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에서 살고 일하고 퇴사하고
1년 1개월의 계약직이 끝나고, 타이밍 좋게 공석이 나지 않을까 싶었던 기대와 달리 나는 정식 절차를 밟아 아무 일 없던 듯 퇴사를 했다.
일이 미친 듯이 몰리고 다양한 일을 신입의 입장에서 쳐내느라 정신이 없던 1년이었다. 팀장님은 “(일이 많아) 퇴사할 날만 기다릴 것 같았다” 며 슬쩍 말씀하셨다.
퇴사를 하면 뭘 하지. 미뤄뒀던 글도 써야겠다. 책도 읽고, 읽은 책을 정리도 해야겠다. 유튜브도 만들어야지. 사진도 좀 정리하고. 블로그도 왕창 써야겠다. 집 근처에 있는 카페나 전시회들도 구경 다녀야지.
현실은 그놈의 멈출 줄 모르는 물가로 나가기도 무서워 집에만 콕 박혀있었다. 앞으로는 없을,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월급을 받아 들고 철저하게 생활비와 저축액 등을 나눠두고 앞날을 기약했다.
퇴사하면 정말 좋은 일만 있겠지.
낯선 서울 땅으로 무작정 올라온 나는 친구도 없이 오직 회사 하나. 내가 아는 사람들은 회사 사람들뿐이었다. 어쩌다 고향친구들이 올라와 얼굴을 보고 밥을 먹고. 근처에 이사를 왔다, 일을 다닌다, 해도 맘 편히 부를 친구 하나 없이 소속감을 느끼던 곳은 오직 회사뿐이었다. 이제 그마저도 없으니. 막상 갈 곳이 없었다.
빨래, 설거지, 집밥 해 먹기. 이런 것들이 아니고서는 굳이 집 밖을 나설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5평 남짓한 원룸 한 칸에서 내 모든 24시간을 보내니 몸에 좀이 쑤셨다. 무언가 이상했다. 잘못되어가는 게 느껴졌다. 내가 생각한 퇴사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아침에 눈을 뜨면, 시끌하던 팀원들의 단체 채팅방이 조용했다. 퇴사자가 생긴 채팅방에 굳이 멋쩍게 메시지를 보낼 이유도 없고, ‘언젠가 다시 만나자’ 며 내일이 있는 것마냥 인사하고 나온 채팅방에. 회사의 이야기를 다시 나눌 이유는 서로 없었다. 그렇다고 퇴사자를 부러워할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재직자를 부러워할 마음을 표내는 것도. 애매해진 것들 사이에서 우리가 나눈 연락은 오로지 ‘업무’ 이야기뿐이었다. ‘잘 지내시죠?’ 하는 말로 시작하는 건조하고 무온한 말들. ‘다름이 아니라’로 이어지는 용건. ‘감사합니다’로 매듭짓는 우리의 예의.
갈 곳이 없어졌다. 무언가 큰걸, 회사에 여즉 두고 온 기분이었다.
퇴사 날, 내쳐진 기분도 아니었다. 오히려 아쉬워 눈물을 꾹 참아내느라 바빴다.
관장님은 나를 부르며 ’오후 일정이 있어 이따 인사를 못할까 싶어 미리 불렀다’ 고, 고생했다며 이런저런 안부를 나누곤 작은 선물을 주셨다.
부장님은 앞으로 뭘 할 예정이냐며 고생했다고, 카페 기프트 카드를 주셨다.
다른 팀 주임님의 음료수와 기술선생님의 안부, 편지, 아이들의 아쉬운 인사, 케이크, 책 등의 선물.
그리고 팀원들은 ‘다른 회사에 가서도 행복하게 일하라’ 며 돈을 모아 키보드를 선물해 주셨다.
생각지 못한 마음들에 눈물이 왈칵 터졌고, 타이밍 좋게 자리가 나지 못했던 나를 두고 아쉽다는 반응을 내보이셨다. 이 업계에 계속 지내면 언젠간 만나게 되어있으니 그때 보자는 말들. 기관에 공고가 올라오면 꼭 써보라는 말들. 잘 지내라는 말.
마지막 날엔 팀원들이 시간을 내어 저녁과 음료를 사다 먹이며 다른 회사에 가서도 꼭 잘 지내길 바라고, 다시 만나 놀자고 하셨다.
이런 복작한 것들이 송두리째 사라지니. 내가 회사에 무언갈 두고 온 느낌이 들 수밖에 없나.
챙겨주신 선물 중 하나를 내가 회사에 두고 온 거였다. 알아차린 건 퇴사 당일 늦은 밤 11시. 내일 출근 전 사람들이 알아차리기 전에, 내가 그들의 선물을 두고 갔단 걸 알면 안 될 것 같단 생각에 초조해하고 있었다. 퇴사자로 처리되어 등록된 지문이 사라졌으니 굳게 잠긴 문을 열 방도도 없었다. 그렇게 늦은 새벽 2시까지 초조해하던 꿈. 회사에 무언갈 크게 두고 오는 꿈. 눈을 뜨니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 일도.
내가 맡은 일을 끝내고 가고 싶었는데. 미처 끝내지 못한 까다로운 일 하나를 인수인계를 하고 떠났다. 그 일이 혹여나 잘못 처리되고 있는 건 아닐까. 사람들이 ‘00 씨는 허울뿐이었네 ‘ 하는 건 아닐까 무서웠다. 아침에 일어나면 반사적으로 드는 괴로운 생각을 회피하려 게임만 주구장창했다. 아침 3시간은 휴대폰 속 중국산 게임이 돌아갔다. 지겨울라치면 온갖 쇼츠를 몇 시간 봤다. 꼬질한 몸을 일으켜 다시 잘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씻고 나면 그 마음은 금세 사라지고 다시 누워버렸다. 밥을 제대로 챙겨 먹을 리 없으니 힘없는 몸이 침대로 몇 번 풀썩 쓰러진다.
아직 여전하다.
화려하고 외로운 도시라고 생각했던 ‘서울’에서. 첫회사는 나의 전부였다. 계약직으로 무작정 입사해 방부터 얻은 내 오만과 착각이 나를 여기로 데려다 둔 걸 수 있지만. 아직은 이 공허감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다. 차라리 무보수로라도 억지로 불려 나가서 일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다. 어딘가엔 속해있다는 기분을 알 수 있게. 내가 쏟은 물은 내가 치울 수 있게. 하루하루가 불안과 무력감으로 흩어지고 있는 기분.
언젠가 다시 나갈 수 있겠지. 그곳이든. 어디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