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11)

소설로 부르는 고려속요

by 휴헌 간호윤

11장. 징아! 돌아! 지금 계십니다


삼장사에 불을 켜러 갔더니만

그 절 지주 내 손목을 쥐었어요.

이 소문이 이 절 밖에 나며 들며 하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 상좌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 같이 더ᇝ거츠니 없다.


술 파는 집에 술을 사러 갔더니만

그 집 아비 내 손목을 쥐었어요.

이 소문이 이 집 밖에 나며 들며 하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시궁 박아지야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 같이 더ᇝ거츠니 없…. <쌍화점>


‘참 노래는 빠르게 전파된다. 이젠 이곳 아이들까지 저 노래를 부르고 다닌다. 하기야 저 노래처럼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달님이는 이 <쌍화점>만 들으면 슬픔이 딸꾹질처럼 일어났다. 달님이는 이런 생각을 떨치기라도 하듯 고개를 홰홰 저으며 꽃님이 언니에게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언니 어서 가자.”

달님이는 사실 마음도 졸았다. 달님이는 지금 강화 궁궐의 경시서에 속한 여기(女妓)이다. 새로 경시사에 들어 온 무비라는 기생과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다 돌이와 곰이 언니가 임연의 도방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궁중에서 말미를 얻어 나오기는 쉽지 않았다. 행수기녀에게 사정사정을 하여 겨우 하루 말미를 얻어 나온 것이 돌이 소식을 들은 지 이미 석 달이나 지나서였다. 어제 미리 사람을 사서 곰이 언니에게 오늘 간다고 기별을 넣기는 했지만, 만날지 못 만날지 몰라 애가 탄다.



관리들은 노래와 여색으로 환심을 사려 애썼다. 김준은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김준은죽이 아저씨가 오지 않고 달님이의 자색을 보자 생각을 바꾸었다. 김준은 죽이 아저씨가 이미 뱃삯과 뱃사공 값을 지불하였다는 것을 숨겼다. 그러고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 달님이를 기생으로 만들려했다. 결국 달님이는 꽃님이와 함께 있는다는 조건을 붙이고 기생이 되었다. 김준은 달님이에게 잠시 기생집에 머물며 가무를 배우게 한 후, 추천을 하는 방법으로 궁궐여기(女伎)로 들어앉혔다.

달님이가 궁궐에 들어와 보니 여기뿐만이 아니고 줄타기, 재주넘기 등등 각종 곡예를 하는 광대도 수백 명이었다.

달님이는 비로소 저들이 뱃사공이 말하던 궁궐의 광대임을 알았다. 압록강에서 달님이와 꽃님이를 이곳까지 데려다 준 뱃사공이 한때 죽이 아저씨가 궁궐 광대무리에 속해 있었다고 귀띔해주었다. 뱃사공은 죽이 아저씨가 단도를 잘 던지고 택껸의 고수여서 이를 눈여겨 본 김준이 도방의 책임자로 쓰려 했는데 거절하여 미움을 받아 무리에서 쫓겨 난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달님이는 경력이 짧아 대악사에는 못 들고 관현방에 속했다. 관현방(管絃坊)에 들어와보니 이곳은 꿈같은 세계였다. 기생이 조금이라도 모자라면 왕이 총애하는 행신들을 각 도에 보내 관기로서 인물과 재예가 있는 자를 뽑았다. 또 도성 안의 관비나 무당 중에서 노래와 춤을 잘 추는 여인을 선발하였다. 놀이라도 있는 날이면 채색 비단으로 장막을 치고는 관현방과 대악서에 채색된 누각무대를 세우고 여러 가지 놀이를 베풀어 왕과 재상들을 맞았다.

그러고는 이 여기들에게 비단옷을 입히고 말총모자를 씌워 따로 한 떼를 만들어 ‘남장별대(男粧別隊)’라 부르고, 새 음악을 가르쳤다. 그 음악이 지금 아이들이 부르는 저 <쌍화점>이다. 궁중에서 부르는 노래는 민간에서 채집하여 악공과 관리들이 머리를 맞대어 편곡을 하였으니 민요에 들어있는 감정이 제대로 살아있을 리 없었다.


“꽃님이 언니! 가자.”

달님이는 멍하니 아이들 노래를 듣고 있는 꽃님이의 소매를 끌었다.

