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10)

소설로 부르는 고려속요

by 휴헌 간호윤

10장. 얼음 위에 댓잎자리 보아 님과 나와 얼어죽을망정


“돌아! 암만 말해도 안 들으니, 달님이도 그렇지만, 너도 참 성질머리하고는. 왼고개만 틀고 앉았으니 어쩌려고 그러냐. 하루하루를 그렇게 엄부렁덤부렁 묵새기며 지내다 땅보탬이나 할테냐. 잉. 그래도 너는 종 9품 대정(隊正, 지금으로 치면 소위 정도의 무관 계급) 아니냐.”

요즈음 들어 곰이의 말은 갈래며 조리가 제법이다. 곰이가 말렸지만 돌이는 뿌리치고 퉁명스럽게,

“달님이는 여악(女樂)이 되었구, 엄니는 죽구, 꽃님이 언니는…달님이는 말이 좋아 궁궐의 여악이지 기생의 신분과 다를 바 없잖아.…. 대정 그 까짓게 무슨 벼슬이라고 뭔 개힘이라도 나는 줄 아나봐.”

라고 대꾸하며 나왔다.

돌이는 몽니를 부리는 것을 알면서도 더 이상 제가 살 세상은 이 나라에 없는 듯 했다. 어쩌다 임유무의 눈에 띄어 대정이란 하급무관 벼슬아치가 되었다지만, 그저 녹사(綠事)ᄡ글 정도가 아닌가. 모두 저희들의 앞잡이로 세우려는 것뿐이었다. 돌이는 생각에 생각을 끊임없이 하였지만 의지가지없는 저로서는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죽이 아저씨가 말한 힘을 일연 스님의 글에서 찾으려 했으나 아니었다. 임연의 권력에서 찾으려하였으나 백성에게 세금이나 갈취하고 권력의 앞잡이에 지나지 않았다.

돌이는 기생집에서 달님이 노래를 듣고 바로 찾아가려 했으나 임연 도방에 매인 신세로 짬 내기가 쉽지 않았다. 거기다 하급무관이 되니 더욱 일만 분주하였다. 근 반 년이 넘어서야 겨우 곰이가 찾아 갔을 때 이미 달님이는 기생집에 없었다. 그 뒤 몇 번이나 기생어미에게 뇌물을 넣고야 달님이가 웬 여인과 함께 잠시 머물다가 지금은 궁중 여악 관현방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알았다. 달님이와 함께 있는 여인이 꽃님이라는 심증은 가나 그도 그뿐이었다. 임연의 도방에서 일개 하급무관이 막 된 돌이로서는 달님이가 있는 궁궐의 여악대에 접근할 수 없었다.


시나브로 시간이 흐르면서 만날 수 있다는 돌이의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그래 오늘은 도방일을 하고 받은 삯으로 기생집을 찾았다. 기생집은 초저녁인데도 노랫소리가 드높았다. 하기야 이 고려는 지방 관아에도 기생들이 있으니 방방곡곡 어딘들 노랫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

돌이가 기생과 앉았다. 기생에게선 사향 냄새가 풍겼다. 방안은 구슬발이 늘어졌고 휘장이 화려하였다. 빗접걸이 옆에 나란히 놓인 나무를 깎아 만든 오리 한 쌍이 눈에 들어왔다. 기생은 푸른빛의 넓은 허리띠를 띠고, 채색 끈에 금방울을 달고, 붉은 비단옷에 붉고 검은 비단으로 만든 향낭을 찼다. 초저녁부터 이미 얼굴은 술기로 발그레하였다. 달님이에 비견할 만한 미모는 아니나 동글납작한 얼굴에 가무레한 속눈썹하며 나부죽한 몸맵시도 얌전한 것이 남정네 눈길을 넉넉히 당길만한 여인이었다. 멋쩍어 엉거주춤 앉아있는 돌이에게 잠시 눈길을 준 여인은 곧 분결같은 손으로 잔을 끌어 술 한 잔을 쳐주더니 발그레한 얼굴보다 더 붉은 입을 열어 노래를 불렀다.


