 문제 행동에만 매달려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다. 제대로 해소되고 공감받지 못했을 때 그 단계를 지나 오히려 무기력증과 우울증이 되어서야 뭔가 문제가 있었다는 거를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과의 관계를 망치지 않으려면 내 세계를 아이들의 세상만큼 넓히는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계속 내 세상의 기준만을 들이밀며 회유와 협박, 강요를 해서는 아이들이 온전히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할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다. 세상이 원하는 대학, 직업, 결혼을 하면 뭐 하는가? 영혼은 메마르고 아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인생이 공허하다면 


부모까지 덧붙여서 이 세상이 이런 거라고 다 널 위해서 그런 거니 무조건 좋은 대학 가고 전문직을 갖으라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이미 아이들을 다 알고 있고 태어나면서부터 온몸으로 압박감을 느낀다. 온 사회가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더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하고, 더 예뻐져야 한다고, 더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고, 돈 더 벌어야 한다고. 더 좋은 곳에 살아야 한다고.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아이들에게 부모까지 닦달을 해대면 아이들은 설 곳이 없어진다. 내가 지금까지 그랬다는 거를 느꼈다. 물론 아이들이 희생하면서 문제 행동을 보여주어 뼈 아프게 깨달았다. 


난 아이들과 평생 좋은 관계로 살고 싶고 아이들을 내 목숨보다 사랑한다. 그건 어떤 부모든 다 같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불행해지길 바라는 부모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 왜 아이들이 불행할까? 내 아이들이 불행해 보인다.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난다. 난 아이들이 행복하기 만을 바랐다. 그런데 방향이 잘못되어 있었고 내가 중요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한 기준이 내 기준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고야 비로소 불행한 아이들의 얼굴이 보였다. 


그건 나의 잘못된 인정 욕구와 사회에서 주입된 기준이 아무 비판 없이 나에게 심어졌고 의식 없이 아이들에게 전달했던 거였다. 부모는 이런 압박 속에 발가벗고 서 있는 아이들의 외투가 되어주어야 하고 여린 살을 보호해 주는 보호자가 되어야 했는데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향에서 오히려 더 심한 압박과 공격을 하는 사람이 되어 왔다는 깨달음이다.


그건 내 두려움이고 내 문제였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좋은 딱 맞는 걸 제일 잘 찾고 키워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없는 데에서 그 많은 간섭과 압력이 시작된다. 아이들을 믿지 못하고 내가 다 알려줘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그 많은 문제가 시작된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능력이 많다. 자신에게 제일 좋은 걸 찾고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옳고 그른 걸 어른이 가르쳐 주지 않으면 영원히 모를 거라고 생각해서 강박적으로 도덕적인 걸 가르친다. 말로 가르친다고 해서 도덕적이 되는 게 아니다. 아이들은 실제 경험 속에서 배려받고 남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더 수준 높은 도덕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유아기 때 아이들이 여러 게임과 놀이를 하면서 이기기 위해 다른 아이의 입장이 되어보고 전략을 짜는 과정도 결국 남을 이해해기 위한 인지발달 과정이다. 놀이 속에서 이기고 지는 경험, 다른 아이들의 기분을 이해해 보는 경험 모든 것이 아이들에게 교육의 장이다. 부모에게 직접 말로 전달받는 교육은 가장 힘이 약하고 오히려 압박감으로 작용해 부작용만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뭐가 옳고 좋은지 내가 다 알고 있다는 태도는 굉장히 위험하다. 부모에게도 이해받고 배려받지 못했을 때 말로만 도덕적이 되라고 했다고 도덕적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부모에게 한없는 배려와 공감, 사랑을 받을 때 타인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과 사랑이 싹트고 그런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자율적 도덕성을 갖은 사람으로 클 수 있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다 내면에 가지고 태어난다. 부족함이 없는 존재다. 주변 사람들의 사랑만이 아이가 자신을 찾고 행복해질 수 있는 비결이라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너무나 많이 이야기되어서 식상한 사랑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걸 알았다. 사랑은 쉽지 않다. 아이들에게 주는 사랑은 더더욱 정교하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은 게 아니길 바랄 뿐이다. 모든 종교에서 이야기하고 많은 책들에게 결국에 모든 것의 근원으로 이야기하는 사랑에 대해 아이들을 통해 배운다. 사랑은 본능이 아니었다.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 결국 깨닫고 사랑으로 살지 않으면 인생이 무의미하고 고통스럽게 죽을 수밖에 없다는 큰 가르침을 아이들을 키우면서 배운다. 


근데 난 아직도 나를 알아나가고 있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른다. 그런 걸 할 기회와 시간을 갖지 못했다. 사회에서 좋다는 걸 겨우겨우 따라가느라고 이제야 시작하고 있다. 사춘기에 해야 하는 걸 50대에 하고 있다. 아이들이 나에게 문제 행동을 보여주고 나에게 의문을 심어주고 그걸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고 내 세상이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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