얼마 후, 달님이와 꽃님이는 동구 밖 나무아래서 기다리던 곰이를 만났다. 곰이는 멀찍이서 달님이와 꽃님이 모습이 보이자마자 펄쩍펄쩍 뛰며 달려왔다.

“달님아!”

“곰이 언니!”

“꽃님아! 이게 얼마 만이냐?”

“곰이 언니! 잘 있었어. 어디 봐. 어디 아픈 데는 없고.”

달님이는 목이 메었다. 겨우 한 해만인데, 달님이 생각보다 곰이는 많이 어른스러웠다. 전에 보이던 그런 장난끼는 더 이상 곰이 얼굴에 없었다.

“그런데 돌이는? 돌이는 안 나왔어?”

꽃님이도 돌이를 찾았다.

“돌이! 돌이는?”

곰이가 손사래를 쳤다.

“에이! 말도 마라. 말도 마. 달님아! 네가 좀 이해해라 잉. 네가 기생이 된 것을 안 뒤부터 돌이는 정신을 못 차린다. 어제는 어디서 그렇게 먹었는지. 여하간 오늘 네가 온다는 것도 모른다. 너 마중 나올 때도 자고 있었으니까. 얘기할 틈도 없었지. 여하튼 그 이야기는 가면서 하자. 어여 가자.”

달님이는 곰이에게 떡전거리의 이야기를 듣고는 목을 놓았다. 꽃님이도 따라 서럽게 울었다.

곰이는 이야기 끝자락을,

“세상사가 왜 이리도 힘들고 가혹한지.…”

라며 “휴우!”하고 긴 한숨을 뱉었다.

돌이와 곰이는 마침 객줏집을 하나 얻어서 묵고 있었다. 돌이가 묵는다는 객줏집은 동네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임연이 무슨 일인가를 꾀하려고 정탐을 시켜서라고 하였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곰이가 ‘김준이 운운’하는 것으로 보아 무엇인가 임연이 무슨 일을 꾸미려는 듯했다. 곰이 언니와 돌이 둘만 객줏집에 묵어 비교적 행동은 자유스러운 듯했다.

“달님아! 네가 이해하라. 알았지. 돌이도 괴로워 그런 것이니까. 알았지.”

곰이는 미리 다짐이라도 받으려는 듯 달님이에게 몇 번을 말했다.


“컹! 컹!”

달님이와 꽃님이를 먼저 반긴 것은 동이었다. 동이는 꽃님이와 달님이 치마폭을 물고는 펄쩍펄쩍 뛰었다. 꽃님이는 돌이라도 만난 듯 와락 동이를 끌어안았다.

“동이야! 너 동이로구나!”

“컹! 컹!”

이리 야단을 떠는 데도 돌이가 있다는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곰이가 방문을 열자 역한 술 냄새가 먼저 맞았다. 돌이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누워 있었다.

“돌이! 돌이!”

“돌이야! 돌이야!”

돌이는 달님이와 꽃님이가 흔들어대자 귀찮다는 듯이 손을 이리저리 휘휘 흔들었다. 그러더니 병든 사람처럼 개신개신 일어났으나 눈은 그대로 감고 벽에 기대있을 뿐이었다. 보다 못한 곰이가 큰소리쳤다.

“달님이 왔다! 달님이! 꽃님이도!”

돌이는 그제야 눈을 떴다. 잠시 멍하니 달님이와 꽃님이를 번갈아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그 제서야 덥석 꽃님이의 손을 잡았다. 그러더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멀뚱하니 달님이와 곰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곰이는 그런 돌이를 보며 괜스레 달님이와 꽃님이에게 미안하였다. 마치 제가 돌이를 잘 보살피지 못해서인 듯하였다. 곰이는 손거스러미를 뜯적뜯적하다가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너 술 먹으러 나가고, 어제 늦게 기별을 받았어. 승질머리하고는, 참. 가을도 아닌데, 웬 술을 그리 먹었는지 감냄새나 물씬 풍기고. 잘한다. 잘해! 너 저 선월사에서 일연 시님에게 글 배울 때 생각 안 나니? 너 그때 지눌 스님의 말씀이라고 하며, 뭐라 했니? ‘땅에서 넘어진 놈, 땅 짚고 일어서야한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더니. 정신 좀 차려.”


