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이다.
5월 첫 주의 긴 연휴는 운동으로 시작했다. 나 자신의 체력 한계를 과신했던 탓인지 감기가 심하게 들었다. 목이 계속 아프고 기침을 간헐적으로 계속한다. 코도 막히고 귀도 먹먹해서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 병원도 가고 약도 제때 챙겨 먹으면서 회복에 전념했으나, 감기는 점점 심해졌다. 목이 부어서인지 입맛이 없고, 뭘 먹어도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프면 입맛이 없다는 말이 어떤 느낌인지 몰랐었는데 체감하고 있다. 삼시 세끼를 먹고 있지만 예전처럼 정신줄 놓고 먹는 버릇이 없어졌다. 식사 시간 내내 명료하게 깨어서 꼭꼭 씹어먹으니, 배부름이 쉽게 느껴져서 숟가락을 쉬이 내려놓게 된다. 남편이 더 먹으라고 권해서 끝까지 먹기는 했다.
사실 이번 주말에 시부모님이 우리 집에 2-3년 만에 오시기로 했었다. 남편 생일마다 아들네 집에 가야 한다는 어머님의 요청에, 마지못해 들어드리고 있었다. 작년에는 일정이 안 맞아서 오지 못하셨기에 올해는 꼭 오시겠다고 말씀하셨었다. 그래서 나도 “어머님, 저 요리 못해서 걱정이에요.”라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점심은 사 먹고, 저녁은 게장 사서 집에서 먹자 하셔서 마음 편히 미역국과 아버님을 위해 왕새우구이 정도 하겠다고 말씀드렸었다. 하지만 아무리 편한 시어머님이라고 해도, 오랜만에 우리 집에 손님이 오신다니 부담되는 마음이 있었다. 운동을 하고 남은 연휴 동안 주방 청소를 구석 구석했다. 주방 후드부터 하부장 정리를 하느라 몇 시간을 집중했었다.
주말에 시부모님 오셔야 하니까 주중에 병원 가서 엉덩이 주사도 맞고 약을 잘 챙겨 먹어서 회복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당일 아침에도 너무 아파서 아침 일찍 병원을 다녀왔다. 남편은 그 사이 시부모님을 모셔오기 위해 시댁으로 출발했었다. “깍두기 가져갈까?”를 물어보기 위해 전화하신 어머님은 내 목소리를 듣더니, 감기 심해졌냐며 걱정하신다. 전날 기침하느라 잠을 좀 못 자서 아침에 병원 가서 다시 약 타왔다고, 그러느라 남편 출발했을 것 같다고 먼저 나오느라 못 봤다고 말씀드렸다. “에고 오늘 괜히 간다고 했나 보다.” 하시기에 “아니에요. 어머니 다음에 또 언제 오셔요.” 했더니 알겠다며 전화를 끊으셨다. 그리고 20분쯤 지났을까, 남편이 차 돌렸다고 전화가 왔다. 어머님이 전화하셔서 오지 말라고 돌아가라고 하셨단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마음 한편이 편안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알겠다고 전화를 끊고 나니, 어머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음에 갈게~ 몸 아플 때는 쉬어야지. 다 귀찮잖아. 아픈 거 어서 나아.” 하시며 전화를 끊으셨다. 얼떨결에 “아, 네. 알겠어요. 어머니“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며느리가 아픈 것에 마음 써주시고, 계획한 일정을 바꿔버리다니! 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파도 계획된 의무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었는데,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어 주시는 어머님의 배려 덕분에 푹 쉴 수 있었다. 그런 배려를 내가 언제 받아봤던가 싶어서, 기뻤다.
회사를 그만뒀다는 이야기를 3월에 만났을 때 하지 않았고, 건강보험이 말소되었다는 통지 때문에 4월에 어머님이 알게 되셨다. 전 달 방문했을 때 왜 말하지 않았냐며 안쓰러워하셨었다. 그냥 아무 말 못 하고 가만히 있었다. 사실 혼자 생각하기에 어머님이 아시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돈이라도 벌지 않으면 미워하실 거라 생각이 들어서 말씀드리는 것이 두려웠었다. 하지만 나의 퇴사를 마주한 어머님의 반응은 상상과 반대였다. 오히려 안쓰러워서 걱정해 주시는 마음이 느껴졌다. 보통 저녁을 먹고 하고 오던 설거지도 하지 말라며, 비가 와서 심란하니 어서 집에 일찍 가라며 보내주셨었다.
어머님의 사랑과 배려, 돌봄에 마음 한편이 밝아졌다. 아픈 나를 구박하지 않고 제대로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과 같이 먹으려고 준비해 둔 음식들로 남편과 아이와 열심히 먹었다. 든든히 먹고 나니 어머님이 컨디션 어떠냐며 다시 전화를 주셨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하니, 어머님은 “뭘 당연한 거 가지고 그러냐며, 아프면 만사 귀찮잖아. 어서 나아” 하시면서 아이에게도 엄마 말 잘 들으라고 당부하셨다. 어머님의 따뜻한 돌봄 덕분에 마음이 따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