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매니저는 전화로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One of the reasons we decided not to move forward with your application is that your English proficiency did not meet the level required for this role."
그렇다. 결국 이유는 영어였다. 원래 영어가 부족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다른 것은 다 괜찮은데 영어 때문에 망설여진다는 확인사살은 아내의 자존감을 더 바닥 치게 했다. 슬픈 마음을 추스르고 삶은 또 살아가야 하기에 아내는 충격은 받았지만 그래도 다시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밑져야 본전이니 이때부터 아내는 안될 것 같은 곳도 이력서를 마구잡이로 넣기 시작했다. 연락이 오는 곳도 있었고 오지 않는 곳도 있었다. 그러다가 한 번은 중국회사에서 면접을 보자고 연락이 왔다. 중국회사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는 모든 사원이 다 중국인이기 때문이다. 업무 이메일은 영어로 하지만 나머지 모든 소통은 다 중국어로 한다.
Door to door로 돌린 이력서를 보고 연락이 온 곳도 있었다. 부동산 회사인데 그곳은 인도인들이 대부분의 사원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계약서를 주지도 않고 갑자기 오늘부터 일하라는 통보를 받고 뭔가 분위기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계약서를 먼저 보내주면 일을 시작하겠다는 이메일을 보낸 후에 연락이 지금까지 없다.
어떤 키위부부가 운영하는 회사가 있었는데, 인터뷰 분위기가 좋았지만 역시 결과는 낙방이었다. 이때부터 아내는 분위기 좋은 인터뷰를 믿지 않게 되었다. 사유는 너무 경력이 좋아서 자기 회사에 포지션은 그런 좋은 경력은 필요 없다는 이유였다.
계속되는 화상인터뷰, 전화인터뷰, 대면인터뷰 그렇게 인터뷰에 인터뷰를 반복하는데 아내는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다. 뻔뻔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떨지 않고 결과에 상관없이 있는 척하지 않고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오픈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좋게 보는 사람도 있었고 좋지 않게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미지 관리의 가면을 벗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수많은 낙방의 경험 가운데 찾게 된 것이었다.
뉴질랜드 하우징 6주간의 계약직이 끝날 때 즈음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다. 일도 펑크 안 내게 잘하고 매니저와 사이도 좋아서 혹시나 정규직으로 바꿔주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것은 그저 아내의 바람일 뿐 현실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계속 이력서를 넣고 낙방하고 인터뷰 보러 가는 반복의 삶에 두 번 떨어진 회사가 또 다른 포지션으로 구인광고를 냈다. 아내는 다시 그 회사에 지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