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공부시키는 남편
사실 아내를 공부시킬 때 그렇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힘든 이민생활 속에서 맞벌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기에 다른 이민 선배들이 후회하지 말고 공부하라는 말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아내에게 공부를 권유했다. 육아를 병행해 가면서 하는 공부인지라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떻게 꾸역꾸역 IELTS 점수를 만들고 맛보기로 MIT(Manukau Institute Technology)에서 레벨 5 디플로마 비즈니스 과정을 졸업하고, AUT출신 교수가 이왕이면 AUT에 가서 회계과목을 들으면 어떻겠냐고 추천을 해서 AUT에 입학, 결국 그 힘든 시험을 PASS 한 후에 졸업을 하게 되었다.
졸업하기 전에 직장을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구직활동을 했지만 경력이 전무한 아내를 받아주는 회사는 없었고 그래서 결국 아내가 선택한 것은 근처 대형슈퍼마켓의 정육코너 직원으로 취직하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고기 그리고 부위별 영어 이름, 각 이름마다 부여된 바코드 번호를 외워서 가격을 책정하고 유통기한이 가까운 고기는 가격을 낮추어 직원들이 집으로 가져오는데 덕분에 고기는 참 많이 먹었다.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구직활동을 한 결과 아내는 풀타임으로 결국 작은 건축회사의 경리직원으로 취직을 한다. 비록 6개월 단기 계약직이었지만 그 안에서 부족한 영어로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겪으며 기본 회계업무를 다 익혔다.
이제 6개월이 지난 지금 다시 구직을 한 결과 나름 뉴질랜드의 대기업이라 하는 Big Chill, 냉동트럭회사의 정규직(permanent role) 회계 팀원의 일원으로 이직에 성공했다. 참 대견하고 대단하다!
돌아보니 온 가족이 고생한 것 같다. 아내가 참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아내를 잘 외조한 나도 자랑스럽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잘 커주는 우리 아이들이 자랑스럽다. 이렇게 다시 뉴질랜드 이민의 삶의 또 다른 챕터가 우리 가정에 열리고 있다.
영주권이 끝이 아니라는 어떤 이민선배의 말과 같이 신분문제 후 경제문제를 해결하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다. 아직도 멀었지만 더 큰 꿈을 꿀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