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상.담.실
승합차 앞에서 아이들 모두가 티격태격합니다. 뒷자리보다는 가운데 자리에, 가운데보다는 조수석에 앉으려 신경전을 벌이는 아이들. 조금 우습지만 앞자리에 앉겠다는 아이들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키가 크다(그럭저럭 납득), 공부를 잘한다(납득 안 됨), 얼굴이 잘났다(뭐니?)... 간혹 우는 아이도 생깁니다. 처음에는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앉았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같은 시간에 오는 게 아니라서 순서가 뒤섞여버립니다. 이번에는 작심하고 안면 경직한 채 강제적으로 자리를 정해주었습니다. 집에 가는 내내 룸미러에 비친 아이들의 표정이 저보다 딱딱합니다. 고민 끝에 제일 멀리 가는 순으로 자리를 채워 앉기로 했습니다. 불만은 여전했지만 자리가 비면 앞으로 당겨 앉는 걸로 긴 협상의 접점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조수석이었습니다. 자리가 좁다 보니 그 자리는 늘 형 누나들의 차지였는데, 그날은 그 형 누나들이 순번을 둘러싸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애나 어른이나 늘 자리가 문제입니다.
그 모양을 보고 있자니 흐린 하늘 아래 양 어깨의 승모근이 딱딱하게 뭉쳐왔습니다.
아무도 앉지 마!
엄포를 놓고는 조수석 의자를 접어버립니다. 항상 아이들 떠드는 소리로 차 안이 포화상태였는데 꽉 찬 자리임에도 그르렁거리는 엔진 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립니다. 산 너머로 떨어지는 햇살이 아이들 얼굴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마지막 내릴 아이가 잠든 건지 자는 체하는지 뒷자리에 누워 인기척이 없습니다. 집을 지나쳐 큰 나무 아래에 차를 세웠습니다.
집까지 같이 가자.
아이가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듭니다. 해 떨어진 찬 공기 속을 걸으며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그래도 나란히 걷는 아이의 표정은 변함이 없습니다. 늘 크게 거수경례를 하며 집으로 들어갔던 아이인데 그냥 휙 들어가 버립니다. 인내의 시간은 쓰디쓴 약처럼 몸속에서 달여지고 쥐어짜 지며 즙을 냅니다. 몸에 이롭지만, 아픔은 깊습니다. 그래도 이 쓴 물을 들이켜야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진짜 선생님이 될 거란 생각을 합니다. 왕자를 만나기 위해 마녀의 약을 마신 인어공주처럼.
차로 돌아와 아이의 집 앞을 지나치는데 아이가 대문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불쑥 내민 봉지 하나. 헛개나무 열매 즙이라 했습니다. 아이가 건넨 달짝지근한 액체가 오는 내내 체증처럼 쌓인 감정을 씻어내립니다.
예, 늘 있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