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10km를 뛰고 나서.
마라톤 10km를 뛰고 왔다. 한 번도 쉬지 않고 매우 느린 속도로 계속 뛰었다. 7분 35초의 페이스로 시작해서 8분 30초의 페이스로 끝났다. 1시간 18분의 기록이 뭉클했다. 아이를 가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뛰었던 10km의 기록이 1시간 25분이었는데, 10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기록이 앞당겨진 경험은 뭉클하게 다가왔다. 과거의 나를 뛰어넘은 경험은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채워줬다.
같이 신청한 일행과 출발 지점에서 이미 갈라졌다. 시작하면서 "저는 매우 느리니까, 먼저 가세요."라고 말해둔 덕분이었다. 나의 운동 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이렇게 태어난 몸인걸 어쩌겠는가, 아무리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한계를 운동을 하다 보면 느낀다. 10킬로를 걷지 않고 달리기 위해 아주 천천히 달리지만, 자꾸만 나를 제치고 앞서 나가는 사람들의 등을 바라보면 오만 생각이 다 들었었다.
저 사람보다 뒤처지지만 말자하고 한 사람을 찍고 뛰어도, 어느새 그 사람의 등은 보이지 않게 된다. 학창 시절에도 체력장 꼴찌였었다. 운동 신경이 별로 발달하지 않아서, 운동 수행 능력이 사실 많이 떨어지는 걸 어쩌랴. 잘하지 못하는 나를 인정하고, 마주하기가 싫어서 운동을 피하고 좋아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떨어지는 체력을 붙들 수 있는 방법은 운동을 하는 것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의 경쟁 상대는 늘 과거의 나다. 어제 내가 했던 것만큼만 더 하자.라고 생각한다. 지난 기록 보다 1초라도 좋아지면 된다.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한계를 매번 넘어서는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을 느낀다. 일주일 전 10km를 연습했을 때, 8.5km에서 고비가 왔었다. 그때는 너무 힘들어서 1.5km를 걸어서 왔었다. 이번에는 그 기억을 살려서 그때쯤에 고비가 올 것을 아니까 컨디션을 조절해서 끝까지 뛰었다.
10년 전 뛸 때는 10km가 까마득하게 느껴져서 힘들면 걸었다가, 다시 뛰었다가를 반복했었다. 이번에는 10km를 아주 잘게 나눠서 생각했다. 그동안의 연습 결과 이 정도 뛰면 0.5km 정도라는 감각을 익혔기에, 여기서 다음 0.5km까지만 가자. 하고 멀리 내다보며 뛴다. 그러다 보면 2.5km 지점을 지나고, 급수대를 만난다. 물 한번 축이며 잠깐 걸어주고, 다시 2.5km를 가면 반환점이다. 하이파이브를 하며 힘을 냈다.
반환점을 돌면서부터 페이스가 8분대로 떨어졌다. 숨이 거칠게 쉬어지는 것이 들리지만, 계속 거리를 나눠서 생각했다. 이때부터 걷다가 뛰다가 하는 사람들과 같이 페이스를 이어갔다. 7.5km대의 급수대를 지나면서 열 발자국쯤 더 걸었다가, 같은 페이스로 뛰던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기에 힘내서 뛰었다. 여기서부터 1km를 가면 이제 마지막 고비가 온다. 생각하니 계속 뛸 수 있었다.
8.5km를 지나면서 같은 페이스를 유지하던 사람들을 제치고 앞으로 나섰다. 그때부터는 10분만 뛰자, 8분만 뛰자 생각했다. 60분을 지나가던 시점이어서, 목표로 삼은 1시간 20분 내에 들어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자 마지막까지 뛸 수 있었다. 결승점을 지날 때 1시간 18분을 확인하니, "YES!!"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세게 함성을 지르고 싶었지만, 힘이 없어서 조용히 내뱉었다.
매우 느리지만 마라톤을 하는 이유는 결승점을 통과할 때의 해냈다는 감각 때문인 것 같다. 자신의 속도대로 주어진 거리를 완주해 내는 경험은 성취감을 채워주고,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해 준다. 복잡한 머릿속은 힘들게 뛰다 보면 아무 생각 없이 정리가 되는 효과도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졸고 일어나니, 아주 개운했다. 또 다음 마라톤을 예약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