곰이가 설레발을 치면서 물 한 대접을 떠 와서는 돌이에게 건네며 조갈증이 일 것이니 먹으라고 하였다. 돌이는 그때야 정신이 드는지 불콰한 얼굴로 물을 받아 마시더니, 반쯤 돌아앉아서는 달님이와 꽃님이를 애써 외면을 한다.

달님이가 반눈으로 곱게 흘기고 돌이에게 바짝 다가앉았다.

“돌이! 나 좀 봐. 나 좀 보라니까. 여기까지 오며 곰이 언니에게 다 들었어. 나는 떡전거리에 있던 달님이 그대로야.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

“돌이야! 돌이야!”

꽃님이도 그런 돌이가 야속한지 눈물을 글썽거리며 돌이의 팔을 잡았다.

“돌이! 응! 나 좀 봐. 생각은 있어도 말이 없으면 무정함과 무엇이 달라. 나 그냥 가? 그러니 말 좀 해봐.”

그러자 입술만 달싹이던 돌이가 생파리 잡아떼듯 반 토막 말을 던졌다.

“가! 듣기 싫어. 꽃님이 언니는 내가 챙길 테니 여기 두고.”

그러더니 다시 반쯤 외면하고는 말했다.

“흥! 그러고 보니 꽃님이 언니가 귀찮아서 나에게 데려 온 거구나. 달님이는 그 권세 높은 김준(金俊?~1268)이에게 가 부귀영화나 누리렴. 김준이가 그렇게 권력가라며.”

돌이는 이제 눈길을 아예 담벼락에 꼭하니 박는다. 술기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돌이의 벌건 눈은 더욱 붉고 목소리는 잔뜩 구겨졌다.

달님이는 어이가 없었다. 달님이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았다.

“돌이! 왜 그런 옥생각을 해. 내 가슴이 무슨 칼집이야. 왜 비수를 꽂아. 그러지 마. 지금 내가 김준이에게 붙어 있는 것은 다 까닭이 있어. 지금 김준은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세도가야. 나도 지금 허리에 중동끈 잔뜩 조르고 마음을 도스르고 사는 거야. 내가 김준의 말을 듣지 않으면 나도 꽃님이 언니도 어떻게 될지 몰라. 그러고 돌이, 곰이 언니도 모두 위험에 빠지고 말아. 그러니 돌이! 나를 좀 봐. 응.”

달님이 말이 좀 야박하고 강팔라서인지, 아니면 정말 샐쭉해질까 염려해서인지, 그제야 돌이가 벽에 몸을 기대고는 달님이를 쳐다보았다. 꽃님이는 무릎걸음으로 바짝 다가와 돌이의 얼굴을 말끄러미 쳐다보았다. 돌이는 그런 꽃님이 언니의 어깨가 참으로 여리고 가냘파 보였다. 돌이는 울컥하는 마음에 덥석 꽃님이 언니의 손을 잡았다. 꽃님이 손에서 무엇인가 잡혔다.


돌이가 꽃님이의 손바닥을 펴보니 부러진 비녀 두 개였다.

돌이가 의아스런 눈으로 달님이를 쳐다보았다.

“응, 그거 하나는 죽이 아저씨가 준거야.”

“뭐? 죽이 아저씨가? 죽이 아저씨가 이것을 어디서 나서? 죽이 아저씨를 만났어. 어디서?”

돌이는 온전히 정신이 드는 지 몸을 하며 물었다.

“그래, 그 이야기부터 좀 해야겠어. 죽이 아저씨에게 무슨 까닭수가 있는 듯싶어. 그러니 정신 좀 차리고 내 말 잘 들어 봐. 돌이!”

달님이는 그동안 몽고군에게 끌려간 것하며 압록강을 넘기 직전에 죽이 아저씨를 만난 이야기를 죽 하였다.

