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 정산.
이번 주에는 퇴직금 정산이 있었다. 통장이 일시적으로 두둑해지니 마음이 같이 든든해진다. '이것이 바로 금융치료지!' 하는 마음과 '일시적인 거야. 긴장의 끈을 놓지 마!' 하는 생각이 같이 든다. 기쁨이 와 불안이 가 동시에 나타났다. 퇴직금 정산 내역과 인사 담당자분의 마지막 문장 '회사를 위해 애써주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항상 건강하시기 바랍니다.'를 읽고 나니, 의례적인 문구임에도 유독 한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애썼다'는 단어가 마음에 와닿으면서, '나 정말 애쓰며 살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년 2개월 동안 다녔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술을 못 마시던 신입사원 시절 소주를 마시기 전에 덜덜 떨었던 순간부터, 선배들과 친해지기 위해 술자리를 쫓아다니다가 늘어난 주량과 육아 휴직을 들어가기 전과 후의 전경들까지 순식간에 시간여행을 하며 내가 정말 애썼다는 생각에 뭉클해졌다.
회사 와의 마지막 행정 처리가 끝났다는 안도감이 드는 것을 느끼며, 미련이 이제 정말 없구나. 싶어졌다. 동시에 이제 정말 회사와 인연이 다했다는 실감이 났다. 퇴사를 결심하게 된 계기였던 팀장-성격과 가치관이 반대-과 버티며 일했던 시간도 지나갔다. 4년 동안 팀장에게 맞추기 위해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면서 애써서 붙들었던 나의 청춘과, 안정적인 월급을 내려놓았다는 것을 인식했다. 나를 찾기 위해 퇴사를 결심하고 실행한 과정이 스쳐 지나가며 나를 아프게 하는 환경에 나를 내버려 두지 않고 나를 돌보기 위한 선택을 했다는 점이 기쁘게 다가왔다.
두둑해진 통장은 마음의 안정을 주었고, 이제 그 통장을 비우며 살아야 하겠지만 아직 닥치지 않은 현실이니까 미리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신용카드 사용을 줄이고, 체크카드를 사용하는 버릇을 들여서, 이번 달 카드 값을 100만 원 줄였다. 친정 부모님 보험내역을 정리하고, 다시 부모님이 내실 수 있도록 말씀드려서 고정 지출을 줄이고 있다. 그리고 돈을 쓰기 전에 이것이 진짜 필요한 것인지, 호기심에 사보는 것인지 인식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전에는 쓸데없이 산다고 물건을 사고 나서 후회했었는데, 호기심을 채우는 것도 중요한 가치라는 생각을 한 뒤에는 호기심을 충족하는 소비도 인정하고 있다. 소비를 할 때 그 이유를 분명히 인식하고 나니, 오히려 충동 구매가 줄어든다.
백수의 시작을 부트캠프로 시작하면서 공부를 시작하니 마음이 편안하고 재밌다. 새로운 도전은 생활에 설렘을 주었고, 접해보지 못했던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니까 신났다. 눈치 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것들을 나서는 내가 자신감 있어 보여서 좋다. 공부하는 방식도 내게 잘 맞는 것 같아서 선택한 과정이 만족스럽다. 6개월 뒤의 내 모습이 기대가 되고 궁금해진다. 생활이 편안해지고 마음이 안정되니까 루틴이 쉽게 잡히게 되어서 편안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표정이 좋아졌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스트레스받지 않는 환경에서 지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앞으로의 생활 속에서 불안이 찾아올 때, 찾아보거나 시도할 수 있는 씨앗을 하나 심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