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상한 일이다. 왜 스타벅스에 가야 집중이 잘 되는지 모르겠다. 스타벅스 커피는 그다지 맛있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라테도 너무 싱거워서 샷 추가를 반드시 한다. 그런데도 뭔가 할 일이 있거나 글을 쓸 때는 스타벅스에 간다. 커피는 평범하지만 장소가 주는 편안함이 좋다. 교대나 강남역, 명동 같이 사람들이 너무 붐비는 곳만 빼고 어느 지역에 있건 스타벅스는 대부분 좋았다.
난 강의할 때 항상 1시간 정도 일찍 도착해 강사실에서 그날 강의할 내용을 정리하고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힌 후 교실에 들어가곤 했다. 구리 쪽에 있던 보육교사교육원에서 강의할 때는 따로 강사실이 없었다. 전임 교수님의 연구실을 같이 써야 해서 너무 불편했다. 그래서 구리 역 주변에 있는 스타벅스에 가서 잠시 커피를 마시며 강의할 내용을 정리하곤 했었다. 2년 가까이 그곳에서 강의하면서 거의 매주 들리게 됐는데 그곳이 좋아서 강의하러 가는 먼 길이 즐거웠다. 사람이 별로 없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강의를 하러 간 건지 그 카페에 가기 위해 간 건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그 시간을 만끽했다. 나중에는 한 시간보다 더 일찍 가서 점심도 먹고 오래 앉아 있었다.
나는 혼자서 카페에 있는 시간이 정말 좋다. 사람들과 같이 가서 하염없이 수다 떠는 일도 좋아하지만 혼자서 카페에 있는 시간도 비슷한 정도로 좋아한다. 집에서 혼자 있을 때는 적막한 느낌이 들고 계속해야 하는 자질구레한 일에 방해받는다. 뭔가를 하려고 하면 빨래가 끝났다는 소리가 들리고 텔레비전 선반 위의 먼지가 보이고 뭔가 먹을 시간이 된 거 같아 요리를 하러 달려가곤 한다. 집은 나에게 쉬고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 좀 느슨한 일터 같은 느낌이다. 대기 상태로 소파에 앉아 예능이나 잠깐씩 보다 누군가 밥 먹겠다 하면 차려주고 절대 줄지 않는 집 안 일을 하고 잠깐 쉬는 장소에 불과하다.
드라마도 식구들이 있을 때는 잘 안 보게 된다. 중간에 자꾸 방해받고 끊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에 커피머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약속이 없을 때는 카페에 간다.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노트북에 타닥타닥 글을 쓰거나 강의 자료를 만들거나 멍하니 앉아 있는다. 배가 고프면 간단하게 먹을 케이크이나 샌드위치도 있다. 내가 만들어 먹지 않아도 된다. 적당한 소음과 사람들과의 거리가 기분 좋게 느껴진다.
난 약속시간에 일찍 도착하는 편이다. 그래도 보통은 10분 정도 일찍 가는데 처음 가는 먼 곳일 때는 조금 더 서두르다 보니 20~30분 정도 일찍 가는 일도 있다. 그럴 때는 주변 스타벅스에 간다. 커피는 친구들 만나 바로 마실 거니까 간단한 간식을 사서 자리 값은 내고 수첩에 그림을 그리거나 메모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보니 평소에 가볼 일 없는 다양한 지역의 스타벅스에 가봤다. 최근에는 성수역 부근에 있는 스타벅스와 학동사거리역점 스타벅스에도 가 봤는데 너무 좋았다. 조금씩 다르지만 특유의 편안하고 집중 잘되는 조명에 안락한 의자와 일하기 좋은 높이의 테이블이 있었다.
스타벅스가 이대 앞에 1호점을 오픈했을 때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다니는 여자들에 대한 말도 많았고 지금도 여러 안 좋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난 이처럼 편안하고 좋은 카페를 찾지 못했다. 나도 주인의 개성이 돋보이고 커피가 좀 더 맛있고 일하기 편안한 카페에 가고 싶지만 찾기가 쉽지 않다. 개인이 하는 곳에는 이렇게 커피 한잔 시켜놓고 2~3시간 앉아있기 미안하다. 스타벅스에서도 오래 있을 때는 중간에 샌드위치나 다른 음료를 한 잔 더 시키기는 한다. 또 계속 가서 친해지면 주인과 아는 체를 하게 될 것도 좀 걱정이다. 익명성이 보장되고 내가 뭘 하는지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카페의 한 풍경으로 녹아들 수 있는 편안함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얼마 전 신유진 작가의 <Mon cafe>라는 책을 봤는데 파리의 카페 이야기가 흥미롭게 쓰여 있었다. 책의 저자도 나름대로의 까다로운 카페 선택기준이 있었다. 남편과 파리에 처음 생긴 스타벅스에 가서 사람들의 팔이 서로 닿지 않는다는 불평을 하는 대목이 있었다. 파리의 카페는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옆사람과 팔이 닿는 게 당연하다는 거다. 가르송이 나를 봐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아메리카노도 없는 카페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그 나름대로의 멋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저자의 남편은 스타벅스를 둘러보고는 “네 취향이 도서관인 줄은 몰랐다”라고 살짝 비꼬는 투로 말했다는데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거 같다. 최근에 광화문 교보문고에 푸드코트가 있던 자리에 엄청 큰 스타벅스가 생겼는데 정말 도서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난 너무 좋아서 연달아 두 번이나 갔고 집이 가깝다면 매일 와서 글도 쓰고 바로 옆이 서점이니 책도 사서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강릉이나 부산, 제주도등 유명한 관광도시의 좋은 카페들은 커피 맛도 훌륭하고 디저트도 너무 맛있었지만 관광지 특유의 북적거림과 너무 꾸며진 반들반들한 그 번쩍임에 영 정이 가진 않았다. 한 번 가보기에는 ‘아 좋구나! 사진 찍기 좋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그냥 내 집 주변에 있는 스타벅스가 최고로 편안하고 좋다. 비록 커피는 맛이 없어서 늘 샷 추가를 해야 하고 샌드위치는 너무 달고 다 먹어봐서 식상하지만 가장 편안하고 좋다.
스타벅스 같은 프랜차이즈가 개인 상권을 죽이고 개성을 말살시키는 부작용에 대해 알고 있다. 어느 도시에 가도 다 똑같은 풍경이 되는 것은 나도 싫다. 그래서 그동안은 애써 스타벅스를 외면하고 좋은 카페들을 찾아다니는 노력을 했다. 그런 좋은 카페들은 나 같은 아줌마가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있기에는 부담스러웠다. 좋은 만큼 늘 사람들이 많았고 시끄러웠고 부산스러웠다. 친구들과는 그런 곳을 찾아가고 사진도 찍고 한다. 그런데 혼자서 일을 하러 가기에는 스터디카페보다는 덜 형식적인 거 같고 편안한 분위기의 스타벅스를 좋아한다고 오늘은 고백해 본다. “사실 스타벅스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