“그래, 그렇게 하여, 뱃사공들과 함께 강화에 도착한 곳이 김준의 집이었어. 죽이 아저씨가 우리를 구출하러 데려온 뱃사공과 배가 바로 김준이 마련해준 것이었어. 뱃사공에게 들었지만 김준이 예전부터 죽이 아저씨의 재주가 좋아 제 편으로 끌어들이려 했다는 거야. 그때 죽이 아저씨는 궁궐 광대무리에 속해 있었고. 그런데 죽이 아저씨가 협력하지 않자 내쫓았대. 그 뒤 죽이 아저씨가 광대패가 되었고 다시 광대패의 모가비가 되서도 협력하지 않다가 우리를 구하려고 김준을 찾아가 배와 사람을 구한 것이지. 그런데 일이 틀어져 죽이 아저씨가 오지 않으니 김준이 나와 꽃님이 언니를 대신 잡아 둔거야. 물론 죽이 아저씨가 배와 뱃사공 삯은 치른 것을 뱃사공에게 들어 알고 있었지만 김준은 시치미 떼고 죽이 아저씨가 와서 갚아준다고 하였다면서. 그러고는 꽃님이 언니와 나를 팔아버리겠다고 겁박한 거야. 나는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어.….”

돌이가 말중동을 자르고 들어왔다.

“그렇다고 기생이 돼.”

“돌이! 골낼 일이 아니야. 그런 말 마! 일단 생목숨을 그냥 떼일 순 없잖아. 죽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어. 내가 기생이라도 하기에 꽃님이 언니도 함께할 수 있는 거야. 더욱이 우리 둘 목숨은 죽이 아저씨 목숨과 바꾼 거잖아. 서로 온종일 물끄럼말끄럼 쳐다본다고 김준이가 마음먹고 하는 일을 어길 수 있어? 애면글면이라도 살아야 하잖아. 그러니 그런 생트집은 하지 마. 뭐가 좋다고 내가 기생이 되겠어. 아무 것도 없는 내가 무슨 수로 꽃님이 언니를 돌보겠어.…”


방바닥을 쳐다보며 이야기를 듣던 돌이가 갑자기 달님이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런데, 죽이 아저씨가 왜 이렇게 우리를…”

“글쎄 말이야. 나도 그게 참 궁금해. 죽이 아저씨가 헤어질 때 꽃님이 언니를 꼭 안고는 준거니까. 꽃님이 언니 손 좀 펴 봐. 돌이가 보게.”

달님이가 옴니암니 말하는 동안에 꽃님이는 계속 비녀만 만지작거렸다. 달님이 말에 꽃님이가 돌이에게 손을 펴 부러진 비녀 두 개를 내밀었다.

돌이는 무엇인가 생각난 듯 비녀를 맞추었다.

“거봐! 딱 맞지. 암만 생각해도 무슨 사연이 있는 듯해.”

돌이가 부러진 비녀를 맞춰서는 보더니 “아! 아!”하고 낮은 신음을 토하였다. 그러고는 꽃님 언니의 손을 잡고는 멍하니 눈물만 흘렸다. 꽃님이는 돌이의 갑작스런 행동에 눈만 깜짝였다. 달님이도 곰이도 어리둥절하였다.

달님이가 몇 번이나 옷을 잡고,

“왜 그래! 왜 그래!”

하고 흔들었다. 그때야 돌이는 달님이에게 죽이 아저씨가 준 것이 분명하냐고 몇 번 씩이나 다짐 받았다.

“그래, 분명하다니까. 돌이가 꽃님이 언니에게 준 부러진 비녀를 몽고군에게 잡혀 올 때 분명 집에 떨어뜨리고 왔었어. 그게 약간 작은 이거잖아. 꽃님이 언니가 이것 때문에 얼마나 마음 상해하였는데, 여북하면 죽이 아저씨를 만난 날 아침에도 나에게 이걸 찾아달라며 졸랐다니까. 그런데 죽이 아저씨가 이 두 개를 그날 꽃님이 언니에게 준거야.”

“그래. 알았어. 어떻게 이런 일이. 달님아! 여기 좀 봐. 여기 글씨가 보이지.”

“아이! 나는 글자를 모르잖아. 그런데 돌이는 글을 어떻게 알아.”

“응, 죽이 아저씨가 말하는 힘이 글에 있는 것 같아서 일연 스님이라는 분에게 배웠어.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그러고는 달님이와 꽃님이, 곰이를 번갈아 쳐다보며 잼처 말했다.

“여기 좀 봐. 죽이연도화(竹伊戀桃花) 약생자목송(若生子木公) 약생녀초화(若生女艸化)라고 쓰였잖아. 해석하자면 죽이는 도화를 사랑한다. 만약에 아들을 낳으면 솔이고 딸이면 꽃이라고 한다는 거야. 여기 목공(木公)을 합하면 송(松)이니 솔이고 초화(艸化)를 합하면 화(花)이니 꽃이잖아. 내가 말 안 했던가? 우리 엄니 이름이 도화라고.”