얼음 위에 댓잎자리 보아 님과 나와 얼어 죽을망정

얼음 위에 댓잎자리 보아 님과 나와 얼어 죽을망정

정을 둔 오늘 밤 더디 새워주세요 더디 새워주세요 <만전춘 별사> 1연


이리뒤척 저리뒤척 외로운 침상에 어찌 잠이 오리오

여인의 창을 열으니 복숭아꽃이 폈도다

복숭아꽃은 시름없이 봄바람에 웃는구나 봄바람에 웃는구나 <만전춘 별사> 2연



잔에 다시 술을 치느라 기생의 노래가 잠시 끊어졌다. 돌이는 물러진 마음을 둘 곳이 없어 기생집을 찾기는 하였으나 처음인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맨숭맨숭하니 멋쩍어 술병을 만지작하다 술병에 써 놓은 글을 보았다.


들으니 도성의 술은 聞道城都酒

돈이 없어도 구한다던데, 無錢亦可求

알려나 몇 말의 술을 먹어야 焉知將幾斛

저절로 오는 근심이 풀어지려나 消得自來愁

……


돌이가 술병을 들고 하는 양을 보더니 기생이 곱게 눈을 흘기며 말한다.

“뭘 읽으시오? 글자를 아시오?”

돌이는 건성으로 답했다.

“아니오. 그냥…”

그리고는 ‘이걸 먹으면 달님이 생각이 없어질까?’하여 술을 연거푸 몇 잔 먹었다. 술기운이 돌이의 몸을 돌 때쯤 기생의 이름이 무비(無比)임을 알았다.

“그래, 무비는 어떻게 이곳에 왔소?”

몇 잔 술에 얼굴이 벌건 애송이 무관의 엉뚱한 질문에 무비가 곱게 눈 흘겨 빗기 뜨고 입을 비쭉였다.

“그러는 애송이 무관은 어찌 이런 곳에 온 게요. 세상을 살다보면 생채기 한 두 개쯤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 두견이 목을 빌고 소쩍이 사설을 꾸어 온대도 다 말 못 하니 더 이상 묻지 마오.”

무비는 말을 끊고는 가만히 있더니,

“나도 사랑하는 가족도 임도 있었다오. 봄바람에 웃었던 복사꽃처럼 하릴없이 모두 사라지고 없지만. 괜히 내 맘을 발기집지 말고 내 노래나 마저 들으시오.”

라며 다시 노래를 하였다.



넋이라도 님과 한 곳에 살아가리라 여겼더니

넋이라도 님과 한 곳에 살아가리라 여겼더니

우기시던 사람이 누구입니까 누구입니까 <만전춘 별사> 3연


무비가 감정에 복받치는지, 다시 한 연을 부른 다음에 조용히 눈물을 떨군다. 무비의 한 줄기 노랫가락은 그대로 한 줄기 눈물이었다. 무비는 술 한 잔 따라 달라했다. 무비는 가득 찬 술잔을 얼마간 내려다보며 달막달막 입술을 열듯 말 듯 하더니 속내를 조심스럽게 보였다.

“몇 해 전 오늘, 그 사람이 갔지요. 그대처럼 막 무관이 된 지 한 달도 채 못 되었다오. 난 그 사람을 사랑했고 그렇기에 믿었다오. 그러니 그 사람과 함께라면 어름 위에 댓잎 자리를 깔고 얼어 죽은들 어떻겠소. 그러나 그 사람은 한번 간 뒤로 몇 번이고 복사꽃이 폈어도 돌아오지 않았다오. 죽는다면 넋이라도 함께 살자고 그렇게 우기더니, 넋은커녕. 여린 비오리가 늪을 찾아도 어쩌지 못하는 처지가 돼버렸소.”

무비의 목소리가 귀에서 고향의 풀벌레처럼 울어댔다. 돌이는 무비의 눈길을 외면하며,

“그래, 소식은 들으셨소.”

라고 하였다.

