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새겨진 영화와 음악

by 박수종

11월의 스타벅스다. 벌써 캐럴이 흘러나오고 아늑한 느낌이 좋다. 밖은 추운데 안은 따뜻하고 편안하다. 캐럴이 흐르고 초록과 빨간색의 물건들로 둘러싸여 있는 미국 드라마 속 세상이 내 추억이 되었다. 실제 내가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거나 환경을 꾸미지는 않으셨다. 내가 친구들과 모여 반짝이 종이로 별과 여러 가지 것들을 만들고 조잡한 장식물을 사서 어설프게 꾸민 게 다였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는 아늑하고 화려하게 꾸며진 미국식 거실의 모습이 내 추억 인양 들어앉아 있다.

love and drawing 블로그에서 가져온 사진


나의 중, 고등학교 시절은 그런대로 따뜻하고 행복했다. 친구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편지를 주고받고 시험공부한다는 핑계로 좋아하는 라디오를 같이 들으며 밤을 새기도 했다. 수업이 끝나면 떡볶이에 쫄면을 먹으러 다니고 한 번도 실제로 가보진 못했지만 <젊음의 행진>이라는 프로를 보러 간다 어쩐다 궁리를 하며 가슴 두근거리던 시간들이 기억난다. 그때는 토요일 수업이 있어서 끝나고 이 집 저 집 다니며 라면을 끓여먹고 끝없이 수다를 떨곤 했다.


초등학교 6학년쯤부터 라디오로 팝송을 들었다. 내 인생에서 팝송은 뗄 수 없다. 어떤 순간에도 늘 어떤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취향이 고급져서 수준 높은 음악이나 영화를 본 것도 아니고 음악을 깊이 있게 파고들어서 잘 아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10대부터 20대 후반까지 듣고 본 음악과 책, 영화는 평생 한 사람의 취향을 결정하고 그 이후의 삶의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인 것 같다. 내가 지금도 우연히 라디오에서 나오면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노래들은 다 그 시절에 듣던 거다.


지금도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멈추는 영화는 그 시절에 봤던 영화다. 사람이 발전을 하려면 계속 새로운 것을 업데이트하고 새로운 음악도 듣고 영화도 봐야 한다던데. 음악과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계속 듣고 보기는 한다. 아이들도 날 닮았는지 영화와 음악에 관심이 많아 최근에 나온 좋은 것들을 추천해준다. 그 추천 음악들을 내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하고 새로운 추억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래도 다르다. 10대 20대 때 내 마음에 와서 꽂힌 음악, 영화와는 달랐다.

20대 때 개봉관에서 보기 힘들었던 제임스 아이보리의 <모리스>는 퀴어영화다. 그 당시에는 아무런 불편함 없이 시대적 한계와 도덕에 갇혀 방황하고 사랑을 찾아 본성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영화라는 생각으로 봤다. 휴 그랜트와 등장인물들의 모습에 감탄하며 본 영화라 내 뇌리 속에 깊이 남아있고 그 아름다움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얼마 전 다시 이 영화를 봤는데 온전히 즐길 수가 없었다. 아이가 생기고 나니까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됐다. 엄마의 마음으로 주인공의 엄마라면 난 어떨까 이런 현실의 고민이 끼어들었다. 그냥 아름다운 청춘의 모습에만 집중하기 힘들어졌다.


최근 영화를 볼 때는 영상미나 내 마음에 생기는 이미지보다는 현실적인 내용에 더 집중하게 되고 나와 아이들 상황에 비춰보는 일이 더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어릴 때처럼 풍부한 감상이 이루어지는 횟수가 줄었다. <라라 랜드>도 음악도 좋고 재밌게 보았지만 같은 예술가의 길을 가려는 딸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또 현실적 고민이 끼어들었다.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현실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탓일까? 더 넓고 풍부하게 감상하지 못하게 된 내가 아쉬웠다.


큰아이가 너무 좋아해서 여러 번 본 <겨울왕국>에서도 난 엘사의 슬픔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엘사에게 능력을 감추라고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는 부분에 몰입이 되면서 육아문제를 떠올리게 되었다. 내가 내 아이의 그렇게 좋은 본성을 다른 사람 눈에 좋게 보이지 않을까 봐 감추라고 한 건 아닌지 그런 걱정이 끼어들어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10대, 20대 때에는 그냥 그 이미지 자체가 가슴에 와서 확 박힌다. 스토리를 따라가는 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 느낌은 이제 영원히 가져보질 못할 것이다. 그때 공부보다 팝송 듣고 영화 보느라 보낸 시간들이 많아서 다행이다. 나에게는 나와 한 몸처럼 평생 같이 살고 있는 노래와 영화가 있다. 그게 너무 다행이다. 그게 너무 좋다. 일상을 살아나가는 순간순간 그때의 음악과 영화를 마주치면 나는 잠시 행복한 과거로 순식간에 돌아갈 수 있으니까.


칭기즈칸의 <we Love You>는 엄청 단순한 멜로디에 가사도 단순한 노래다. 그 노래를 들을 때면 중학생 시절 엄마 아빠와 같이 살 때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냥 일상 속의 엄마 아빠의 젊은 모습이 떠올라서 지금은 항상 가슴이 먹먹해진다. 엄마를 요양원에 모셔놓고 오던 날 집에 와서 엄마 물건들이 있던 방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하필 라디오에서 저 노래가 나왔다. 그날 정말 많이 울었다. 단순히 중학교 때 들었던 노래였는데 지금은 엄마를 두고 온 날의 슬픈 노래로 남게 되었다. 슬픈데 엄마 아빠가 떠오르는 아름다운 노래로 더 가슴속 깊이 박히게 되었다.


나와 희로애락을 같이 한 많은 음악과 영화들이 나의 인생을 조금 더 풍족하게 만들어준다. 나의 아름다운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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