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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모린 Apr 23. 2018

뭐가 어때?

배빗 콜 글 그림 / 내 멋대로 공주 시리즈

  사회에 익어갈수록 어려워지는 말이 있다. 뭐가 어때? 선명한 네 글자를 내뱉는 일에 고려할 것들이 늘어간다. 그렇게 다른 선택을 찾기 시작한다. 푹 익어버린 우리는 정해진 결을 따라 차선의 말들을 꺼낸다. '당신'이 다치지 않게. 어느 순간 그 한마디가 어색해진다. 흘러가는 데로 지나치는 데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제자리걸음에 익숙해진 우리는 타인이 원하는 자신을 맞춰간다. 거울 속에 '나'는 정말 자신인가. 취향이 사라진 우리는, 개성이 배제된 '나'는 그렇게 같아진다.

  

   공주가 있다. 우리는 익숙한 장면을 덧붙인다. 괴물에게 잡힌 공주와 그녀를 구출하는 왕자.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결론. 동화는 첫 장면부터 익숙한 것을 비껴간다. '내 멋대로 공주'이기 때문에.


내 멋대로 공주는 결혼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가씨로 지내는 게 좋았거든요.


  공주는 우리가 상상한 공주의 방을 당당히 밀어낸다. 편안한 바지 차림에 정돈되지 않은 방, 심지어 상상을 초월하는 애완동물들까지. 그녀는 자신에게 청혼하는 왕자들에게 관심이 없다. 그저 자신의 애완동물들과 함께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을 뿐이다.


너도 이제 나이가 꽉 찼으니 짐승들하고 그만 노닥거리고 어서 남편감이나 찾아라!


  왕비의 말에 공주는 자신이 시키는 일을 척척 해내는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답한다. 그러나 공주는 누구인가. 내 멋대로 공주이다. 공주는 자신의 일상을 그들에게 맡긴다. 공주가 키우는 거대한 애완동물(괴물)들에게 먹이를 주거나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자신보다 오래 춤을 춰야 하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지칠 때까지 함께 들판을 달려야 했다. 그녀가 그들에게 내리는 일은 '왕자'들이 상상한 일상과는 다른 것이었다. '왕자'들의 포기가 늘어갈수록 우리는 '뭐가 어때'라는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는 공주의 모습을 마주한다.


  작가는 공주를 통해 익숙한 장면을 깨부순다. 공주의 시험을 통과하면 결혼을 하게 된다는 어느 익숙한 줄거리를 비틀어버리는 것이다. 내 멋대로 공주의 세계 속에서 그녀는 선하는 인물이다. 결혼하고 싶지 '않은' 욕망을 가진 존재다. 더 이상 이야기의 결과물로 받쳐지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그녀는 여느 '공주'의 모습을 벗어난 한 사람의 '개인'일뿐이다.


  뺀질이 왕자의 등장으로 작가는 공주에게 위기를 안긴다. 독자 역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왕자들이 넘지 못했던 것들을 꾀를 통해 극복하는 '왕자'. 역시 공주는 공주답게 그 '왕자'와 결혼하게 되지 않을까?

공주는 하는 수 없이 왕자에게 마법의 뽀뽀를 했고
왕자는 엄청나게 커다랗고
울퉁불퉁한 두꺼비가 되었더래요!
그제야 뺀질이 왕자는 휑하니 가 버렸죠.

  공주는 동화의 아름다운 마무리에 등장할 법한 장면으로 그를 두꺼비로 만들어 버린다. 그는 그녀의 시험을 대부분 통과했지만 결국 '공주'의 마음을 얻지 못한 것이다. 꾀를 내어 공주의 코를 누르려는 그의 태도에 그녀가 마음을 열 리가 없었다. 두꺼비가 되어버린 왕자 덕분에 공주에게 결혼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사라진다. 공주는 그렇게 스스로 자신의 '욕망'을 지킨다. 시리즈 첫 권에서 그녀는 통쾌하게 '공주'를 얽매는 장면과 결론으로부터 탈주했다. 내 멋대로.



  다음 시리즈에서 공주는 학교에 가게 된다. 그것도 '우아한 공주를 만드는 학교'로 말이다. 공주가 아닌 '개인'으로 거듭난 그녀는 자의 일상을 벗어나 학교로 향한다. 모든 공주들이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곳에 그녀는 자신의 애완동물 '용'을 타고 나타난다. 덕분에 그녀를 제외한 모든 공주들이 흙탕물을 뒤집어쓴다. 곧장 그녀는 '요주의 인물'이 된다.


  머리 손질과 화장을 배우고 우아한 몸가짐과 패션 감각을 익힌다. 금발을 물레에 넣고 돌려서 그 머리를 붙들고 왕자가 올라오게 돕는다.


  우아한 '공주'를 만들기 위해 배우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비춘다. 타인에게 맞춰 자신을 가꾸는 일. 내 멋대로 공주를 제외한 다른 공주들은 하나 같이 그 시선을 따라 자신을 맞춰가고 있다.


  내 멋대로 공주는 홀로 자신의 방식으로 수업에 임한다. 덕분에 그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너 일부러 내 수업을 엉망으로 만들었지?
벌로 일주일 동안 지하 감옥에 가두겠다.


  교장은 그녀를 감옥에 가둬버린다. 자신이 재단한 '공주'의 기준에 그녀가 맞추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공주들은 감옥 속에서도 태연한 내 멋대로 공주를 바라본다. 내 멋대로 공주에게는 두려움이 없다. 그녀는 오히려 스스로의 힘으로 감옥을 탈출할 뿐이다. 공주들을 '공주'의 역할로 묶었던 시스템은 내 멋대로 인 '공주'를 통해 붕괴된다. 그녀의 모습을 지켜본 다른 공주들은 그제야 속으로 담아두었던 자신을 꺼낸다.


우리도 너처럼 멋진 공주가 되고 싶어.
얌전한 공주 노릇은 이제 질렸어.

  내 멋대로 공주는 공주들에게 자신만의 수업을 시작한다. 공주는 왕자를 기다려야만 한다는 원칙을 파괴한다. 왕국을 직접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강한 힘을 키우기 위해 짐승(괴물)을 데리고 다녀야 한다고 소개한다. 왕자와의 결혼을 통해 해결되던 '결말'들에 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어쩌면 사회가, 시스템이 만든 그 길을 전부라 여기고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법 지팡이로 교장까지 물리친 그녀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한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건 제5장, 모든 규칙을 깬다.

  뭐가 어때? 한 마디가 가진 힘을 우리는 알고 있다. 공고한 시스템 사이에서 우리는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세뇌받는다. 과연 그것을 따르겠다고 판단한 우리는 '스스로'의 결론을 내린 것일까. 시스템 앞에서 우리는 뭐가 어때를 바라봐야 할 것이다. 모든 규칙을 깨기 위해.


 

-『내 멋대로 공주』, 배빗 콜 글·그림, 노은정 옮김, 비룡소

- 『내 멋대로 공주 학교에 가다』, 배빗 콜 글·그림, 이경혜 옮김, 살림어린이

- 당신 '자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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