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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이 또 왔어. 그래도 괜찮아.

가장 간단한 거 해보자.

by 김까미

지난주부터 우울한 마음이 들었고, 그 뒤에는 화가 났고, 답답했다. 마음이 그러해도 참고 외면했다. 계속해서 바쁜 일정을 소화하며 보냈다. 무기력한데, 계속 정해둔 스케줄에 끌려다녔다. 루틴이 에너지를 끌어올려줄 거라 믿었는데, 결국 공황이 왔다. 일요일 오후,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숨이 옅게 쉬어지면서, 눈이 자꾸 감기고, 가슴이 답답하고, 이상한 냄새가 났다. 모래가 묻은 슬리퍼가 신경 쓰이더니 그 먼지가 간지럼이 되어 온몸으로 올라올 것만 같다.


“여보, 차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

눈을 게슴츠레 뜨고서 동공이 흔들리는 나를 발견한 남편이 차 창문을 살짝 열어줬다.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는 것 같다는 생각을 의도적으로 하면서, 카시트에 바짝 드러누워서 가슴을 진정시켰다. 집에 가자마자 발을 씻고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멀쩡한 가면을 쓰고 짐을 챙겨서 집에 들어왔다. 짐 정리는 팽개치고 발부터 씻고 잠옷을 입고 침대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마음 에너지를 많이 쓸 일이 생기지 않으면, 우울이나 무기력이 찾아오기 전에 보통은 상태를 깨닫는다. 하지만 이번에 찾아온 스트레스는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는 일이었고, 그 일을 외면하느라 에너지 소모를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괜찮다고 회피를 하느라 다른 것이 잘 들어오지 않았고, 집중하지 못하는 나를 또 탓하느라 더 많은 에너지를 썼다.


힘이 없어서 블로그 글도 못쓰고, 모닝페이지도 못썼다. 우울하지 않으면 글을 쓰지 못하는 거냐? 회피하느라 모닝페이지까지 놓아버리는 거냐? 하며 셀프 비난까지 올라왔다. 비난도 회피하다 보니 무쓸모와 무기력의 바다에 빠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하고 싶은지 생각이 날 리가 없다. 하지만 신체는 계속 가야 할 곳을 가고,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서, 해야 되는 말들을 하고 있었다. 이런 양가감정을 느끼는 내가 싫은 혐오가 올라오고 나니까, 마지막은 공황이다.


삼십 분 잔 것 같은데, 두 시간을 자고 일어났다. 마음의 소용돌이가 가라앉았다. 피곤했다는 걸 쉬고 나니 깨닫는다. 하고 싶은 일들과 선택해야 하는 일은 언제나 산더미이다. 시간을 의미 있게 쓰고 싶기에 에너지 레벨 체크를 잊어서 짧은 번아웃이 쉽게 온다. 마음 에너지에도, 신체적 에너지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활력이 강한 나란 사람은 늘 백 프로 이상을 끌어다 쓴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몸과 마음이 개운해졌다.


가족과 저녁을 먹었다. 맛이 구체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식사량이 가늠이 안된다. 먹고 나서 속이 더부룩하다. 윗배가 또 어마어마하게 나왔다. 소화가능한 양을 넘겨서 먹었나 보다. 아주 간단한 운동-크로스 토 터치를 10개씩 3세트, 30개만 했다. 조금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스쿼트를 끊어서 150개만 했다. 조금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실내 자전거를 30분만 탔다. 땀을 한 바가지 흘리니 개운하다. 무기력이 땀에 씻겨 내려갔다. 못다 한 하고 싶은, 해야 하는 일들을 내일,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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