“그럼 꽃님이 언니 이름이…꽃화 자라서 꽃님이라 했던거야? 그럼 꽃님이 언니 아부지가 죽이 아저씨란 말이야.”

“맞아! 그래서 우리 엄니가 죽이 아저씨에게 그렇게 차게 대했던 거야. 죽이 아저씨에게 내 언젠가 물은 적이 있거든 가족은 있냐고? 그랬더니 자기는 본래 강감찬 장군과 함께 싸운 설죽화 집안이라고 하였어.”


“뭐? 설죽화? 그 강감찬 장군과 함께 거란과 맞싸우다 죽은 여장부 말이지. 그래서 그렇게 싸움을 호랭이처럼 잘하는 건가?”

어느 틈에 곰이가 끼어들었다.

“그럼, 설죽화가 또 있나. 내 이야기 끊지 말고 마저 들어봐. 그런데 이런저런 사연이 있어서 집안이 몰락하고 양수척이 되었다고 하였어. 천인 양수척이기에 사랑하는 여인을 천인으로 만들 수 없어 인연을 맺지 못 했다고. 그래! 우리 엄니가 죽이 아저씨가 말하는 사랑하는 여인이었어. 이제야 꽃님이 언니가 나하고도 아부지하고도 닮지 않은 이유를 알겠어. 엄니가 죽이 아저씨와 아는 듯한데도 쌀쌀맞게 대했던 이유는 그래서 그랬던 거야. 회회아비 집에 불을 지른 것도 죽이 아저씨였나 본데. 꽃님이 언니가 죽이 아저씨 딸이라는 것은 그땐 몰랐던 것 같고. 엄니가 죽이 아저씨에게 이야기를 안 해줬던 거야.”


달님이는 돌이 이야기를 들으며 압록강 가에서 죽이 아저씨와 헤어질 때 일이 생각났다.

“아닌 것 같아. 돌아, 죽이 아저씨도 이미 알고 있었어. 분명해. 압록강에서 헤어질 때 죽이 아저씨가…”

“그래 뭐라 했는데…”

돌이가 닦아세웠다.

“가만 있어봐. 뭐라 했더라. …응, 그래, 맞아. 그랬어, 분명 죽이 아저씨가 꽃님이 언니 손을 잡고 ‘내가 짐작은 하였다만’이라고 했어. 이제 그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이해되네.”


잠시 밖에 상황을 보러 나갔던 곰이가 어느새 들어왔는지 방문을 열고 서서는 한마디 했다.

“밖엔 아무도 없으니 괜찮다. 똥 싸고 성낸다더니, 골딱지가 많이 풀어졌는가보네.”

그러더니 놀란 얼굴로 말했다.

“맞다! 돌이야! 저번에 왜 우리가 떡전거리에 갔잖니. 몽골놈들이 난리를 치고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때 동고리가 죽이 아저씨도 왔었다는 이야기를 하였잖니. 그때 너희 집에 들어갔다가 꽃님이가 떨어뜨린 이 비녀를 보았던 거야. 그래, 그러고 보니 회회아비 놈 집에 불을 지른 것도 죽이 아저씨였어. 그럼 꽃님이가 죽이 아저씨 딸이라는 것인데…. 허어, 참!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야.”

곰이가 돌이와 꽃님이 언니를 번갈아 쳐다보자 돌이가 말했다.

“맞아 죽이 아저씨가 회회아비를 먼저 죽이고 불을 지른 것이야.”

곰이와 달님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돌이를 쳐다보았다.

“그래, 그때는 내가 의심만 했었는데, 이미 회회아비는 죽어 있었어. 왜냐하면 회회아비네 집 뒤곁에서부터 불이 났거든. 안방에서 자고 있었다면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충분히 나올 수 있었어. 이미 죽어있었던 거야. 왜 그걸 생각 못 했지.”

곰이가 끼어들었다.

“맞다! 너하고 내가 회회아비가 술에 취해 이제 잠 들었나 갔을 때, 그때 회회아비네 뒤곁에서 나오는 죽이 아저씨를 보았잖아. 잉. 그 뒤에 불이 일어난 거지. 돌이야! 기억나지?”

