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일 때 올라오는 의심을 줄이는 방법
요즘 마음이 평온하다. 언제 어느 때나 글쓰기를 이어가려고 마음먹었었는데, 의외로 쉽지 않았다. 확인해 보니 한 달 만에 브런치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 2주 전에 이어서 써보려고 글쓰기 버튼을 눌렀었으나 잘 써지지 않아서 어영부영 시간에 쫓겨 쓰다 보니 0시가 넘어가서 발행을 하다가 브런치북 연재가 아닌, 일반 글로 발행했다. 역시 급하게 하면 될 것도 안된다 싶은 교훈을 얻은 날이었다.
오늘도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30분의 짬을 내서 책상 앞에 앉았다. 고민하는 이 과정을 적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나니 글이 써진다. 지난번 글은 왜 평온해졌는지 설명하려다 보니, 아직 이해하지 못한 과정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이해할 필요가 없는 과정을 글로 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환경에서 나에게 좋은 것들과 하고 싶은 것들로 채운 일상이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차곡차곡 줄어드는 잔고는 지난달 보다 분명 줄어들었지만, 마음에 우울함이나 불안함이 들지 않았다. 줄어들면 채워질 것이라는 믿음도 있고, 그것 보다 나의 안정이 더 중요함을 여실히 체험하면서 나를 믿는 힘이 더 강해진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가 만족스럽고 평안한 현실을 충분히 누리자고 마음을 먹으니 막연한 불안함이 실체를 가진 할 일 목록이 되니까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는 불안함이 사라졌다.
심지어 해커톤에서 떨어졌는데 오히려 마음이 평온했다. 예전 같았으면 '국무총리상 받고 싶어요!'라고 말했던 나를 부끄러워하고, '주제도 모르고 허황된 꿈'을 꾸었다며 스스로를 비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과를 마주하고 느낀 감정은 '홀가분해!'와 '다행이야!' 하는 안도감이었다. 두 가지 프로젝트를 동시에 해야 하므로 너무 벅찬 일정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고, 기다리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에 대한 불안이 있었다.
하지만 떨어졌으니, 결과적으로 그 시간을 쓰지 않은 일이 현명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교육과정의 프로젝트에 집중할 수 있겠구나 싶어서 마음이 편안했다.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뭐 싶은 생각이었다. 결과에 승복하고 받아들였다. 프로젝트 팀원들과 함께한 소중한 경험이 남았다는 정도의 기쁨이었다. 이런 나의 변화가 스스로 신기하다.
한편에서는 회피하는 마음인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떨어진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억지 생각인 것인가 싶은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공모전에서 떨어졌다고 해도 그 아이디어가 취지에 맞지 않았거나, 다른 사람이 더 뛰어났기 때문이지 내가 부족해서 나의 능력이 모자라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결과가 '나'라는 사람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경계가 분명하게 인식되었다.
이런 생각의 변화가 퇴사 후 가장 큰 변화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 하는지, 어디까지가 나의 생각과 의견, 취향이고 어떤 부분이 그렇지 않은지 스스로에 대한 메타인지가 발달하고 있다. 그전에는 비현실적인 이상이 있었고, 그 이상을 달성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구박했었다. 여전히 그런 부분의 버튼이 눌리기도 하고 불쑥 올라오기도 하지만, 그런 자신을 인식하고 수용하는 연습이 점차 발달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내가 좋아지고 있다. 앞으로도 좋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평온한 지금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