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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Oct 11. 2022

나의 장점

따라쟁이입니다.

어릴 때는 자존심이 세서 절대로 남을 따라 하지 않았고 남을 따라 하는 것이 구질구질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나만의 유니크함을 찾는 거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찾았는데 나라는 인간이 그다지 유니크하지도 흥미롭지도 않은 인간이라는 결론이 났다. 어느 날부턴가 남이 하는 좋아 보이는 일을 많이 따라 해 보게 됐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거는 아니다. 오히려 애 늙은이처럼 하면 뭐해, 거기 가보면 뭐해 이런 냉소적인 사람이었다.


지금은 내 눈에 좋아 보이면 일단 한 번 해본다. 물론 내 눈에 들어온 것이니 그동안 나에게도 흥미 있고 그러고 싶었는데 미처 생각지 못했거나 귀찮아서 시도해 보지 못한 거였다. 하지만 좋은 일들이니 꾸준하게는 못하더라도 해본다.


그게 지속 가능해져서 습관이 되기도 한다. 우선 식단이 그렇고 야채 스무디 만들어 먹는 일, 집을 주기적으로 정리하는 일 등이다. 얼마 전에는 모델 이소라가 핸드크림을 수시로 바른다는 소리를 듣고 원래는 여름에는 바르지 않는데 다시 꺼내 바르기 시작했다. 할머니 같던 손이 조금 나아 보인다.

친한 후배가 당근과 감자를 잔뜩 넣고 약간 싱겁게 해서 밥 없이 갈비찜이나 카레를 만들어 먹는다는 소리를 듣고 갈비찜, 닭볶음탕과 카레에 당근을 잔뜩 넣고 밥보다 더 많이 퍼먹고 있다. 기분 탓인지 건강해지는 것 같다.


내가 부러워하는 피부를 갖고 있는 래퍼 박재범이 레몬즙 먹는 걸 보고 한 달 만에 그만두기는 했지만 레몬즙 먹기도 해 봤다. 한 달로는 그런 피부의 발끝도 못 따라가서 그만뒀다. 그런 피부는 어느 정도 타고나야 한다는 결론이다. 할 만한 거는 계속하고 그다지 효과도 없고 귀찮음이 심하면 중단한다. 앉아서 해 본들 뭐가 되겠어? 끝까지 안 하면 의미가 있나? 이런 시절을 오랫동안 지나 봤다. 그 태도는 이제 지긋지긋하게 싫다. 뭔가 된 거 마냥 날 속이는 태도였다. 이제는 내가 경험하지 못 한 거를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려고 한다. 일단 내가 해보고 판단한다.


따라 쟁이가 이제 내 장점이 된 것 같다. 남의 얘기를 듣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완고하게 내 것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좋아 보이는 거를 당장 실천해보는 것. 그건 재밌다. 이런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일은 일단 재미있다는 거다. 지루하고 심심한 하루하루에 활력이 생긴다. 새로 해보려는 일에 대해 찾아보고 알아보고 실천하는 일이 너무 신난다.


식단을 한참 열심히 할 때는 내 몸에 실험을 해보는 기분이었다. 이런 식으로 한 일주일 먹으면 나의 피로도가 얼마나 사라지는지, 기분은 어떤지 피부 상태는 어떤지 하루하루 변화가 보이면 너무 재미있었다. 요즘은 갱년기 때문인지 전처럼 살이 안 빠지고 별 변화가 없어 흥미가 떨어지긴 했지만 건강을 위해 여전히 식단에 신경을 쓰고 늘 관심을 갖고 있다.


책 읽는 것도 <독서천재 홍대리>를 읽고 책을 많이 읽으면 도대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너무 궁금했다. 내가 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해서 시작했는데 거의 6~7년째 독서욕이 식지 않았다. 처음보다는 흥미가 조금 떨어지긴 했는데 처음 책을 읽을 때 아침에 눈을 뜨는 게 너무 즐거웠다. 관심 있는 책을 찾았을 때는 남들은 모르는 뭔가 큰 비밀을 가진 것처럼 설레 였다. 그리고 책의 분야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독서영역이 풍부해졌다. 소설, 인문서, 철학서, 심리학 책, 영성 책, 인테리어 책, 미니멀 라이프 책, 건강과 영양에 관한 책, 요리책, 영화 관련 책, 음악과 미술에 관한 책, 오일파스텔 그리는 법에 대한 책 등등 내 흥미와 관심에 따라 그 분야는 무궁무진하고 도서관과 서점은 나의 최상의 놀이터가 되었다.


도미니크 로로의 <고민 대신 리스트>와 김신지의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 신정철의 <메모 습관의 힘>을 보며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외출할 때 늘 작은 수첩과 펜을 넣어 다닌다.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했을 때, 혼자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메모를 하거나 그림을 그린다. 그렇게 쌓인 것이 글감이 되기도 하고 지나고 봤을 때 이때쯤 이런 기분이었구나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보면 내 인생이 좀 더 풍부해지는 느낌이 든다. 일단 위의 책들이 너무 재미있어서 나도 꼭 해보고 싶었다.


내가 따라 해 보는 주인공들은 TV에 나오는 유명인이나 블로그 주인들, 책의 저자들이 대부분이긴 하다. 혼자 여행을 하면서 책을 쓴 저자의 글을 보며 나도 언제가 혼자 여행을 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아직 전라도 쪽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여수나 군산에도 가보고 싶고, 국민학교 이후로 가보지 못한 외갓집이 있던 대구, 포항에도 가보고 싶다.

kikiwings님의 블로그 spacehoho에서 가져온 사진

최근에 영화 <원더우먼 1984>를 보다가 국민학교 때 봤던 원조 원더우먼이 생각났다. 검색해 보다가 원더우먼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과 동영상까지 찾아 정리해놓은 블로그를 찾았다. 그 블로그 주인은 80~90년대 추억의 미국 드라마와 영화를 정말 자세히 알차게 정리해놓고 미국에서 그 스타들을 직접 만나고 사인받은 이야기, 관련 굿즈, DVD까지 찾아서 올려놓았다. 나도 아직 가보지도 못한 미국에 대한 추억이 한가득이다. 국민학교 때부터 미국 드라마와 함께 한 인생이다. 원더우먼, V, 맥가이버, 아빠는 멋쟁이, 버리힐스의 아이들, 용감한 형제들, 케빈은 12살... 고 3 때 학력고사 보기 전날도 맥가이버를 보며 마음을 진정시켰던 기억이 난다. 나도 나만의 리스트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자료를 모으고 기억을 더듬으며 벌써부터 신이 나고 재미있다.


또 해보려고 하는 일은 조금 더 많이 걷는 일이다. 지금은 일주일이나 이주일에 한 번 남산이나 서대문구의 안산, 광화문과 북촌 일대를 친구들과 만나 걸어 다니는데 혼자서도 조금 더 자주 더 오래 걸어볼까 한다. 아이 친구 엄마가 그렇게 많이 걷는데 그렇지 않아도 작은 얼굴과 날씬한 몸이 나날이 더 작고 날씬해지고 어려 보인다. 나에게 어떤 변화가 생길지 기대가 된다. 이 좋은 날씨에 당장이라도 실천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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