“헝 말이 맞어, 회회아비네 뒤꼍에서 죽이 아저씨가 나온 뒤에 불길이 솟았어.”

“그렇다니까. 맞어. 맞어. 돌이야! 그러고 보니 죽이 아저씨가 네 엄니 복수를 한 거였어.”

돌이는 한동안 멍하니 꽃님이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달님이는 돌이 엄니도 참 슬픈 인생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꽃님이 언니의 아버지가 죽이 아저씨인데도…하기야, 사랑의 표시를 그릇에 넣어 두었다가 마지막 순간에 알려준 것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도 같다. 그렇다면 돌이 아버지는 이 사실을 알았다는 소린데, …그렇다면 돌이 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도 꽃님이 언니를 끔찍이 아낀 것이야…’

이런 생각이 달님이 머리를 스치는데 곰이가,

“그럼 돌이 아부지는 이 사실을 알았던 거잖어. 그지. 그렇지.”

라며 돌이와 달님이를 쳐다보았다. 달님이는 얼른 곰이의 입을 닫았다.

“아이! 곰이 언니 왜 그런 말을. 그만해!”


돌이는 아무 말도 없이 천장만 쳐다보았다. 얼마간 아무도 말이 없었다.

돌이의 섭섭한 생각은 많이 눅진 듯하다. 돌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달님이는 돌이를, 돌이는 달님이의 마음을 읽었다. 그날 이야기가 길어져 꽃님이와 달님이는 그 객줏집에서 묵었다.

그날 밤, 곰이의 팔밀이로 달님이는 달밤에 정한수 한 사발 떠놓고 돌이와 연을 맺었다. 달님과 별님이 정한수에 와 앉았다. 돌이의 엄니도, 달님이 엄니도, 죽이 아저씨도 돌이 아부지도 정한수 속에 있다고 달님와 돌이는 생각했다.

“컹! 컹! 컹!”

동이는 그 새 객주집의 청삽살개와 인연을 맺었는지 꽃님이 옆에 나란히 앉아있고 곰이는 손등을 연신 눈으로 가져갔다.

우리는 비로소 소꿉동무에서 연인이 되었다.

그날 밤, 달님이는 돌이의 품에서 노래를 불렀다.


징아! 돌아! 지금 계십니다

징아! 돌아! 지금 계십니다

선왕성대에 노닐고 싶습니다 <정석가> 1연


부드럽고 고운 모래 언덕에 나난

부드럽고 고운 모래 언덕에 나난

구은 밤 닷 되를 심습니다

그 밤이 움이 돋아 싹나거든

덕 있는 님을 이별하고 싶습니다 <정석가> 2연


옥으로 연꽃을 새깁니다

옥으로 연꽃을 새깁니다

바위 위에 심습니다

그 꽃이 한겨울에 피거들랑

그 꽃이 한겨울에 피거들랑

덕 있는 님을 이별하고 싶습니다 <정석가> 3연


무쇠로 철릭을 만들어 나난

무쇠로 철릭을 만들어 나난

철사로 주름을 박습니다

그 옷이 다 헐고서야

그 옷이 다 헐고서야

덕 있는 님을 이별하고 싶습니다 <정석가> 4연



“돌이! 내 천년을 홀로 살아간들 돌이에 대한 믿음은 이 노래처럼 변치 않을 거야. 기생과 양갓집 규수의 그 마음이 다를 게 없어. 대나무가 타더라도 마디자국은 남는 거잖아. 송백같이 굳은 절개로 내 두 마음 먹지 않을 테니 걱정 마.”

“그래, 달님아! 이 절망의 세상에서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달님이인 것을 알지. 고운 모래에 심은 군밤에서 싹이 나고, 바위에 심은 옥으로 만든 연꽃이 한 겨울에 피고, 철사로 주름을 박아 만든 갑옷이 다 헐어지면 그때야 우리 이별하자꾸나.”


무쇠로 큰 소를 지어다가

무쇠로 큰 소를 지어다가

쇠나무산에 놓습니다

그 소가 쇠로 된 풀을 먹고서야

그 소가 쇠로 된 풀을 먹고서야

덕 있는 님을 이별하고 싶습니다 <정석가> 5연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끈이야 끊어지리이까

천년 해를 홀로 가신들

천년 해를 홀로 가신들

믿음이야 그치리잇가 <정석가>6연


마지막 구를 부르고 달님이 조용히 돌이를 안았다. 돌이의 눈 속에 달님이가 눈부처로 들어앉았다. 달님이 눈 속에도 돌이가 들어앉았다. 몇 해 사이로 제법 어른 티가 나는 돌이련만 달님이 품에 안기자 어린 아이와 같이 잠이 들었다.