“웬 걸요. 소식은 무슨. …몽고군과 전쟁하러 나갔으니 죽었겠지요. 그러니 이 앙가슴에 담긴 슬픔을 노래로 풀 수밖에 없잖소. 더구나 오늘은 기생어미의 타박이 어찌나 심한지. 그렇잖아도 엊그제가 아부지 기제이고 하여 마음이 아픈데, 그쪽이 내 속을 어찌 알고 이다지도 괴로이 한단 말이오. 그러니 ‘갈래 없이 흐르는 게 기생 정’이라고 너무 타박 마시오. 다 이러저러한 사연이 있는 법 아니오. 그건 그렇고 애송이 무관께서는 이 노래의 여울과 늪을 잘 생각해 보시오.”


그러고 무비는 다시 옷매무새를 가다듬더니 뒷 구절을 이었다.


오리야 오리야 얼룩 비오리야

여울일랑 어디 두고 늪에 자러 오니

늪이 얼면 여울도 좋아요 여울도 좋아요 <만전춘 별사> 4연


남산(南山)에 자리 보아 옥산(玉山)을 베고 누워

금수산(錦繡山) 이불 안에 사향(麝香)각시 안고 누워

약(藥) 든 가슴을 맞춥시다 맞춥시다

아아! 님이여! 영원토록 이별할 줄 모릅시다 <만전춘 별사> 5연


술 향과 함께 나온 무비의 노래가 돌이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노래를 마친 무비가 제 잔을 돌이에게 쑥 내 밀며 어느새 반쯤은 꼬인 혀로 말 줄기를 가다듬었다.

“이 노래에서 여울과 늪이 무엇을 말하는지 아시겠소? 이 애송이 무관님아! 기생은 봄날의 꽃이요, 그렇지요?”

돌이가 무슨 소리인지 멀뚱하니 있다가 “예”라고 하자 무비가 코를 생긋이 웃더니 눈을 곱게 흘겼다.

“이 무관님 좀 봐. 뭐가 ‘예’에요. 우리 기생을 길가의 버들이요, 담 밑의 꽃이라며 막 꺾으려들지. 천만의 말씀. 꽃은 꽃이로되 꽃동산에 보이지 않고 피는 꽃 무화과인걸. 어디 무화과가 꽃을 피운들 볼 수 있나요? 무화과 잎겨드랑이에 붙은 화서 속에 꽃이 들어가 꼭꼭 숨어 있는걸. 아무나 보지 못하는데도…겉으로 웃은 들 웃는 게 아니라 이 말이지요. 우리 웃음은 그렇게 꼭꼭 숨겨져 있단 말이요. 그러고 무관님도 내일이면 여울로 갈 것을. 아시겠소. 이, 애송이 무관님아!”

무비의 볼을 타고 발그레한 눈물이 듣거니맺거니 방울져 떨어졌다.



언젠가부터 무비의 술잔에도 돌이의 술잔에도 휘영청 보름달이 영창으로 들어와 우두커니 앉았다.

돌이는 듣거니 맺거니하는 무비의 눈물 속에서 달님이를 보았다. 아니, 무비가 달님이로 보였다. 가만 보니 꽃님이 언니 같기도 하였다. 그래 달님이와 이야기를 하다, 꽃님이 언니와 이야기를 하다가, 한없이 가여운 무비와 이야기를 하였다. 밤은 깊고 멀리서 우는 뻐꾸기 소리만 들렸다. 지금까지 견뎌왔던 떡심이 와르르 풀려 내렸다.

“컹! 컹! 컹!”

밖에서 동이는 계속 짖어댔다.

누군가 부르는 <처용가>의 슬픈 노래가 영창으로 비친 달빛을 타고 지나갔다.


서울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니다가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가랑이가 넷이도다.

둘은 나의 것이었고

둘은 누구의 것인가?

본디 내 것이지마는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오? <처용가>


생각해 보니 이 노래는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에 꼭 넣어야겠다고 한 노래였다. 돌이는 그러고 보니 스님께선 평안하신지도 궁금하다. 돌이는 저도 모르게,

“나에게 많은 삶을 넣어 준 분인데…”

라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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