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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모린 Aug 21. 2019

다시 쌓아갈 '우리'_우리집

다시 쌓으면 되는 거였다

  어두운 화면 너머로 아이의 숨소리가 들렸다. 조금씩 커졌다가 잦아드는 숨소리. 뒤이어 고함소리가 숨소리를 덮어 버렸다. 감정을 토해내는 부부의 목소리. 화면이 밝아지자 관객은 깨닫는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어느 아이. 감정을 꾹꾹 삼켜내는 아이가 바로 그 숨소리의 주인공인 하나라는 사실을 말이다.



  곤경에 빠진 사람을 지나치지 못하는 아이. 여느 아이들처럼 상을 받으면 기뻐하는 아이. 그리고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은 아이. 하나의 모습을 따라가던 영화는 서서히 '하나의 시선'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이내 깨닫게 된다.


아이의 간절한 소망은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니라
아빠와 엄마의 '화해'라는 사실을 말이다.



    바쁘다. 어른들의 입가에서는 익숙한 한마디가 흘러나온다. 아이의 체념을 기다리는 것처럼. 그러나 하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하나는 자신이 알지 못했던 어른들의 사정을 마주한다.


  '승진'을 위해 한국을 떠날 계획으로 고민하는 엄마와 다른 직원과 남몰래 외도를 하고 있는 아빠. 하나는 마주한 비밀을 자신도 모르게 소중한 상자에 담아버린다. 



  하나는 상자를 든 채 걷고 또 걷는다. 소중한 물건들 사이에 감춰둔 어른의 속사정을 아이는 감히 열어보지도 버리지도 못하며 전전긍긍한다. 그런 하나의 앞에 구세주처럼 두 아이가 나타난다.





  하나의 상자를 맡아주는 것을 계기로 세 아이는 '유미와 유진의 집'에 모여 함께하는 시간이 쌓여간다. 밥을 먹고 서로의 고민을 나누는 사이 세 아이에게는 변화가 찾아온다. 그저 어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유미와 유진이에게도, 가족이 다 함께 저녁을 먹는 일을 기다리던 하나에게도.


세 아이는 그렇게 '우리'가 되어간다.




  '우리'가 생긴 아이들은 행동하기 시작한다.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기다리지 않는다. 서로의 소망을 지켜주기 위해 바쁘게 무엇이든 함께 쌓아나간다. 유미와 유진이가 더 이상 '이사'가지 않도록. 하나의 '가족 여행'이 성공할 수 있도록.



  아이들은 새롭게 '우리 집'을 만든다. 상자와 상자를 엮어 추억과 마음을 쌓아 만든 '우리만의 집'. 작은 행동이 일으킨 변화에 기뻐하며 아이들은 더욱 서로에게 가까워진다.



  세 아이에게 시선을 맞춰 나아가던 영화는 다시금 '현실'을 비추기 시작한다. '우리 집'을 벗어난 아이들은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마주한다. 흔쾌히 가족 여행을 가겠다는 부모의 말에 기뻐하는 하나와 언제 이사 갈지 모르는 상황에 불안해지기 시작한 유미와 유진.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세 아이의
'우리 집'에도 균열이 생겨 버린다.



  하나는 기뻐했던 가족여행이 실은 '이혼을 앞둔' 부모의 마지막 여행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기대했던 소망이 무너지나 하나는 다시 세 사람의 '우리 집'으로 향한다.


  어떻게든, 유진이와 유미의 '소망' 만큼은 이루어주려는 것처럼 하나는 다급하고 다급해진다. 결국 집이 팔리는 일을 막기 위해 무작정 유미가 기억하는 '바닷가'로 향한다.



  무작정 떠난 세 아이는 위태롭게 흔들린다. 눈앞에서 부서져버린 가족여행처럼. 세 아이의 앞에는 '바다'만이 놓여 버린다. 그들이 기다리고 애타게 찾던 '부모의 일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하나가 그랬던 것처럼 유미 역시 절망한다. 애써 알면서도 모른척했던 '비밀'들이 서로의 입가에 떠오른다.



  분이 풀리지 않은 아이들은 끝끝내 소중히 가져왔던 '우리 집'을 부숴버린다. 그동안의 울분을 털어내려는 것처럼. 덕분에 아이들은 우리 집 너머의 '서로'를 마주하게 된다.



  어른 앞에서 그저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감정을 누르던 아이들이
 진정한 '우리' 안에서 마침내 감정을 토해낸 것이다.



  세 아이는 결국 제자리로 돌아간다. 영화는 담담히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세 아이를 비춘다.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은 것 같은 '유미와 유진의 집' 앞에서. 유미는 하나에게 외친다.     



이사 가도 언니는 계속 우리 언니 해줄 거지?



  하나 역시 집으로 돌아온다. 달라진 것 없는 집에서 늘 그렇듯 밥을 차린다. 가족이 함께 먹을 계란 프라이를 만들고 그릇에 밥을 담는다. 영화가 다 끝나가서야 식탁에 앉은 가족 앞에서 하나는 담담히 선언한다.


우리 밥 먹자. 밥 먹고 기운 내서 진짜 여행 준비해야지.



  오고 가는 고함소리 앞에서 감정을 삼켜내던 아이는 마침내 현실과 마주한다. 하나는, 세 아이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우리'는 무너져도 다시 쌓을 수 있을 테니까.  





- 영화 <우리집>, 윤가은 감독, 김나연, 김시아, 주예림 주연.

- 브런치 무비 패스 관람.

- 다시 쌓아갈 '우리 집'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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