멀리서 뻐꾸기 소리가 아스라이 들렸다. 잠시 후 이제는 저편짝에서 또 뻑뻑꾹, 뻑꾹하며 울어 댄다. 달님이는 돌이 가슴에다 조용히 노랠 불렀다.


비둘기는

비둘기는

울음을 울오되

뻐꾸기야말로

나는 좋아라

뻐꾸기야말로

나는 좋아라 <유구곡>


“달님아! 그런데 어떻게 이 노래 아니?”

잠이 든 것 같더니 돌이가 눈을 뜨고 물었다.

“응, 기생어미에게 배웠어. 곡이 너무 좋아. 뻐꾹새가 우니 갑자기 생각나네.”

“그래. 그런데 이 노래는 옛날에 왕이 간관(諫官)을 빗대어 지은 것인데. 알고 있니?”

“간관?”

“응, 일연 스님에게 들었어. 왕의 잘못을 잘 지적하는 이를 일등 간관이라 하는데, 이 간관의 말을 ‘봉황새의 울음소리’라고 한대. 그런데 비둘기는 울음소리가 가냘프고 잘 울지도 못하는 새라 간관으로서 자격이 없다나 뭐라나. 그런가 하면 뻐꾹새는 맑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면서 저렇게 잘 울잖아. 그래 간관으로서 옳은 말로 왕을 잘 보필하는 이를 뻐꾹새 간관이라고 한다는군. 결국 왕이 간관들에게 봉황새 간관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뻐꾹새 간관은 되야지 비둘기 간관이 뭐냐고 꾸짖으려 이 노래를 지었다더군. 아마 관리들이 비둘기를 기르느라 공무를 폐할 정도로 쟁송을 일으키고 콩팔칠팔 다투기만 하여, 나라에서 비둘기와 새매 기르는 것을 금지한 것도 한 이유가 될지 모르지. 하기야 일은 하지도 않고 입으로만 선이자를 떼놓는 이들이 어디 이들 뿐이겠니. 최충헌이 이의민을 죽인 것도 따지자면 비둘기를 빼앗아서 그런 거였으니, 비둘기 간관이란 말도 나올 법해.”

“돌이! 일연 스님에게서 참 많은 것을 배웠나봐. 예전 돌이가 아니야. 돌이가 찾으려던 힘이 이건가?”

“응, 그렇긴 하지. 일연 스님을 만날 때만 해도 나는 글자를 배우는 것이야말로 힘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지금은 아녀. 오히려 이 세상은 저 배운 사람들이 더 문제지. 아직도 나는 힘이 무엇인지를 모르겠어.”

“그런데 말이야. 돌이! 내가 비둘기고 돌이가 뻐꾸기라면 안 되나?”

“안 될게 뭐있어. 달님이 말도 맞네. 달님이가 비둘기고 내가 뻐꾸기가 된다면 우리처럼 사랑하는 사람들 노래지 뭐.”

“그래, 비둘기는 생긴 것도 좀 나처럼 여성스럽고 뻐꾸기는 돌이처럼 뻣뻣한 데다 남의 둥지에다 알을 낳잖아. 좀 극성스러워….”

“하하! 달님아! 그건 아니다. 뻐꾸기는 봄철에 포곡포곡하고 울잖니. 이 포곡을 한자로 쓰면 포곡(布穀)이거든. 펼 포에 씨앗 곡이니 ‘씨앗을 뿌려라’라는 뜻이지. 농사철이 되었으니 씨를 뿌리라는 뜻이야.….”

이야기는 밤새 이어졌다. 달님이에게선 여름밤 쑥대 사르는 냄새가 났다.

“뻐꾹, 뻑뻐국, 뻑꾹,…”

밤은 깊어갔다. 창가엔 반딧불이가 이따금 지나갔다. 가만가만 소쩍새 소리도 들렸다.

“꼬끼오!”

어디선가 닭이 두 홰째 울었다. 두동베개를 처음 베고 누운 달님이와 돌이의 사랑도 밤의 깊은 길목을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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