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바라보는 가
남자(구명회)의 발걸음은 우아했다. 목적이 명확한 걸음은 그를 기다리는 한 무리의 곁으로 향한다. 유리벽에 가로막힌 그들의 소통은 함께 치킨집에 들어간 뒤에야 이어진다. 유력 정치인. 남자는 '소신 있는 정치인'이라는 포장 아래 정치 생명을 공고히 다지는 인물이었다. 그를 향해 이어지는 제안은 단순히 그의 명예 만을 보고 이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소신 있는 정치인의 이미지를 이용할 줄 아는 자였다. 자신을 찾아온 정치인들의 목적도 그들의 빙빙 도는 말속의 진심도 파악할 수 있는 사람.
문제는 그의 앞길에 예상치 못한 걸림돌이 하나 생긴 것이었다.
정치인들과 그의 '미래'를 논하는 동안 걸려온 전화. 그것은 그의 곧은 계획 속에 균열을 만든 커다란 오점이었다. 아들이 그의 차를 운전하고 나가 사고를 낸 것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사건을 '이성적'으로 파악해나간다. 아들에게 자수를 권고하며 어떻게든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애를 쓴다. 핏물이 가득 찬 차고 속 그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이성의 끈이 끊어질 것만 같다. 그는 아내를 타박하면서도 차고를 정리한다. 걸리적거리는 낙엽을 뽑아내는 것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구명회와 유중식이 마주한 '사건'에 집중한다. 유력 정치인이었던 구명회는 아들의 '자수'조차도 자신이 권한 것처럼 이용한다. 그는 정직하지만 불운하게도 아들로 인한 스캔들에 휘말린 아버지가 되었다. 대중이 치를 떠는 정치인들이라면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급급했을 텐데 그는 매체에 나와 고개를 숙인다. 모든 것은 자신의 잘못이며 유력했던 도지사 선거에서 사퇴할 생각까지 하고 있다는 말을 던지며.
중식은 어떠한가. 그는 온 인생을 자신의 아들 '유부남'에게 바쳤다. 그는 장애를 가진 아들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였으며 또한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는 한 인간이었다. 중식은 아들의 삶을 남들과 다르지 않게 '곧은길'로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 아들의 결혼은 그 첫걸음이었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아들의 싸늘한 시체, 그리고 사라져 버린 아들의 부인이다.
영화는 이제 사라져 버린 '련화'를 찾는 일에 몰두한다. 구명회와 중식은 같은 진실을 향해 쫓고 있지만 방향이 다르다. 구명회에게 중요한 것은 '련화'를 찾아 입을 막는 것이고 중식에게 중요한 것은 '련화'의 뱃속에 살아있을 어느 생명을 지켜내는 일이다.
구명회는 '우상'인 자신을 지키기 위해.
중식은 새로운 '우상'이 될 아이를 지키기 위해.
각자의 이유로 련화를 찾아낸다.
영화는 두 사람의 시선 중 하나에 집중하지 않는다. 또렷하게 들리지 않는 대사 너머 관객은 그들의 시선이 아닌 감독이 제시한 이미지의 '현재'를 마주한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진실 속에서 점차 영화는 '스릴러' 장르의 문법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영역을 향해 간다. 사건이 서사를 만들고 인물에 집중하여 이야기의 흐름을 좇는 것이 아닌 관객이 사건의 전체를 바라보고 두 인물을 '이미지'로 마주하는 전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련화의 등장으로 두 인물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맹목적인 '우상'에 갇히게 된다. 구명회는 진실을 알고 있을 련화를 납치하며 죽이려는 시도를 할 뿐 아니라 자신을 도와 련화를 찾은 남자를 죽여버린다. 그리고 그 차고에서 낙엽을 뽑아버렸던 것처럼 그는 살인의 흔적을 지워낸다.
반면 중식은 련화를 통해 구명회가 숨겼던 진실에 다가선다. 그러나 중식은 그 진실을 택하는 것이 아닌 련화의 뱃속에 살아있을 아이를 택한다. 진실을 밝혀 구명회를 추락시키는 것이 아닌 그의 편이 되어 '련화를 통해 살아남을 아이'를 지키는 쪽을 택한다. 그는 강단에 오르며 구명회를 지지한다. 그렇게 구명회는 대중의 맹목을 더욱 굳건히 다진다.
련화는 살아남기 위해 중식의 곁을 지킨다. 그토록 살고자 했던 그녀는 평범한 '현재'를 마주한다. 그녀가 버렸던 '과거'를 놓은 채. 그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휘두르던 칼날을 품에 안는다. 그러나 그녀가 살아 남기 위해 휘둘렀던 '과거'의 행적들이 다시 그녀의 숨통을 조여 온다.
결국 영화는 명회와 중식의 이야기를 거쳐 련화의 이야기로 나아간다. 련화는 그토록 현재를 가지기 위해 '과거'를 견뎌왔으나 결국 그 과거가 현재마저 망쳐버렸다. 자신을 죽이려 달려든 남자를 가까스로 죽였지만 그녀의 뱃속에 살아남았던 중식의 희망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중식은 그렇게 '새로운 우상'을 잃고 만다.
련화 역시 살고자 했던 '현재'를 마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명회는 새로운 신화를 통해 우상이 된다.
중식은 새로운 아이에게 희망을 걸었으나 결국 잃고 말았으며 그 충격으로 모두가 '우상'으로 여기는 이순신 동상을 테러한다. '구명회'를 홍보하는 선거 단복을 입은 채로. 련화는 명회에게 칼끝을 겨눈다. 중식도 자신도 놓쳐버린 '현재'를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그(구명회)에게.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구명회, 그리고 '우리'를 비추며 막을 내린다. 련화의 칼끝에서도 살아남은 구명회는 새로운 '신화'가 된다. 부정확한 발음. 알 수 없는 언어를 쏟아내는 그에게 사람들을 박수를 보낸다. 그의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의 언어가 전달되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 아니다. 그저 그의 '신화'를 '맹목'할 뿐이다.
무엇을 믿게 하느냐.
우상 아래 낙엽처럼 바스러진 중식과 련화를 넘어
'구명회'는 신화가 되었다.
- 우상, 이수진 감독, 한석규, 설경구, 천우희 주연.
- 브런치 무비 패스 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