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던 것에 대하여
특히 교보문고에 펼쳐진 책들과 그곳만의 향. 도서관마다 나는 산뜻하면서도 묵직한 향들. 그 안의 분위기에 눅진히 들어앉아 어느덧 내 체향도 활자들을 따라 슬쩍 바뀌는 그 시간을 좋아했다. 독립을 하며 가장 먼저 한 일은 그 동네 도서관 회원증을 만드는 일이었을 만큼 진심이었다.
활자들을 잘 솎아 읽어내고 나면 나는 꽤나 편안하고 정돈된 결의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게 체감될 만큼.
휴일이면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종이 책을 한두 장 넘기며 여유를 즐기는 게 퍽 좋았다. 피곤함을 달래줄 디저트와 음료를 곁들이는 건 필수였다. 온몸에 원두향이 베일만큼 앉아있다 보면, 컨디션 좋은 날은 책 한 권이 우스웠다.
출근을 시작하고는 다른 이야기였다. 그래도 책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무인예약을 신청했다. 집 앞 지하철이 마침 무인도서관을 운영 중이라 좋았다. ‘역시 도시’라며 나름 으쓱했다. 비록 사람들의 피로와 냉철한 철근소리가 오가는 지하철 역 안이었지만 겨우내야 손 끝에 닿는 종이책을 좋아했다.
정확히는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권태로워졌다. 오후 6시가 지나고 몸을 질질 끌어 퇴근하고 나면 보드랍고 투박한 종이책은 안중에도 없었다. 종일 삭막했던 사무실에서 나를 꺼내는 기분을 실감하려 자극만 찾았다. 배달음식, 쇼츠, 야구. 활자들보다 예쁘게 디자인된 페이지들이 눈에 더 들어왔다. 소모성 활자가 눈에 들어앉자 내 안에서 활자를 소화할 수 있는 여력은 더 이상 없었다. (죄송하게도) 연체가 잦았다. 배가 부르고서야 양심에 찔려 두어 페이지를 눈꺼풀과 싸워가며 읽었다. 좋은 수면제였다.
인공지능, 요약, 자동화- 같은 것들이 판을 쳤지만 나는 그것들에 있어 아직도 ‘초보‘딱지가 붙어있다. 핸들을 틀 줄은 모르고 텅 빈 눈으로 직진 차선만 겨우 밟고 앉아있다. 그동안 소화해 내어 건강한 것들을 몸에 담던 활자, 풍경, 사람, 일기 같은 것들이 온데간데 사라졌다. 사실 내가 달리고 있는 도로의 이정표도 보지 못하는 기분이다.
오랜만에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데, 영 들어오지 않는다. 병렬독서로 겨우 집중력을 곤두세워 눈을 끔-뻑. 잠을 깬다. 체력의 문제일까, 권태의 문제일까.
여러 생각이 들기도 전에 하루가 끝나고 있다. 생각할 여력도 사라지고, 난 빨라지기만 한 하루에서 겨우 브레이크로 발을 옮겨본다. 내일은 내가 지나친 이정표라도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