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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하는 퇴사 생활

불안한 게 당연하지

by 김까미 Mar 23. 2025
동기들을 만나고 돌아온 날 마신 음료 3잔.동기들을 만나고 돌아온 날 마신 음료 3잔.

 출근은 하지 않지만, 행정적인 퇴사 처리는 아직 진행 전이다. 17일부로 발령이 났고, 이번 달 안으로 행정 처리 – 구인 등록이나 실업급여 신청과 같은 행정 처리를 해야 한다. 회사 밖에서 회사 안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진행할 일이 남았다. 회사 밖에서도 회사의 도움을 유효하게 받을 수 있다는 점이, 그동안의 회사 생활을 잘하고, 평판이 좋았다는 증거 같아서 반갑다. 이런 느낌은 휴가 소진하면서 출근하지 않을 때, 회사에 찾아가서 입사 동기들과 점심을 먹을 때도 느꼈다. 입사 동기들은 사내에서도 특이한 성격들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누구, 누가 동기라고 밝히면 너희들이 동기였냐고, 티가 나지 않아서 전혀 몰랐다면서 놀라워하는 반응이 보편적이었다. 그 당시 입사한 연도별로 동기 모임을 운영하는 전통이 있어서, 그렇게 뭉친 동기들끼리 엄청 친하게 지내서 사내에서 어떤 사람들이 동기인지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의 입사 동기들은 성격의 결이 다양해서 적당한 거리감을 그때부터 이어갔다.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와 끊어지는 듯 이어가는 인연의 모습으로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 동기들이 가기 전에 밥이라도 먹자며 불러내 줘서 고마웠다. 스타일 변신하고 그 자리에 가서 동기들과 밥 먹고 차 마시며 수다를 떠니, 각자의 자리에서 잘 지내고 있고, 앞으로도 잘 지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다 먹고 점심시간 끝나기 전에 돌아가는 그들과 반대 방향으로 돌아 나오면서, ‘이제 다른 세계를 살아가겠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동시에 불안이 살짝 올라오는 걸 느꼈다. 저들과 같은 생활을 오랫동안 같이 할 것으로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자발적으로 떨어져 나온 선택이 과연 잘한 선택인지 자신 있냐고 물어보는 내면의 목소리에 대답할 말을 쉽게 찾지 못하자 올라온 감정이다. 그러다 우연히 퇴사 전에 적었던 '나에게 퇴사가 어떤 의미인지'를 날림으로 적어둔 쪽지를 발견했다.     


 -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는 선택

 - 문을 열고 나가기 위해서, 문을 닫음

 - 나를 지키기 위한 선택

 - 어디에 쓰이냐에 따라 나의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 나에게 맞는 옷을 찾기 위한 도전

 - 내가 원하고 생각하는 대로 살기 위한 선택, 나로 살기 위한 허락

 - 다른 사람의 인정을 얻기 위해 구걸하며 기다리던 삶의 마침표

 - 앞으로 10년 후 삶의 변화를 위한 선택          


 쪽지를 다시 읽으니 불안함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지금은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생각되었다. 익숙한 상황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중이고 무엇을 할지 구체적인 사항이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인정하고 나니 불안의 크기가 더 커지지 않았다. 감정을 인정하고 나니 원하는 것을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을 할 수 있었다.     

 

 출근하지 않으면 집에 계속 있을 줄 알았지만, 약속의 유무에 상관없이 집 밖으로 나가서 하루를 보내면서 음료를 3잔씩 마시고 있다. 약속이 있으면 다른 사람과 함께 마시고, 그 시간 앞뒤로 무엇인가- 공부하거나, 글쓰기를 하기 위해 카페를 찾았다. 집에는 친정엄마가 사업차 근처에 오시게 되어서 우리 집에 계시면서 볼일을 보러 다니고 계셨기 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우리 집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오셨는데, 다른 데 가시라고 하기는 죄송스럽고 마침, 남편이 평일에는 집에 오지 않으니까 기꺼이 우리 집에 오시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의 사업상 통화 내용을 옆에서 듣고 있기가 힘들었다. 한번 전화기를 잡으면 귀 아프다며 스피커폰으로 몇십 분을 통화하시는데, 그 소리를 듣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들리는 내용이 격해져서 고성이라도 오가면 마음이 급속도로 불안해짐을 느꼈다. 이전과 같은 느낌이 들려고 해서, 엄마가 계신 방의 방문을 살며시 닫아드리고 나도 방에 들어가서 방문을 닫아 듣지 않으려 했다. 그러고 나면 엄마의 사업을 도와드려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상황에서 내가 회사를 그만둔 것이 과연 잘한 일일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의 사업으로 인해 내가 받은 손해도 있기 때문에 어떡하든 엄마의 사업이 풀리기를 기도하고 있지만, 이럴 때마다 결심이 필요하다. 엄마와 나는 다른 사람이고, 다른 시대에 태어나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사시는 것이고, 나는 내 인생을 살아야 한다.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는 분이시니까 이번에도 이 위기를 잘 이겨내실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라고 되뇌니 불안이 더 커지지 않고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마음 에너지를 많이 소진했음을 동시에 느꼈다.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하고 싶은 활동이 뭐가 있는지 자연스레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고, 안전한 모임에서 내 마음을 가볍게 적고 나니 에너지가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흘려보니, 1도 다른 행동을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고, 불안할 수밖에 없는 퇴사 생활을 글로 적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질적으로 예민한 편인 나란 사람은, 불안을 느끼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안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고 인정하되, 그 감정에 휘둘리거나 매몰되지 않도록 다루면서 삶을 향해 걸어 나가는 이 과정을 글로 남겨서, 나 자신이 이렇게 해냈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어졌다. 거기에 혹시라도 나같이 불안에 휘둘리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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