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부모들이 그렇듯이 아이들과의 좋았던 기억들이 많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시험을 잘 보고 회장으로 뽑히거나 대학에 합격하는 일 같은 어떤 성취를 이룬 순간보다 어떤 날의 평범한 모습들이 사진 속의 한 장면처럼 계속 생각난다.
내 친구였던 꼬마 JY이, 우린 늘 같이 다녔다. 백화점 셔틀버스를 타고 푸드 코트에 자주 가서 점심을 사 먹고, 박물관에도 가고 서점에도 같이 다녔다. 같이 노래 부르고 책 읽고 소꿉놀이하던 시간들. 유치원 다니기 전 집에 있던 우리 둘만의 시간을 자주 생각한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 우리 둘만 있던 시간. 다신 없을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 귀여운 얼굴과 작은 몸에 어울리지 않는 유창한 문장을 말하던 아이. 아기 때부터 인형 같은 장난감보다 책을 좋아하던 아이였다.
눈이 온 날 큰 애가 집앞에서 놀던 모습을 그렸다
역할놀이를 유난히 좋아하던 딸. 유치원에 갔다 오면 날 앉혀놓고 동화를 읽어주는 선생님 흉내를 내고, 내가 남편에게 하듯이 허리에 손을 얹고 이러저러하다고 훈계하는 모습은 지금도 날 뜨끔 하게도 하고 훅 웃음이 터지게 만든다.
둘째 아이는 자장가를 불러주면 태어난지 얼마 안 됐을 때인데도 싱긋싱긋 잘 웃는 아이였다. 못 부르는 노래지만 매일 4~5개의 자장가를 불러줬다. <유아음악교육> 교재에서 아이에게 가장 좋은 음악은 엄마의 목소리라는 것을 보고 매일 불러줬다. 그 미소를 보고 싶어서 열심히 불러 줬던 것 같다. 모유를 24개월까지 먹었던 아들은 젖을 주면 1분도 안돼서 잠이 들어 입에서 젖이 주르륵 흐른다. 그러면 또 깜짝 깨서 다시 오물오물 젖을 빨던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얼굴과 그 유대감을 잊을 수 없다. 내가 그 순간이 좋아서 오래 모유를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자기도 아직 어린아이면서 동생을 귀여워하던 누나 JY, 5년 동안 혼자 사랑받고 자라서 동생을 질투하고 미워할 법도 한데 단 한 번도 화를 내거나 동생을 미워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엄마를 빼앗긴 불평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아이 었다. 그래도 서운한 감정이 있었던지 가끔 서운하지 않았냐고 미안하다고 얘기하면 서럽게 울곤 했던 기억이 마음 아프게 남아있다.
우리 딸은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고 잘 어울리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1학년이던 동생을 데리러 가면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실내화 신고 운동장에 나와 정글짐을 하고 뛰어다니며 즐겁게 놀던 해맑은 그 얼굴이 생각난다. 아들 친구 엄마들도 6학년이 저렇게 건전하게 친구들하고 운동장에서 뛰어논다고 사춘기도 없냐고 신기해할 때 내가 정말 아이를 잘 키웠나 보다 착각하고 마음 가득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영재인 거보다 난 그런 아이인 게 너무 좋았고 행복했다. 받아쓰기 10문제 중 5문제를 맞고도 다른 엄마들 앞에서 큰소리로 이야기하던 해맑은 아이들이었다.
그 행복은 거기까지였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내가 다 이해할 수 없는 해결해 줄 수 없는 고민과 자신만의 세계가 생기고 그늘 한 점 없던 얼굴에 그림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인간이면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지만 그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냥 햇살 속에서만 머물러 있었으면 했다. 때로는 그 어두운 얼굴을 외면했다.
사실 큰 일들도 아니었다. 친구들과의 갈등, 거짓말하고 PC방 가는 일, 벌점이 며칠 연달아 날아온 일, 시험기간에 여자 친구와 집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던 아들을 본 일, 지금 생각하면 정말 별 일도 아니고 그 나이 대에 누구든 겪는 일도 나에게는 과장되고 진하게 느껴지는 고통의 감정으로 다가왔다. 지금도 20대가 겪는 그 나이대의 고민과 힘듦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내 마음은 쿵쿵 내려앉는다.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참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밝기만 하고 어둠한 점 없는 사람은 평면적이고 깊이가 없는 얄팍한 인간으로 자란다. 그런 사람은 있을 수 없고 즐거움과 행복만이 다가 아님을 알면서도 내 아이들에게 구름 한 점이라도 비치는 날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느낌이 들었다. 그건 정말 처음 하는 경험이고 아이들이 어릴 때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 나이에 당연히 겪을 수 있는 일들에도 나 자신이 겪는 것보다 더한 감정이 다가온다. 그렇게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도 부모로서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부모인 내가 느끼는 진한 감정들은 날 당황스럽게도 하고 행복하게도 하고 인생의 어떤 일들보다 나에게 중요하게 다가온다.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부모역할이 달라져야 한다고 <부모교육> 강의를 얼마나 많이 했던가, 그 당시 아직도 아들들에 연연해 하시는 시어머니와 나에게 집착하는 친정엄마를 떠올리며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열강을 했더랬다. 그런데 그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난 아이가 어른이 되면 그 마음도 저절로 커지고 초연 해지는 줄 알았다. 그건 아이가 성장통을 겪는 만큼의 성장통을 부모도 겪어야만 이루어지는 힘든 일이었다. 나날이 다짐하고 애써야 되는 일이라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아이 친구 엄마들이 가끔 아이들 유치원 때 사진을 카톡방에 올린다. 다 같은 마음이다. 아무 걱정 없던 빛으로만 만들어진 것 같던 아이들이 가끔씩 그립다. 아이가 커 가는 만큼 문제의 수준이 달라진다. 우리가 들어갈 수 없는 아이들만의 세계를 인정해줘야 하고 혼자 설 수 있게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는 걸 알지만 그때가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가끔 스쳐가는 아이의 얼굴에서 아기 때 얼굴이 비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엄청난 동안인 딸에게는 그 모습이 많이 남아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