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이 밀려올 때 외우는 주문.
무기력이 느껴지거나 감정이 요동 치려고 할 때 외우는 주문이 있다. 널브러진 옷가지가 걸어가는 발에 차이고 정신없는 식탁 위 때문에 시선이 어지러운데 너저분한 바닥의 식빵 부스러기까지 발바닥에 느껴진다. 그럴 때면 알 수 없는 화가 갑자기 치솟는다. 눈앞에 보이는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해야 하지 생각하는데 동시에 이번 주에 해야 할 일들이 두서없이 생각나서 이것도 저것도 다 급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고 싶어지지 않을 때 떠올린다.
“현재, 내가 가장 원하는 게 뭐지? 그걸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게 뭐지?”
가만히 그 자리에서 눈 감고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깊이 내 속으로 들어가서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그걸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성공은 무엇이 있지? 아, 나 왜 이리 화가 나지? 뭐가 마음에 안 들지? 뭐가 힘든 거지? 체력을 다 썼나? 할 일이 너무 많은 것인가? 지금 뭐가 마음대로 안 돼서 화가 난거지?'하고 나에게 물어본다. 체력을 다 썼는데 할 일이 눈에 밟히면 우선 침대에 눞는다. 30분만 쉬자며 누워서 3시간 자고 일어나면, 눈앞의 집안일을 30분 만에 해치울 수 있는 초능력이 생긴다. 체력은 있는데 할 일이 많아서 복잡할 때는 가장 완료의 기준이 낮은 것부터 한다. 가장 쉽고 간단한 일을 한다. 눈앞에 밟힌 옷가지만 세탁실에 가져다 두자. 하고 허리를 굽혀 빨래를 주워서 세탁실에 다녀오면 청소기를 밀고 싶어진다. 화장실 앞만 청소기를 밀고 다시 충전기에 청소기를 제자리에 둔다. 그러면 이제 설거지를 할 수 있다. 설거지를 마치고 나면 물기가 튄 바닥을 닦게 된다. 그럼 딱 거기만 닦는다. 다른 데는 내일 하면 된다 생각하면 그다음 일을 할 수 있다.
생각만 하고 있으면, 시작하기가 어렵다. 생각의 속도는 어마어마하게 빨라서 이미 집안일이 착착착 끝나서 깔끔한 집안에 앉아 있는 시간이 되었고, 벌써 두세 개의 할 일을 다했다. 그 정도쯤 끝내면 내일 굉장히 편하겠다. 하고 희망 회로를 돌린다. 앉은 채 생각만으로 구만리를 내다보고 있으면, 지금 해야 하는 눈앞의 백지와 깜박이는 커서가 급격히 커진다. 갑자기 발바닥의 먼지가 내 다리를 타고 올라와 입을 막아서 숨이 막힌다. 어느새 구박덩이가 나타나 그동안 그것도 안 해두고 뭐 했냐고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있다며 게으른 X이라며 삿대질을 한다. 마음속의 잔소리를 들으면 화가 불쑥 올라와서 짜증이 난다. 그 과정을 인지하게 되면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가기 전에 멈출 수 있다. 구박덩이가 나타나기 전에 인지하면, 생각이 너무 앞서 갔으니 멈춰야 한다라고 속으로 말하면 환기가 되고 생각이 멈춰진다. 구박덩이가 나타난 뒤에는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라고 내 선택의 이유를 분명히 말해준다. 그러면 구박덩이의 삿대질을 막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언제든 내가 나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안일을 잔뜩 쌓아두고 소파에 쭈그리고 앉아 릴스 삼매경이어도 괜찮다. 그렇게 세상의 자극을 차단하고 감각이 쉬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란 걸 안다. 읽고 싶은 책을 읽기 위해 카페에 갔으나,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다가 엎드려서 자도 괜찮다. 3줄이라도 읽다가 엎드렸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끝까지 읽을 집중력이 돌아온다는 것을 안다. 몸에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오늘 운동을 쉬어도 괜찮다. 쉬면서 아낀 체력으로 내일의 내가 운동할 수 있다고 믿는다. 체력이 회복되고 나면 움직이려고 애쓰려는 나를 알고 있다.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고, 다 그럴만했다. 이렇게 나의 행동을 믿는 선택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저만치 성장해 있는 나를 발견해 왔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못 하겠다면, 주문을 외우자. "지금 뭐 하고 싶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