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거절, 서운함의 무게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by 김까미

팀 변경 시도를 위해 인사팀이 소극적 반응이어서, 직접 찾아다녔다. 세명의 결정권자들을 만나고 10일의 기다림 끝에 결국 최종 거절 통보를 받았다. 그것도 사내 메신저로. 마치 오래된 연인과 카톡으로 이별 통보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아, 큰일이 일어났네? 어떡하지? 어떡하긴, 그만 두면 되지. 이 팀에서 다시 일할 수 있어? 없잖아. 그건 죽을 것 같잖아. 그럼 내 살길 찾아서 떠나야지. 각오했던 거잖아. 자, 그럼 퇴직 프로세스를 찾아볼까.' 하며 사직서를 검색했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방어기제에 대해 배웠다. 마음이 위협받거나 상처받을 상황에 놓였을 때,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행동 특성의 유형을 배웠다. 그러니까 수치심이나 불안할 때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나타나는 기사님들이란 생각을 하니, 방어기제가 나쁘게만 들리지 않았다. 거절의 메시지를 받은 그 순간 '해리'와 '억압' 기사님을 찾았다. '지금 눈물을 흘리면 안 돼. 감정, 너 들어가 있어. 이 느낌에서 지금은 분리해야 돼. 지하 내려가서 산책을 좀 할까?' 하고 몸을 움직였다. 메시지 앞에 쭈그리고 있지 않고 움직이기를 선택했다. 나를 돌보기로 했다.


그리고 오후를 울지 않고 보냈다. 자격증 공부하던 것도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지만, 감정의 분리와 생각의 흐름을 멈추기 위해 공부를 했다. 시간이 잘 간다. 오전에는 그렇게 집중이 안되더니, 술술 읽힌다. '해리'가 제대로 일어나고 있구나, 안심했다. 휴가와 재택근무를 신청했다. 이 감정을 해소하기 전에 평온하게 사무실에 앉아 있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밝고 명랑한 친구, 아니 동생에게 연락했다.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줄 공감력 높은 친구에게 위로받고 싶었다. 다행히 급히 잡은 약속에도 응해주었다.


퇴근을 하고, 아이와 저녁을 같이 먹고 상담을 받으러 갔다. 안전한 공간에서 마음속 생각과 느낌을 털어놓았다. 털어놓으니 심장이 찌릿찌릿 아파왔다. 눈물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엉엉 소리 내어 마음껏 울었다. 마치 첫사랑과 헤어졌을 때처럼 울었다. 만 18년을 일한 회사에서 팀 이동이 실패가 되니, 이제 회사에서 나에게 쓸모없다고 하는 것 같았다. 가치 없는 인간이 된 것 같았다. 회사에서 원하는 바와 내가 원하는 바가 다를 뿐인데, 그 차이에서 오는 감정의 파도는 나를 집어삼켰다.


만 18년을 한 회사에서 일했는데, 이 안에서도 내가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는 판정은 내 존재가 거절당한 것 같았다. 온 힘을 다하면 이뤄질 줄 알았는데, 온 힘을 다한 결과가 '거절'이란 그 서운함의 무게가 나를 눌렀다. 그 무게는 다시 자책으로 이어졌다. 그동안 헛 똑똑이로 회사를 다녔다는 생각에 허무했다. 후회가 나를 잠식해서 발 밑으로 꺼지는 것만 같았다. 눈물이 단전에서 터져 나오고, 울음의 파도에 숨이 막혔다. 잠시 차 한 모금 마시고 나니 진정이 되었다. 내가 딛고 있는 바닥과 마주 앉은 선생님의 존재가 안심되었다.


한참 울고 나니 선생님이 물으셨다.

"지금 느낌이 어떠세요?"

"서운해요. 그동안 회사 생활을 잘 못한 것 같아요. 난 잘하는 일을 하고 싶을 뿐인데, 거절당해서요."

"개운해요. 느낌을 알고 나니 후련해요."

그렇게 상담을 끝내고 나오는 길은 다시 눈물을 멈출 수 있었다. 집에 와서 스트레칭을 하고 잘 잤다.


지금도 문득문득 서운함의 무게에 눈물이 흐르지만,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좋은 것들을 해주면서 나를 돌보며 시간을 보낼 것이다. 글도 쓰고, 친구도 만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안 먹히면 먹지 않기도 하면서.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퉁치지 않을 것이다. 거절은 마음이 아픈 일이지만, 그게 내가 가치 없는 인간이란 뜻은 아니니까. 비합리적 신념은 아니었는지 점검하면서 내 삶을 잘 살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다. 나는 그런 방법을 많이 배웠고, 늘 그랬듯 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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