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잔인하고 무서운 것을 싫어한다. 그런 장면을 잘 보지 못한다. 그런데 영화 <조커>에서 조커가 동료를 잔인하게 가위로 찔러 죽이고 잘 차려입고 토크쇼에 출연해서 또 잔인하게 진행자를 쏘아 죽이는 장면과 폭동이 일어나는 장면까지를 무척 좋아한다.
평상시 내가 좋아하는 따뜻하고 성숙한 사람들이 나오는 아름다운 영상이 아니고 강렬한 색감에 강렬한 감정이 터져 나오는 거친 화면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극장에서 볼 때도 그랬는데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볼 때마다 또다시 빠져든다. 조커의 행위의 옳고 그름과 어떤 도덕적 판단 이전에 그 영상의 아름다움과 조커의 슬픔과 기괴함에 마음이 움직임을 느낀다.
<킹스맨>을 보면서 잔인할 수 있는 교회 총격 씬에서도 어떤 즐거움을 느꼈다. 멋지고 아름답다고 느꼈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을까? 궁금하다. 내용보다는 그 씬 자체의 또는 행위들의 합이 딱 맞아떨어지고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해냈기 때문일까? 사람들을 죽이는 폭력적인 장면이기 때문에 시각적 쾌감을 느끼는 것에 꺼림칙함이 느껴진다.
나는 <카모메 식당>,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 같은 분위기의 영화와 생활방식이 편안하고 좋은 사람이다. 그런 삶의 모습을 지향한다. 매일의 일상에서 작고 소소한 행복을 찾고 남에게 사랑은 주지만 집착하지 않는 모습, 단정하고 아름다운 일상을 살아내는 그런 사람을 보는 게 편안하고 좋다.
반면 화가 날 때 화를 내고 지질한 모습도 내 모습이라고 인정하는 인간적인 모습에서 자유로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펜트하우스, 아침드라마도 무지 집중해서 보는 이유다. 삶의 순간들에서 치사한 생각을 하는 것도 지질하고 비겁해지는 순간도 드러내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 편안한 느낌이 든다. 늘 이상향을 정해놓고 거기로 가는 매일매일의 노력이 무슨 의미일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간의 모습 속에는 이런 다채로운 감정이 있는데 나에게는 없는 것처럼 그런 사람들을 구경꾼처럼 바라보는 것에 회의감이 든다.
반대의 내 모습까지도 인정하고 끌어안을 때 온전한 인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일 때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그런 모습도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그런 선택을 하고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해방감이 느껴진다. 카모메 식당 주인공처럼 많은 인생 경험으로 단단한 내면을 갖게 된 사람의 삶을 동경하고 보고 있으면 편안하고 기분 좋지만 거기에 비친 나의 부족하고 유치한 모습을 자꾸 외면하고 싶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그날 그날 내 기분에 따라 보기엔 불편하지만 인간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영화에 더 마음이 기울 때가 있다.
겁이 많고 두려움이 많아서 조금이라도 부정적이거나 나쁜 감정이 들면 자동적으로 외면하고 생각의 방향을 돌렸다. 그러나 그런 감정은 나 자신을 돌봐야 하는 중요한 사인이었다. 사람은 빛 속에서 웃기만 하고 살 순 없다. 그런데 그러고 싶었다. 그래서 상황판단 능력이 잘 발달하지 못했고 날 그저 행복하고 티 한 점 없는 순수한 사람으로 포장해왔고 진짜 그렇다고 믿어왔다.
추하고 비열한 모습들, 상황들, 비참하고 거지 같은 사건과 상황 이 모든 것을 응시하고 거기서 내가 알고 깨달아야 할 것들을 지켜내야 한다. 그것들이 어마어마하게 내 무의식 속에 쑤셔 박혀서 날 끊임없이 괴롭힌다. 그게 나의 비이성적인 두려움의 정체였을까?
어둡고 잔인하고 기괴한 영화들을 보며 내 감정이 일렁이는 순간들은 그런 나의 무의식 속의 공포와 두려움을 마주하게 한다. 평생 가둬둔 공포들 아니 나의 부모님,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공포와 두려움까지.
용기를 내어본다. 동화 속 밝고 착한 사람들만을 끌어안고서는 나를 찾을 수 없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내 속에 다양한 인간의 모습들이 살아 숨 쉰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