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생각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태복음 7:12)
처음 이 구절을 읽었을 때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계속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 구절이 눈에서 머리로 그리고 가슴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내가 대접을 받고 싶은 대로, 내가 대접을 받고 싶은 그 방법대로, 내가 원하고 나의 취향과 나의 기분과 내가 익숙한 그 느낌대로,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그 사람이 받고 싶은 대로, 그 사람이 원하는 방법으로, 그 사람의 취향과 기분과 익숙한 그 느낌으로 섬기는 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의 원하는 방식과 취향과 기분과 그 느낌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은 그 사람과 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고, 그 관계 속에서 그 사람을 알아가는 시간과 노력과 관심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이 구절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나 나와 상관이 없는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구절은 아닌 것 같다. 도리어 어쩌면 그 사람을 너무 잘 아는 사람, 너무 잘 알아서 어쩌면 그렇게 해주기 싫은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화평한 관계를 위해 의지를 들여 자신을 움직여야만 가능한 구절이다.
누가복음을 보면 이 구절에 대한 이런 해석이 더 그럴듯하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 하는 자만을 선대 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 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누가복음 6:31-35)
나를 사랑하지 않는 자, 나를 선대 하지 않는 자, 나에게 전혀 갚을 수 있는 능력이나 이득 될 것이 전혀 없는 자, 나의 원수인 자 그런 사람이 감동할 만큼 그 사람의 필요와 그 사람의 성향과 그 사람이 좋아하는 그 방법대로 그 사람을 대접할 때 그 사람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어쩌면 이 황금률은 내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동기로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 주님의 명령을 어떻게 실천할까에 대한 실제적인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예시를 주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