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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난 줄 알았는데, 답답했던 건 나였다

집중이 안 될 때, 나를 이해하는 법

by 김까미

데이터 싸이언스 과정 안에 1주일의 방학이 주어졌다. 정해진 날짜여서 프로젝트도 느슨하게 진행되고 있다. 방학이 끝나면 다시 몰아쳐야 하겠만, 이상하리만치 이번 프로젝트에는 집중이 잘 안 된다. 이유를 생각해 본다. 주도적으로 문제를 정의하고 이끌어야 하는데,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그러니 설득도 힘들다. 무엇을 모르는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일단 해봐야 알 것 같은데, 마음과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시간이 나면 오히려 놀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그렇게 열흘 동안 매일 약속을 잡고 사람들을 만났다. 쉬는 것도 확실히! 완전히 잊고 놀다 보면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거라 믿었다. 토요일 저녁, 실컷 논 뒤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호기롭게 시작한 건 좋았지만, 생각의 물꼬를 트기 위해 팀원에게 질문하자 되레 질문이 돌아왔다. 생각을 많이 해봤다고 하면서도 정작 말은 하지 않는다. 내가 따라가지 못하는 건지, 그 팀원이 표현을 잘 못하는건지 아리송한 대화가 이어졌다. 답답함이 쌓이자 화가 날 것 같았다. 이해되지 않으니 미워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감정이 불필요하게 커지는 걸 느껴서, 물 챙겨 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물을 따르며 곰곰이 생각했다. 사실 몸이 피곤했다. 점심 약속으로 지인들과 떠들다 왔지만, 왕복 두 시간의 거리가 전혀 피곤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팀원에게 화가 난 게 아니라, 주도적으로 이끌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 내 머릿속이 답답했던 거였다.


나는 대화를 통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싶은데, 팀원은 생각을 먼저 정리한 뒤 말하는 편이다. “이렇게 합시다.”가 아니라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떠세요?”라는 방식이다. 훨씬 정중한 표현인데, 내게는 어색했다. 나는 “하세요”라는 지시형 화법에 익숙했고, 과거엔 팀장의 생각을 그대로 따르려 했었다는 걸 글을 쓰며 깨달았다.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를 찾았으니, 이제는 행동을 바꿀 차례다. 프로젝트 목표 달성을 위해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시작해야겠다. 필요한 이론을 정리해 기술 블로그에 쓰고, 이를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설계해야겠다. 주말 농장을 다녀와 저녁을 해결한 뒤, 회의 시간 전까지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오늘 아침부터 하려고 어젯밤 계획했지만, 아이와 공놀이하고, 뽑기 상점 놀이를 했다. 친구 초대에 응하듯, 아이의 초대에도 기꺼이 마음을 내었다. 아이의 기쁨을 위해 최선을 다한 행복한 시간이었다. 회피가 아니라 아이와의 관계에 성실하게 임했던 순간이라 생각하니, 그 선택이 이해되고 수용됐다.

나는 매 순간 일과 가족, 자기 돌봄 사이에서 균형을 배우고 있다. 가끔 한쪽으로 기울겠지만, 글쓰기·운동·상담 같은 균형 회복 수단을 알고 있으니 현명하게 이끌어갈 것이다. 조금 무너져도 큰일 나는 건 아니니까, 괜찮다. 나를 믿어보려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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